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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1>승암교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다리를 지나간다. 이러한 일상적 공간이기에 특별한 가치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교적 의미, 또는 지역을 서로의 연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다리는 문화와 삶의 양식을 표현할 터이다.

 

 천년 세월의 강을 건너온 전주의 다리, 내게 말을 걸다. 이제는 문명의 구조물에 지나지 않던 수 많은 다리에 이야기라는 문화의 발걸음이 더해지면서, 우리 곁에 살아있는,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 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전주의 다리, 사랑을 잇고, 사람을 잇다. 편집자
 
 전주 사람들이여! 삶이 곤궁하거들랑 전주천으로 발길을 옮겨 봄이 남긴 고독한 수채화를 보시라. 억세게 운이 좋으면, 새벽 공기를 가르는 날갯짓과 함께 두루미 한 쌍이 회색빛 수묵화 속으로 날아들고 있음을 목도하시라. 오늘, 물안개 피는 전주수변생태공원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아릿다운 풍경화 하나를 건진다. 구비치는 물줄기들이 빼어난 경관을 펼쳐 보이는 이곳의 상큼한 아침.

 

월암교 밑을 지나면 물은 완주군 경계를 벗어나 전주시 경계 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어 은석교, 안덕교, 색장교를 지나고 각시바위, 제2 승암교, 승암교를 거쳐 한벽교로 이어집니다.

 

예로부터 전주와 완주에는 ‘완산승경(完山勝景)’이 있었습니다. 승경(勝景)은 ‘뛰어나게 좋은 경치’를 말합니다. 완산8경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완산승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만 합니다.

‘완산승경’은 ‘기린토월(麒麟吐月)’ 등 모두 32곳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은석동학(隱石洞壑)은 ’은석골 일대의 경치‘를 말합니다.

’동학-동녁東.골짜기壑‘은 ‘산과 내가 둘러 있어 경치가 좋은 곳’을 뜻하며, 동천(洞天)이라고도 합니다. 은석골은 완주군 상관면 색장리에 있으며, 정여립의 출생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구비치는 물줄기들이 빼어난 경관을 펼쳐 보이는 이곳의 상큼한 아침. 승암산 아래로 깔리는 물안개의 때깔이 참으로 곱다. 전주 승암산은 중바우(중바위)산을 이르는 말이다. 중바우는 발산 동편에 있는 바위 벼랑으로 된 산의 이름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산 아래 자리잡은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중바우는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들이 마치 고깔을 쓴 중들이 늘어선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천주교 전주교구청이 순교자의 묘역을 조성한 후 치명자산(致命者山, 천주교 순자들이 많이 묻히게 돼,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으로 유명하며, 바로 그 아래에는 그 본래의 이름에 걸맞는 절인 승암사가, 산 중턱에는 동고사라는 절이 위치해 있다.

 

 이같이 이름을 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맞은편 남원간 도로 저편 약수터에서 보면 스님이 좌불하고 있는 형국이라 이를 따서 지은 것이란다. 승암사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작은 절이다. 미륵이 영험하다고 해 아이를 얻고 싶은 전주의 아낙네들은 전주천을 버선을 벗고 치마를 들치고서 건너와 기도를 드릴 만큼 그 옛날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그 미륵상은 현재도 존재하지만 그 당시 수 많은 여인들의 유난스러움에 코가 많이 깎여 나가 그런 까닭에 현재 상당히 마모되어있다. 코부분의 돌가루를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한편 승암산 자락에는 후백제 견훤이 세운 동고산성과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동고사 등 문화유적이 함께 자리한다.

 

 한때는 철로가 지나던 이 마을은 지금은 철로는 온데간데없이 굴다리만 당시를 추억하고, 요즘은 치명자산성지와 동고사, 승암사를 찾는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으며 요즘에 부여된 새 도로명엔 바람 쐬러가는 길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승암상회’는 승암마을의 유일한 가게다.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나던 시절, 철로 바로 옆에 문을 열어 거의 반세기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가게에는 간판이 없다. ‘승암상회’라는 이름으로 허가를 얻긴 했지만, 가게가 처음 생기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간판이 걸렸던 적은 없다.

 

 승암교를 끼고 지나가는 천년전주 마실길 답사 코스는 여행의 보너스요, 갈증을 해소시키는 좁은목의 약수 한 모금은 추억으로 다가서기엔 안성맞춤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동고사, 승암사, 치명자산 성지의 숱한 사연은 왜 그렇게도 가슴이 저며오는지.

 

 승암교를 지나 이 어려운 길을 왜, 누가, 누구를 위해 가고 왔을까. 그 길은 아마도 우리들의 어머니가 공양할 쌀 한 되, 기와 한 장을 머리에 이고지고 왔을 험한 길이었을 것이다. 승암사의 심우도를 보면서 중생들은 아마도 사바세계의 고난을 잊고, 희망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염원을 마음속에 담아 이고지고 와서 도(道)를 찾아 생로병사의 번뇌를 초월한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는 생각에서는. 450m의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 치명자산성지에서 성수를 손가락에 찍고 십자성호를 그었던 우리네 할머니들은 지금 어디에서 안식을 하고 있나.

 

‘전주 부성 동쪽머리 만마관 골짜기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전주천 물살은 좁은목을 지나, 강모가 내내 하숙하고 있던 청수정의 한벽당에 부딪치며, 각시바우에서 한바탕 물굽이를 이루다가 남천교, 미전교, 서천교, 염전교를 차례차례 더터서 흘러내리며 사마교를 지난다. 그렇게 모래밭을 누비고 흘러오던 물결이, 긴 띠를 풀어 이곳 다가봉의 암벽 아래 오면 급기야 천만으로 몸을 부수며 물안개를 자욱하게 일으킨다(최명희의 ‘혼불’ 중에서)’

 

 전주천의 발원지를 가려면 슬치(또는 실치) 정상에서 임실 오궁리미술촌과 신평생활사박물관 쪽으로 우회전하여 약 2Km정도 가면 동물이동통로라고 써진 터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협곡으로 들어가면 ‘전주천 발원지’ 푯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발원한 전주천 물은 남관을 거쳐 승암교, 한벽당, 추천대, 비비정, 백구정, 청하 사챙(사창)이 나루를 지나 서해로 흘러들어 간다.

 

 전주천 상류에 자리한 승암교는 2개다. 지금은 사람과 차량들의 통행이 뜸한 곳의 구 승암교는 1977년 7월 15일에 준공, 동서학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위 교동의 승암교는 1990년에 가설했다는 자료가 보이지만 다리엔 2003년 4월 1일부터 2004년 1월 6일까지 공사를 한 것으로 돼 있는 가운데 승암사, 자연생태박물관, 중바위길, 치명자산성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다리가 놓임으로써 전주와 남원까지의 마실길이 더욱 손쉬워지는 등 생활의 편리와 함께 무욕의 세계로 이끄는 사찰과 성당이 더욱 바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

 

 다리 건너편 약수터로 유명한 춘향로 방향, 좁은목은 새로 길이 났지만 오랜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12(曲)으로 유명하다.

 

 참선로(아득한 천고의 옛날에 도인들이 염주에 지팡이를 짚고 돌아 닫던 길), 축성로(불세출의 영훙 견훤이 동고성, 남고성, 고달성을 쌓아 닦던 창검의 길), 호운로(목조 이안사와 함께 놀다 천지가 개벽하듯 삽시간에 목숨을 앗아간 길), 개선로(왜구 아지발도를 쏘아 정벌하고 선영터를 들어오는 태조 이성개의 천기 왕운이 비 추인 길), 절개로(오백년 사직에 맹세하는 일편단심으로 말을 몰라 도포자락 날리며 만경대로 달리 던 포은 정몽주의 길), 함원로(정유재란 때 전라도를 쳐들어 온 왜구가 막은 댐이재를 넘어 전주를 짓밟은 길), 벽제로(수령들의 도임, 순행으로 하인이 길을 비키라면서 병풍바위 메아리 치던 길), 유찬로(삭탈관직으로 귀양길로 접어들며 도포자락의 찬바람, 병풍바위 메아리 치던 길), 암행로(성춘향을 오매불망하던 이몽룡이 남원출도길로 잡아돌아 가던 길), 분산로(녹두 꽃잎들이 산산이 흩날려 갈리던 동학농민군들이 분을 품고 흩어진 길), 유랑로(남부여대 패랭이에 괴나리 봇짐을 지고 병풍바위를 문턱으로 길손 되던 길), 산수로(천하의 영화를 초개처럼 버리고 칡넝쿨 짜 입은 옷을 입고 구름따라 돌아다니던 길) 등이 바로 그것으로, 5욕7정의 세상사를 보듬고 있다.

 

 한양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자그만치 약 6백30여 리에 이른다. 숭례문에서 시작,칠패,팔패-이문동-도제골-쪽다리-청파배다리-돌모루-밥전거리-모래톱-동재기(동작진)-승방들-남태령-인덕원-갈미-사근내-군포내-미륵당-지지대-참나무정이-교구정-팔달문-상류천-하류천-대황교-진겨골-떡전거리(병점)-중밋오밋(중미현)-진위-칠원-소새비들-천안삼거리-김제역-덕정-원터-광정-활원-모로원-새술막-공주금강-경천-노성-은진닥다리-황화정-능기울-여산관-삼례역-고산-전주-남천교-반석(半石)말-한벽당-좋은목-만마동-노구바위(또는 노고바위)-임실관-오수참(獒樹站)-남원까지다.

 

 승암교 위 방향으로, 조선조 ‘기축옥사의 희생양’ 정여립의 한서린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다. 정여립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전주 남문 밖(전주시 색장동)의 파쏘(봉) 아래 집터는 파헤친 후, 숯불로 지져 그 맥을 끊었다는 신정일 우리땅걷기 이사장의 설명.

 

 진동규 시인은 그의 시에서 파쏘를 이렇게 노래했다.

 

"살던 집은 텃 자리 까지 파버렸습니다. 그 이웃까지 뒤집어 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 가게 하였습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 버렸지만 그때 그 집 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샘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댁건너 마을 사람들 은 상죽음(上竹陰) 하죽음(下竹陰)하면서, 구름처럼 모여 들었던 선비 들의 죽음 그 때죽음을, 서방바우, 각시바우, 애기바우, 그 피울음을 상 댁건너 하댁건너 점잖던 자기 마을 이름위에 불러보기도 해 보지만 어떻게 변명 말씀 한번 엄두를 못 내고 죽어지내 왔습니다.

 

  그 집 뒷산 월암에 달이 뜨면 댁 건너 사람들은 월암 아래 소에 들어 대수리를 잡는 답니다. 관솔불들을 밝히고 주춧돌 기둥뿌리 항아리 깨진 것, 뭐 그 집주인 뱃속까지 빨아 먹고 자란 대수리들을 잡는 답니다."

 

삼백예술다섯날 세속의 번뇌를 버리는 이곳은 지역민들의 모습도 구김살이 없지만 한벽교에서 승암교까지 7백미터 구간엔 멸종위기종 1급인 퉁사리와 1급수 지표종인 수달과 쉬리가 살고 있는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전주자연생태박물관이 이곳에 자리해 생태체험 학습공간으로 확실히 자리잡아 가고 있는 까닭이다.

 

 전주자연생태박물관 앞에서 팔랑팔랑 바람개비 돌아간다. 내내 그리운 건 언제나 바람이다. 그래 종일 바람이 한 자락도 불지 않는 여름날이면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언덕너머로 바람이 분다. 팔랑팔랑 바람개비 돌아가고 바람의 언덕에 여름 하늘 높이곰 희망의 연이 떠오르고 있다. 아태무형문화유산의전당의 전통누리 바람이. 새전북신문 이종근 문화교육부장


 

전주천
 
 전주천은 임실군 관촌면과 신덕면의 경계를 이루는 슬치 아랫녘(230m)에서 시작한다.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부근 박이뫼산(해발 315.8m 삼각점 미표시지역)자락의 슬치(瑟峙)리 동편계곡에서 발원, 인근지역 여러 소지류들과 만나 완주군 삼례읍과 전주시 화전동의 경계다리인(삼례교)에서 만경강과 만나게 된다.

 

 발원진의 폭은 약 50cm, 깊이는 20cm도 안되는 작은 물웅덩이에서 시작하며 슬치마을 뒤편을 돌아 점차 천의 폭과 함께 계곡의 폭이 넓어지면서 산정마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천의 모습을 갖춘다.

 

 마을과 마을을 지나 북서쪽으로 흘러가며 남관의 동쪽을 지나 신리에서 우측의 지류인 대흥천과 만나고, 고덕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객사천, 원당천이 왼쪽에서 들어와 합한다.

 

 한벽당 아래 바위에 부딪쳐 서쪽으로 휘돌아 남천(南川)이 되고, 왼쪽에서 들어온 산성천과 합한 뒤 싸전다리에서 공수내와 합류해 완산교, 매곡교를 지나 서천(西川)이 된다. 전주의 도심을 지나쳐 백제교상류에서 건산천을 만나고, 추천대 부근에서 모악산 배재에서 발원한 삼천(三川)과 합류해 추천(湫川)이 되어 만경강으로 흘러 서해로 향한다.

 

 전주천은 전주권내의 하천들중 유역면적이 넓고 기나긴 편으로 과거 전주천 쪽으로 흐르던 소지류는 대략 7~9개 정도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로 연장은 24.87km, 발원지에서 삼천 합류점까지 그 이후로는 국가하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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