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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12)덕수궁 유현문

 

 

궁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덕수궁이라고 쉽게 부르지 않는다. 원래의 이름이 경운궁이기 때문이다. '덕수'란 말은 조선초 정종대왕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대왕에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올린 이름으로서 '왕위에서 물러난 왕'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제는 고종황제에게 이러한 덕수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고종황제를 덕수궁 전하로 순종황제를 창덕궁 전하로 부르며 격을 낮추었다. 그 이후 고종황제가 기거했던 궁궐 역시 경운궁아닌 덕수궁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경운궁으로 300년 동안이나 불러왔던 이름을 이제는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일제의 압박으로 창덕궁에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역대왕들의 초상화와 명성황후의 빈전 등을 경운궁으로 모두 옮기며 궁궐의 증축공사를 감행했다.
 궐안의 선원전, 정관헌, 돈덕전 등의 서양 건물들이 바로 이때 세워졌다, 경운궁에 이렇게 서양식 건물이 많아진 이유는 제한제국과 외국, 특히 서양제국과의 관계가 긴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 건물들의 대부분이 외국사신을 접견하는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서양 세력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해보려 했던 고종의 외교적 몸짓을 읽을 수 있다.
 석어당에서 동편의 덕흥전으로 넘어가는 담장 가운데 반월문이 있는데, 바로 유현문이다.'유현문(惟賢門)'은 오직 어진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란 의미이다.
 고종이 60세에 딸을 얻으시니 막내딸 덕혜옹주란다. 누구든지 지나 다니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유현문. 왕은 옹주가 이동할 때면 반드시 유현문을 통과하게 했다는 일화가 예사롭지 않가.
 문수사 용지천의 샘물을 마시면 지혜를 가져다 주듯, 옹주는 덕수궁의 꽃으로 왔다가, 꽃상여를 타고 꽃구름 속에 꼭꼭 숨어 훨훨, 꽃바람 되어 타오르는 불꽃으로 우리 곁에 언제나 활활.
 덕수궁 담에 나 있는 문을 일컬어 일각문으로 부르며, 왼쪽에서부터 창신문, 유현문. 용덕문, 석류문이다. 특별한 용도보다는 구역을 구분하는 담 사이의 문이겠지만 홍예로 기다란 무지개 다리 알록달록 천상으로 인도한다.
 유현문은 안과 밖의 모습이 서로 다름을 볼 수 있다. 바깥쪽에는 유현문이라는 글귀가 진서체로, 좌우에는 불로초를 입에 물고 창공을 날으는 학 문양이 장식되어 있지만 안쪽으로는 같은 위치에 운룡이 각각 새겨져 있다.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편전과 침전을 감안하여 무늬를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리라.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편전과 침전을 감안해서 무늬를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전돌을 아치형으로 쌓고 글씨의 좌우에 봉황을 새겨 배치하는 등 조형적 감각에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유현문은 땅의 높낮이에 따라 담장의 높이에 변화를 준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꽃담 사이로 작은 일각문은 조선조가 비운의 역사, 설움의 역사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눈치다.
 이곳의 꽃담 형태는 화려함이나 탐스러움이 깊이 배어나지 않으며, 소박하고 단아하며 야하지 않아 한국인의 점잖은 품위를 그대로 보는 듯하다. 색은 배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되, 흙색에 근접해 다른 궁궐의 꽃담에 비해 강약이 적은 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함녕전과 덕홍전의 담장에서 석어당 쪽으로 남단, 중앙, 상단에 각각 일각문이 있다. 중앙의 일각문은 유현문으로, 벽돌로 쌓고 통로를 아치형으로 연 단문(團門)의 구조이다. 남단의 일각문은 석류문이고, 북단 일각문으로 들어서면 정관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좌우로 꽃담이 이어진 유현문은 벽돌로 쌓아 아치형으로 문을 내고, 그 위에 기와를 얹는 만큼 전통과 근현대의 조화를 고스란히 담은 명품이다. 경복궁의 꽃담에 비해 검소하다 할까, 덜 예쁘다고 할까.
 꽃향기 가득한 한국의 전통 정원 ‘희원’의 산책로 끝 보화문은 오늘도 안녕히 잘 있는가. 그대들의 원형 덕수궁 유현문은 예나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고아한 예술성을 한 눈에 느끼게 하는 주인공이라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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