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감로가 내리고, 땅에서는 예천이 나오게 되고, 황하수가 맑아서 거북도 보이려니와 신령스런 지초(芝)까지 빛나고 빛나도다. 아아, 추우(騶虞, 마음이 어질어서 살아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는 전설상의 동물)여, 깨끗한 기린에 백조도 선명하며 상서로운 코끼리는 순하게 길들어졌고, 사자도 이미 나타났으니, 이는 복록이 닥쳐오는 조짐이요, 검은 토끼와 흰 꿩은 세상에 늘 있는 것이 아니로다. …용, 봉황, 사자, 코끼리가 좌우로 둘렸고, 하늘 꽃·상서로운 구름은 휘황하게 빛나며, 여러 가지 신령스러운 과실은 갖추어 말하기 어렵도다"
조선 세종 때의 문신 변계량이 중국 황제의 등극을 칭송해 지은 가사 중 일부분이다.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고래로 서조, 서수, 오색구름 등 세상에 늘 있지 않은 것의 출현은 길상과 상서(祥瑞)의 징조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시대 궁궐의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용, 봉황, 코끼리, 기린 등의 동물 문양과 구름, 길상문자, 암팔선(暗八仙), 모란당초 등의 길상 문양도 그러한 관념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각 궁궐의 법전(法殿) 앞 계단과 대조전 등 왕비 처소 대청에 새겨진 용과 봉황은 왕권의 수호와 창달, 그리고 태평성대의 도래를 의미하고 있다. 이 가운데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코끼리와 기린 장식은 복록이 곧 궁궐에 닥쳐 올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전각 이름을 쓴 편액에 장식된 칠보, 팔보, 암팔선 문양 등은 복, 록, 수와 관계된 길상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수많은 화조, 지초(芝草) 문양들은 왕이 선정을 베푼 결과로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창덕궁 낙선재 누마루나 종묘 정전 계단에 새겨진 구름 문양은 그 일대의 공간을 천상의 선계(仙界_로 승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궁궐 도처에 베풀어져 있는 길상 장식들은 현대인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비칠지 몰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한히 넓고 깊다. 그 속에는 요순 시대의 재현이라는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함축되어 있고, 왕권 창달과 왕족 번영의 염원, 그리고 궁궐을 상서로운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한자의 모양으로 보면 ‘길(吉)’은 ‘사(士)’와 ‘구(口)’를 결합해 놓은 꼴로 되어 있는데, 선비의 입은 선한 말을 하여 그것이 복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상(祥)’은 ‘시(示)’와 ‘양(羊)’이 합해서 된 글자이다. ‘양(羊)’은 선량한 짐승이고 ‘시(示)’는 형체가 없는 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祥)’이 ‘신이주는 좋은 징조’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
보물 제816호 창덕궁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 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했다.
원래는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를 비롯해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해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 지어‘대조전’이란 현판을 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조전은 현재 36칸으로 건물 가운데 3칸은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 서쪽으로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각 침실의 옆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중 드는 사람들의 처소로 삼았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굴뚝의 토끼를 만날 수 있다.
달 속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는 달의 표징어로, 삼족오(三足烏)와 함께 금조옥토(金鳥玉兎)라 하여 태양과 태음의 대표적인 동물이다. 전설에는 월세계에는 남녀 각 1인, 작은 새 한 마리, 흰 토끼 한 필이 같이 산다고 한다. 도교에서는 이 흰 토끼를 옥토끼라 부르는데, 신선이 만드는 선단(仙丹)에 필요한 신약(神藥)을 빻고 있다고 한다.
달이 선계를 상징하게 된 것은 항아분월설화(姮娥奔月說話)와도 관련이 있다. 주인공 항아가 그의 남편 예가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뜨는 환란을 평정한 공로로 천재로부터 받은 불사약을 훔쳐 먹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달로 도망가서 두꺼비가 되었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그후 여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대조전 굴뚝의 이 토끼 문양이 침전 뒤뜰을 선계로 만들고 있다.
보물 제815호 창덕궁 희정당에서는 굴뚝에 새겨진 코끼리와 기린을 만날 수 있다.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했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코끼리. 원래 '코끼리상(象)'자가 '길상상(祥)'자가 서로 발음이 유사해 길상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동물이다. 특별히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것을 기상(騎象)이라고 하는데, 기상 또한 길상과 그 발음이 비슷함으로 해서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코끼리 문양은 우리나라의 생활 문양 가운데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문양으로 창덕궁 희정당 벽돌 굴뚝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변계량의 말처럼 깨끗한 기린이 선명하고 상서로운 코끼리는 순하게 길들여졌으니, 이는 복록이 닥쳐오는 조짐인 것이다.
또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기린은 어떠한가. 기린은 용이 땅에서 암말과 결합하여 낳았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수컷이 기(麒)이고 암컷이 린(麟)이다.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으며,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과 같은 굽과, 네 개의 다리 앞쪽에 화염 모양의 갈기를 달고 있는 동물로 하루 천리를 달린다고 한다. '시경' 주(註)에서는 “발이 있는 것은 차기 마련이며, 이마가 있는 것을 들이받기십상이고 뿔이 있는 것은 부딪치고자 하는데, 유독 기린만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이 그의 어진 성품이다”라고 했다.
기린은 또한 인(仁)을 머금고 의(義)를 품고 있으며,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으며, 살아 있는 벌레를 밟지 않고, 돋아나는 풀을 꺾지 않으며,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밝은 임금이 나타나 행동거지를 법도에 맞게 처신하면 나타나는데, 털 달린 짐승 360가지 가운데 기린이 그 우두머리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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