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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심봤다

자취생이 라면도 다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냉장고에 몇달째 박혀 있던 양갱 하나를 찾았습니다. 고생고생하다가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국내 주요 미술관, 갤러리의 홈페이지를 깔끔하게 모아 놓은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봄을 맞아 대대적인 책장 정리 중, 영수증 봉투인 줄 알고 버리려다 열어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는 말이 ‘심봤다!’입니다. 심마니들은 함께 산 속에서 며칠을 보내며 일을 합니다. 한 사람이 산삼을 발견하면 ‘심 봤다!’하고 크게 외칩니다. 그러면 산 속에 흩어져있던 심마니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여, 먼저 산삼에게 깊은 절을 올리고 정성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산삼을 캡니다. 어린 산삼은 다시 심으며 훗날을 기약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도록 배려합니다. 그래서 산삼은 심마니들에게 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심마니처럼 살지요. 하지만 종종 삼과 다른 식물과 헷갈리기 일쑤며, 때론 삼이 자라는 장소를 찾지 모르기도 하며, 때론 삼을 뽑을지 몰라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며, 때론 삼을 잘 다릴 지 몰라 마지막 순간마저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심봤다’는 그래서 ‘심(心)봤다’입니다. 맞나요. 하지만 ‘심(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기만 합니다. 마음은 보통 굴뚝마음과 말뚝마음으로 크게 구분됩니다, 굴뚝 마음은 굴뚝에서 연기 나오듯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이 늘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하며 무조건 적입니다. 그러나 말뚝 마음은 말뚝처럼 짧은 것을 말합니다. 한번씩, 어쩌다가 생기는 그런 마음입니다. 물론 아주 답답한 시나브로 마음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소문과 오해도 아주 많아 ‘심봤다’를 외칠 수 없는, 답답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결국 진실을 통하게 되겠죠. 내가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걸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더욱이 바퀴가 하나 밖에 없는 자전거처럼 위태롭다고 느끼면서도 평상심을 강조합니다. 평상심은 평정심과도 통하는 말로, 어떤 환경의 변화가 와도 변하지 말고 그대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때로는 마음의 숨을 고르는 일도 필요합니다. 원래 인간이란 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매달리고, 그러다가 결국은 평정심을 잃게 되고 집착하다가 뻔하게도 망하게 되고 끝내는 쓰러진 자신을 보고 좌절하게 됩니다.

 

평소에 소통을 강조하지만, 이를 위한 작은 일에는 아주 많이 인색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큰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석을 하면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파진다”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즉 통하지 않으면 마음도 아프게 됩니다. 우리말에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는 표현은 있어도 “머리가 통하는 사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친밀한 인간관계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이지 ‘머리’가 통하는 사이가 아니군요.

 

이때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는 인내하는 것이고, 하나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해에서 일해씩 세 번만 빼면, 결국 이해가 됩니다. 오해가 이해가 되면, 어느 새 이해는 강물처럼 출렁출렁 사랑으로 범람합니다.

 

이해는 약초요 오해는 독초입니다. 이해하게 되면 약초가 되고, 오해하면 독초가 됩니다. 이해의 나무에는 사랑의 열매가 열리고, 오해의 잡초에는 증오의 가시가 돋습니다.

 

 모두모두 ‘심(心)봤다!’를 외치면서 ‘신(神)봤다!’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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