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우리나라 근대기 스포츠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던 엄복동 선수의 자전거를 6월 8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
“엄복동 자전거”는 사이클 선수 엄복동(嚴福童, 1892~1951)이 타던 자전거로, 엄복동은 1910년 전 조선자전거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여 월등한 기량으로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국권 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그의 우승으로 인한 민족적 일체감과 자긍심은 대단하여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할 정도였다.
이 자전거는 1910년~191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 러쥐社(Rudge-Whitworth) 제품으로 바퀴 틀이 목재로 제작된 경주용 자전거인데 자전거 전면 상표에 표기된 7자리 숫자를 통해 이 자전거를 만든 영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전거임이 밝혀졌다. 엄복동 선수는 이 자전거를 사용하다 은퇴 시 후배 선수에게 물려주었고, 광복 전 이 자전거를 소유하게 된 박성렬 선수는 한국전쟁 때 이 자전거를 둘러메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근대기 최초의 스포츠 영웅 엄복동 선수의 경주용 자전거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자전거로서 체육사적·상징적 가치가 큰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외에도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차 381호”, 숙명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명신여학교에 고종황제 엄귀비와 영친왕궁에서 하사한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1)”도 동시에 문화재로 등록예고 하였다.
1) 완문 :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기에 관청이 발급한 승인문서
붙임]
문화재 등록예고 유물 현황 |
□ 유물 목록
연번 |
문화재 명칭 |
수량 |
소재지(소장처) |
소유자 |
비고 |
1 |
엄복동 자전거 |
1건 |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 323-1 주풍그린빌 101호 |
김 근 우 |
|
2 |
전차 381호 |
1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길 50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특별시 |
|
3 |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 |
1건 3점 |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2807 (숙명여자고등학교 사료관) |
숙명여자고등학교 |
|
□ 주요 연혁 및 특징
1) 엄복동 자전거
< 규격 : 길이 168.5cm․높이 90cm, 재료 : 철재․목재 , 제작시기 : 1910년대 >
ㅇ 일제시대 스포츠 영웅 엄복동(嚴福童, 1892~1951) 선수가 타던 자전거이다. 엄복동은 1910년 전조선자전거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이후 1929년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여 월등한 기량을 펼치며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비록 자전거 경기라는 제한된 부분이지만, 국권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그의 우승으로 인한 민족적 일체감과 자긍심은 대단하여 국민영웅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ㅇ 이 자전거는 1910년~191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 러쥐社(Rudge-Whitworth) 제품으로 엠블럼의 7자리 숫자(1065274)로 보아 특별히 제작된 경주용 자전거로 보인다. 엄복동 선수가 사용하다 후배선수에게 물려준 것을 양도받은 박성렬 선수는 한국전쟁 때 이 자전거를 둘러메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근대기 최초의 스포츠 영웅 엄복동 선수의 경주용 자전거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자전거로서 체육사적․상징적 가치가 큰 유물이다.
2) 전차 381호
< 규격 : 길이 13.66m․너비 1.8m․높이 6.19m, 재료 : 철재․목재, 제작시기 : 1929년~1930년 >
ㅇ 일본의 일본차량회사(日本車輛會社)에서 제작된 반강제(半鋼製) 보기식(Bogie式) 궤도차량으로 1930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 시내를 실제로 운행하던 전차이다.
ㅇ 전차 운행 중단 이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전시되다 2007년 서울역사박물관이 인수하여 1년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2009년부터 박물관 야외에 전시하고 있다. 서울에 남아있는 2대의 노면전차 중 하나로 희소성이 있고 20세기 중반 서울의 교통방식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3)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
ㅇ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6년 5월 설립한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의 설립 초기 교사 자료인 태극기, 현판, 완문 3점의 유물로 교육사적 가치가 큰 유물이다.
ㅇ 태극기는 ‘明新女學校’라는 묵서와 함께 4괘와 태극문양을 틀을 사용하여 찍어낸 기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물감 사용 태극기라는 점, 4괘의 배치가 특이한 점, 교육현장에서 발견된 최초의 태극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현판은 ‘明新女學校’ 글자를 양각으로 새겼고 네 가장자리는 조선시대 궁중 현판의 일반적인 형식에 따라 액틀을 붙이고 채색으로 화초문(花草紋)과 운두문(雲頭紋)이 장식되어 있다. 완문(完文)은 1907년 5월에 영친왕궁(英親王宮)에서 명신여학교의 운영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토지를 하사한다는 내용의 공문서로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근대교육 초창기에 설립된 학교의 재정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황실문서이다.
※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 목록(1건 3점)
명 칭 |
수량 |
규격(cm) |
재료 |
제작시기 |
태극기 |
1점 |
135×105 |
견직물 |
1906년 |
현판 |
1점 |
200×76 |
목재 |
1906년 |
완문 |
1점 |
29.5×31.5 |
종이 |
19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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