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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14)낙산사 원장

 

 

 

 설악산의 줄기가 바다로 뻗은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양양 낙산사. 1300년의 역사를 지닌 낙산사는 남해의 보리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불리고 있다. 초겨울 화사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바다를 향해 단정히 자리 잡은 가람(伽藍)들은 세속에 찌든 내방객을 차분히 어루만져주면서 화마의 폐허는 흔적도 없이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사적 제495호 지정된 낙산사는 2005년 산불 피해 이후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건물지와 기와편들이 다량 출토됐다. 그 결과,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후 헌안왕 2년(858)에 범일국사, 조선 초기 세조 연간에 중창되는 등 수 차례의 중창불사를 거친 역사적 사찰임이 확인됐다.
 또, 사찰 경내에는 조선전기의 7층 석탑과 원통보전의 담장, 홍예문, 사리탑, 홍련암과 의상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 해변을 끼고 있는 명승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문사(文士)들에 의해 수많은 고전과 시문(詩文)이 전해지고 있다.
 세조, 성종, 숙종과 같은 왕들은 물론 보우(普雨), 서산과 같은 승려들에 이르기까지 낙산사를 안 다녀간 사람이 없다. 김극, 정철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유자량, 이규보, 정추, 안축 등의 여러 유명한 문인들이 많은 시문을 남겼고,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남효온, 정사룡, 최립을 비롯해 이민구, 윤증, 김창흡, 이해조 등이 낙산사를 탐방하고 빼어난 작품을 남겼다.
 특히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1592년 임진왜란 피난 중에 부인이 첫 아들을 낳고 전란 통에 아내와 아들이 잇달아 죽는 불행을 당하자 이듬해부터 낙산사에 3년 정도 유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그해 10월 시화집 ‘학산초담(鶴山樵談)’을 집필하고 다음해 과거에 급제했다.이 같은 인연으로 허균은 낙산사에 관한 3편의 시를 남겼다.
 낙산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사람은 겸재 정선, 서암 김유성, 단원 김홍도 등이 대표적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낙산사에 들러 동해의 장엄한 일출을 보고 금강산 일대 ‘해악진경’여덟 폭을 병풍에 ‘낙산일출(洛山日出)’ 이란 작품을 그려 넣었다. 또한 서암 김유성은 1764년 조선통신사를 수행, 일본을 방문하여 세이켄지(靑見寺)에서 그려 준 ‘산수화조도 압회첩병풍(山水花鳥圖 押繪貼屛風)’여섯 폭 중 네 번째로 보이는 그림이 ‘낙산사도’이다. 단원 김홍도 또한 1778년에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관동팔경 지역을 사생여행하면서 ‘낙산사도’를 그리게 된다. 단원의 ‘낙산사도’는 바다 쪽 하늘에서 낙산사를 내려다보는 조감도 형식으로 그렸기에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를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통보전에는 조선 시대 만들어진 건칠관음보살좌상(洛山寺乾漆觀音菩薩坐像)이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 장지에 옻칠을 한 관음상은 각 부분의 비례가 좋고 얼굴 표정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지난번 화재로 원통보전은 완전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였다가 중건과 함께 다시 제자리에 봉안되었다.
 원통보전 앞 정원에는 칠층석탑이 단아하게 서있다. 6, 25동란이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 탑은 원래 의상 스님이 3층으로 세운 탑을 세조의 낙산사 중건 명을 받은 학열 스님이 다시 쌓았다.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원장은 세조의 명으로 쌓은 담장이다. 이 원장은 황토와 진회색의 기와가 질서정연하게 쌓여 있어 색조의 대비와 원통보전의 기품을 살려주는 아름다운 담장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낙산사 원장. 이는 낙산사 법당인 원통보전의 둘레를 사각으로 에워싸고 있는 담장이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가 낙산사를 고쳐 지을 때, 처음 이 담장을 지었는데 대부분 터만 남아 있어 최근에 연결, 보수했다고.
안쪽의 담벽을 기와로 쌓고, 바깥쪽은 막돌로 쌓은 이 담벽은 높이 3.7m, 길이 220m이다. 특히 암키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으면서 위, 아래로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화강석을 배치해 단조로운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하면서 미학의 절정을 달리고 있다.
 법당을 향하고 있는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층의 길게 다듬은 돌기단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한층의 긴 받침돌을 놓았으며, 담장 위에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도록 했단다. 돌기와와 흙으로 높고 정연한 담장을 쌓고 넓은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이 담장은 법당을 둘러싸 신성한 지역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함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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