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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8)흔들리는 꽃담

 

 

  켜켜이 쌓은 돌담 세월을 품다. 고향이 시골이 아닌 사람이라도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한적한 시골 마을에 구불거리는 돌담길을 돌아 대문이 활짝 열린 옛집을 연상하곤 한다.
 돌담 안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는 담장 밖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간 감을 매달고 있다.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 시커먼 돌을 초록색으로 뒤덮는 이끼, 돌담 위로 고개를 쑥 내민 해바라기 등 정겨운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돌담길이 있는 마을은 고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시골 마을들이다. 고려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마을 역사 못지않게 돌담도 오래 묵었다.
  돌담은 대개 마을 주변에 있는 돌로 쌓는데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서민적이다.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지만 그 자연스러움 안에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고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낸 돌담은 우리네 향토적인 서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난 시절, 가로등이 켜지면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듬이 소리, 통금 시간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도 들려왔다. 동네 아이들은 바로 이 흙돌담 골목길에서 한데 어울려서 놀았다. 혼자 놀기보다 여럿이 모여야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도 장난감도 없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들을 손쉽게 놀이 도구로 변신시켰다.
  돌이나 깨진 벽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비석치기를 하고, 헌 공책을 뜯어 딱지를 접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구슬 몇개만 있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했다. 이 모든 놀이가 돌담길에서 이루어졌다. 따로 놀이터가 없었지만 돌담길이 아이들에겐 놀이터보다 좋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 새 하루 해가 저물었다. 돌담길 끝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비스듬이 경사진 골목의 끝, 높다란 양쪽의 돌담길 끝. 서녘으로 비끼는 샛노란 햇살이 남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분주한 빨래들을 이고 앉는다. 길 건너편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지붕 낮은 집들의 애환이 골목길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얼싸 손 잡아줄 듯 정겨웁다.
 담은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지만 이웃집과 소통하는 역할도 했다. 길 쪽으로는 담이 높지만 집과 집 사이의 돌담은 마당이 들여다 보일 정도의 높이가 대부분이다.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소쿠리가 오갔다. 그 안에 정이 오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돌담에 고사리나 취나물 혹은 깨끗하게 빤 운동화를 널어 말리기도 했다. 더러는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이 여러 채 있어 돌담과 잘 어우러진 풍경을 빚어 낸다. S자로 구부러진 마을 안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느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가 초저녁의 달동네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은 고가, 감나무,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의 명소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10년 12월 현재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등 모두 18건의 마을 돌담길을 문화재로 등록함으로써 삶의 패턴이 현대화되면서 어쩌면 우리 대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돌담길’이 이젠 우리 아들, 딸에게도 놀이와 추억의 공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등 4종의 꽃담만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을 뿐이며 흙으로 만든 마지막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임실 사선대의 꽃담처럼 주위 곁에서 사러져가고 있다. 꽃담들은 주로 흙을 소재로 축조한 까닭에 보존에 어려움이 뒤따랐고 중앙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모진 풍파에도 닳지 않는 마음의 주춧돌을 소쇄원은 나눠주고 있다. 때로는 멈쳐서 뒤쳐져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인생의 목표든 꿈이든 혹은 잃어버린 그 무엇이든지 간에, 느림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도 동기도 생긴다. 그 당연한 삶의 이치가 시간을 건너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선인들의 꽃담과 낮은 굴뚝에 짙게 배어있다. 문득,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들의 이별을 애달파하던 꽃담의 사연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 자연의 변덕에도 장단을 맞춰주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등을 내어준 토석담의 넉넉함에 안겨보고 싶다. 세월이 흘러가도 그 길을 여전히 지키는 있는 꽃담 밑에서 정겨운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어라. 아산 외암마을의 쪽빛 한쪽을 벗삼아 돌담길을 걷노라면, 얼굴을 반쯤 내민 해바라기는 경겨운 친구, 바로 그 돌담을 휘감고 내뻗는 덩굴들은 느릿느릿, 내 삶의 슬로 시티(Slow City). 이종근기자

경복궁 자경전 꽃담은 9개

 


 경복궁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1867년에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 후 두 차례의 화재를 만났으며 1888년(고종 15년)에 다시 지었다. 자경전은 꽃담으로 유명하며 서측 담장에는 꽃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의 꽃 문양이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 건판 궁궐 사진은 일제에 의해 크게 유린됐고,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파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복원과 관련,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경복궁 광화문과 육조거리의 모습과, 경복궁 자경전 꽃담의 원래 모습도 재미있다. 현 삼청동쪽에서 본 건춘문과 동십자각 인근에는 중학천이 흐르고 빨래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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