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함초롬히 피어나고 있다. 나른한 햇살을 받은 담장 한켠에 꽃들이 흐드러진다. 궁궐의 담장에 꽃이 벌써 봉긋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또 어느 절집에 노란 햇살 비껴 들어 꽃들이 함초롬히 피어난다. 그윽한 향기 그대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온 우리 꽃 문양이 천년만년 피어난다. 경복궁 자경전의 서쪽 담은 다름 아닌 주황색의 전으로 축조한 꽃담. 내벽에는 만수의 문자와 격자문, 육각문, 오얏꽃 등이 정교하게 장식되었고, 외벽에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이 든 조형전으로 구워 배치했다. 조선 시대 꽃담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면서 그윽한 향기로 천년을 사는 꽃문양으로 치장해 영원불멸을 기약하고 있다.
KT&G가 최근 전주시에 기증한 전주 태평문화공원의 하이라이트는 경복궁 자경전을 꼭 닮은 꽃담이다. 길상문자인 수복, 강령, 부귀, 다남, 만수, 쌍희(囍) 등을 벽돌로 무늬를 놓아 쌓은 까닭에 더욱 운치를 더한다. 이 공원은 KT&G가 지난 2002년 전주연초제조창 폐창 이후 아파트 신규 공급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련법에 따라 단지 부지 3곳에 총 1만2,126㎡규모의 개방형 근린공원을 조성, 전주시에 기부채납하게 된 것이다. 전주 태평문화공원같은 꽃담이 주위에 보다 더 많이 세워져 우리들의 6감이 풍성히 넘쳐 흘렀으면 한다.
최근 미술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건축가들이 담장에 팝아트풍의 그래피티를 그려넣곤 하지만 우리의 현대 건축물에서 담은 그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거나, 주거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기능만이 강조돼왔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담에 높은 예술성을 부여한 유구한 전통이 있었음을 혹시라도 아는지? 우리 선조들은 담에 길상(吉祥)적인 의미를 담은 글자나 꽃, 동물 등의 무늬를 새기곤 했는데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담들을 '꽃담' 이라고 이름 붙인다.
여러 무늬를 놓아 독특한 치장을 한 벽체나 굴뚝, 합각(지붕 위 용마루 옆면에 삼각형 벽으로 꾸민 부분), 담장의 통칭으로 쓰고 있는 꽃담은 집주인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 들여 초청한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 그래서 한국인의 마음씨를 꼭 빼다 닮았다. 전북이 대한민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꽃담 1번지이지만 관광자원화가 되고 있지 않고 실생활에 활용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현재 서울(11곳), 경기도(7곳), 강원도(2곳), 충청도(10곳), 전북(35곳), 전남(5곳), 경상도(15곳)로 확인돼 전북이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꽃담을 간직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북은 문화재(등록문화재 등)로 지정된 것은 단 한 곳도 없음은 물론 활용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꽃담은 요즘 바람이 불고 있는 '걷고 싶은 길'의 새로운 테마가 될 것이 분명하며,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한국 소개 달력으로 활용됨은 물론 다큐멘터리, 간행물,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의 부재료 및 주재료의 소재등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책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전략)로 널리 활용될 수 있다.
해안선따라 권역별 한국의꽃담관광투어(예시)를 하면 어떨까. 동해안권 및 서울의 꽃담투어(방문순으로)로 낙산사-고성왕곡마을-서울 궁궐(경복궁, 창덕궁 등)-전등사-신륵사, 서해안권 꽃담투어로 개심사-김성수생가와 별장-김정회고가-송광사-대흥사-장흥위씨고택, 남해안권 꽃담투어로 쌍계사-쌍계사 국사암-해인사-남해 용문사-범어사를 연결했으면 한다.
현재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꽃담을 응용한 문화상품을 여러 종류 시판하고 있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을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상품화하여 원형의 미를 살리면서 현대적 가치를 입히고 있는데 다름 아니다. 안쪽에 글을 쓰고 종이를 접어 꽃담 형태를 완성해 가는 접지형 카드를 비롯 일러스트레이션 카드, 명함지, 경복궁 꽃담 엽서, 나전 명함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에 새롭게 둥지를 튼 강북삼성병원 종합건진센터는 환자가 지루하게 기다리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건강을 생각하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9765m²(약 3000평) 규모의 공간에 자연이 접목된 게 특징. 환자들이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대기하는 중앙휴게실에는 황토로 만든 전통 꽃담을 설치해 흙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검진센터에 자연을 도입한 이유는 환자가 편안한 기분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 고유 색상으로 디자인한 '꽃담 황토색(Seoul Orange)' 택시를 요즘 서울 도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시는 그 동안 자동차 제작사 및 택시업계의 협조로 현재 꽃담황토색 택시가 본격적으로 생산, 출고되고 있으며, 이미 서울시내에 상당수의 꽃담황토색 택시가 운행 중이라고 밝혔다. 완전 꽃담황토색(Seoul Orange)택시가 415대, 일부 꽃담황토색(Color Lapping)택시가 123대, 꽃담황토색 외국인관광택시가 164대이다. 서울시는 꽃담황토색 택시가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뉴욕하면 옐로우캡이 떠오르듯이 서울하면 꽃담황토색 택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민들의 많은 이용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02년부터 문화산업의 진흥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춰 문화 콘텐츠 창작 활성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창작 소재 개발을 위해 ‘우리 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음악, 출판만화, 캐릭터 영화, 전자책, 게임, 방송영상, 모바일·인터넷 콘텐츠 등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설화, 역사, 미술, 음악, 건축, 무용, 공예, 복식, 세시풍속 등의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이다. 건축분야의 경우 건물과 공간이 갖는 기능과 의미, 또 그 속에서의 생활상이나 담장, 굴뚝, 난간, 공포 등 건축 부재의 세부를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는 사진 라이브러리, 또 문화재 실측도를 기초로 분해 조립이 가능한 3D 모델링 데이터와 게임 등에 적용할 있는 모듈 형태의 건축물 세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된 결과물을 통해 국민들의 보는 즐거움을 한차원 더 향상시켜 주었으면 한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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