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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이용엽씨 전국향토논문 대상

 

 

 

 전주문화원(서승 원장) 이용엽 동국진체연구소장이 지난 8일 서울 동작문화원에서 열린 제25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은둔 문화의 꽃' 와룡암으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와룡암은 긍구당 김중정이 병자호란으로 인해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첨지중추부사직을 사임하고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소재한 와룡암 암반위에 강당을 짓고 부속 건물인 긍구당을 지어 1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유생을 가르치던 360여년의 전통을 이어온 유서 깊은 학교에 대한 조사였던 것.
 특히 과거의 의미있는 역사가 묻히고 있는데 이번 연구는 와룡암이 다양한 접근으로 인하여 역사속으로 여행을 시도해 대상을 받았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찍 송나라 주잠이 이곳에 제자 7명을 데리고 찾아왔다고 하여 그의 영향으로 주자천, 안자천, 정자천의 지명 유래가 되었으며, 구봉 송익필, 강산 이서구, 도암 이재 등이 이곳을 찾았다.
 그후 긍구당의 9대손 김태현이 이곳에서 학문의 꽃을 피웠다. 그는 학문이 깊어 서하11권을 남겼으며 조정의 박영효, 김일부 등과 교유하며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이 무렵 동학농민혁명 이후 을사보호조약으로 어수선한 정국에서 무과 급제 후 통정에 오른 개화세력인 김양식은 관직을 버리고 이름까지 우식(宇植)으로 바꾸고 이곳 와룡암에 찾아와 김태현과 만나 거처를 정한다. 서로 의견이 일치되어 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주천향약재단을 모체로 사립화동학교를 제자들 중심으로 설립하고(1908)교장이 되었지만 일제는 그동안 눈에 가시처럼 느꼈던 화동학교를 강제 폐교시키고 그해 공립주천보통학교로 간판을 고쳐 달았다.
 이로써 11년의 화동학교 역사는 사라지고 현 주천초등학교 연혁지에 화동학교 논4정5반(1300평) 교사 교구 일체를 인수받아 개교하였음이 나타난다. 다만, 화동학교 응원가를 1907년 서울 연성학교(훈련원)에서 부르던 노래를 약간 고쳐 불렀다는 사실은 새로운 사실 가운데의 하나다. 또한 와룡암에 모여든 인물을 하나하나 추적해 보았기도 했다.
 이용엽소장은 "직장에서 정년한 지 10년이 넘어 시작한 향토사 연구로 대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어 기쁨 보다도 두려움이 앞선다"며 "화동학교의 설립과 운영의 배경이 되는 와룡암과 긍구당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함을 느끼게 되면서 주자의 무이구곡을 연상할 만큼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1650년대에 창건된 와룡암과 긍구당은 수많은 인물들의 은둔과 사상계의 중심 인물들이 와룡암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소장은 국립농산물검사소 전북지소 관내에서 30여년 근무, 임실출장소에서 정년 퇴임했으며, 전북역사문화학회 부회장, 국사편찬지역사료조사위원,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위원 자료심의위원, 진안역사박물관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인삼의 발자취(1998)', '전북 미술대전 30년사(1999)', '전북 미술약사(2007)' 등의 저서와 함께 전북지역 서화가 및 지역 인물 등을 집중 발굴, 10여 편의 사료를 이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