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그 사회 정책을 모범으로 삼을 정도이지만 세계에서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의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요? 물질적인 풍요와 자유로운 생활환경은 국가 정책으로 보장되었지만 국민 개개인의 인생 목표가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목표를 설정하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삶의 목표를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 해 노력하는데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 얻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가 ‘페루의 ‘마추픽추(Machu Picchu)’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말이죠. 마추픽추는 현지어로 ‘오래된 봉우리’를 의미하며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건립 방법은 지금도 굳건한 비밀로 남아 있는 탓에 우리 시대의 공학 기술자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대형 중장비도 없었는데 거대한 돌을 공사 현장까지 어떻게 가지고 왔으며 쌓았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커다란 바위가 스스로 춤을 추며 지금의 마추픽추 현장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곤 하죠. 물론 이는 어린아이들도 믿지 않을 주장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죠.
인디언들이 큰 돌을 날으는 방법은 큰 돌 아래 작은 돌을 깔아 큰 돌(을 쉽게 굴러가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집을 지을 때 이같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답니다. 그럴듯한 방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곤 하죠. 아마도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뚜렷한 그들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목표가 없는 삶’보다는 ‘방향이 있는 삶’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됨은 만고의 진리가 아닐까요.
저는 종종 평소와 다른 길로 출퇴근하며 생경한 광경을 목격하면, 살면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는 건지, 떠밀린 채 걷고 있는지 생각해 보곤합니다.
계획이 있는 사람은 삶에 방향이 있고, 방향이 있는 삶은 의미가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게 있어선, 뵈기에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보통 사람의 삶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갈 곳을 아는 배는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그 배처럼 목적있는 삶은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고, 잃는다 해도 그 방향을 향해 다시 나아갑니다.
인생에 있어 남보다 빨리 올라가는 이른바 ‘속도’ 못지 않게, 어떻게 사느냐 하는 ‘방향’이 아주 중요한 까닭입니다.
우린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여하튼 서두르진 말았으면 합니다. 나의 삶은 방향이 있고, 길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나에게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참 아득하기 만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나의 삶은 어느 방향을 향해 놓여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