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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선거 사흘 전, 홍보의 변천사!

 

왼쪽부터 특이한 옷차림으로 이목을 끄는 제 2대 대통령선거 운동원들과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선거 서울시립후보자 연설회에 모인 인파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란 조직 또는 단체에서 의사소통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업적 등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홍보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생겨났다. 월드컵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수 많은 기업 홍보팀 보다도 요즘만큼은 이 '홍보'가 더욱 절실한 사람들, 바로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과 그 홍보팀 직원들일 것이다. 유독 짧게 느껴지는 선거운동기간과 1인 8표라는 유례없는 선거형식, 이 상황들이 후보자들의 필사적인 자기 홍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때 이른 무더위에도 홍보점퍼를 입고서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자신을, 자신의 공약을 알리는 후보자들의 모습이 요즘은 어느 동네에서나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한 후보자들의 ‘자기 알리기’가 비단 요 근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선거벽보와 거리유세

왼쪽부터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벽보와 조금 더 정돈된 70년대 벽보, 그리고 2010 6.2 지방선거의 벽보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현빈

대한민국 최초의 선거는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헌국회의원선거이다. 이후 1950년에 실시된 제2회 국회의원선거부터 조만간 치러질 2010년 6.2 지방선거까지 그동안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선거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50년대의 후보자들이 오늘날 선거 출마자들처럼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하면서 자신을 알리지는 못 했을 터. 그 당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을까? 

선거홍보의 수단은 진화를 했을지 몰라도 그 황금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당시의 후보자들도 ‘최대한 튀게,’ 그리고 잦은 유권자들과의 접촉을 목표로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당시 여건에서 이 방정식의 해가 되었던 선거홍보수단이 바로 거리유세, 연설회였다. 거리유세와 연설회는 후보자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그리고 가장 먼저 사용했던 선거홍보수단이었다. 1952년 제 2대 대통령선거의 경우 당시 세태에서는 상당히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운동원들이 후보자를 거리에서 선전하였으며 후보자 합동연설회의 모습도 1958년 제 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거벽보 또한 대한민국선거사와 그 맥을 같이 하는데 54년 제 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초기의, 다시 말해서 아직 잘 정돈되지 않은 선거벽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본적인 홍보수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의 발달과 공직선거법 등의 영향을 받아서 좀 더 깔끔한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거리유세와 합동연설회도 마찬가지로 운동원들의 통일된 복장, 공평하게 제한된 시간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점점 다듬어져 갔으며 오늘날에는 어깨띠와 같은 일반적인 소품은 물론이고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올해에는 우산을 그 홍보수단으로 삼는 이색 아이디어까지 속속 나타나고 있다.

TV 토론의 등장

왼쪽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02년 대선 당시 홍보영상과 이명박 대통령의 07년 대선 당시 홍보영상 ⓒ 플리커

선거홍보의 역사는 사실상 미디어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한다. 즉,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그에 맞는 선거홍보수단도 생겨나게 된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79년 Buggles의 노래처럼 TV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 이전에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에 출마한 사람을 접하는 방법은 고작해야 직접 연설회에 참석하거나 선거벽보, 혹은 ‘듣는’ 정도가 그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Television이라는 단어에 나타난 것처럼 당시 TV의 등장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tele라는 접두어의 의미)’ 사람에게도 마치 앞에서 말하듯 ‘보고 듣게’ 해주는 매체의 혁명에 가까웠다. 

왼쪽부터 02년 대선 돌풍의 원동력이었던 노사모 사이트와 6.2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홍보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트위터 ⓒ 노사모, kimmoonsoo1 

이러한 성격들이 합쳐져 나온 것이 한국에서는 1995년 서울시장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후보자 TV토론이었다. 이후 TV토론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이후 97년 대통령선거, 2002년 지방의회 및 자치단체장선거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선거의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이외에도 TV의 등장으로 인해 TV광고시장 또한 선거홍보의 장이 되었는데 그 성공적인 케이스가 지난 2002년 제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록수’광고와 2007년 제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현 대통령의 ‘욕쟁이 할머니’광고이다. 따라서 이 TV광고, 특히나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도 큰 선거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홍보수단이 되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선거홍보수단은 매체의 발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지만 요새 환경미화원들의 미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선거명함의 경우에는 그 조그마한 크기와 콤펙트한 내용으로 인해 미디어 보다는 교통의 발달, 즉 지하철이 활성화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건물전체를 뒤덮은 대형현수막들 ⓒ 김현빈

예나 지금이나 선거의 승패는 홍보에 있다.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자주 유권자들과 접촉을 하느냐 그리고 어떤 이미지를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전달하는지가 바로 이 선거홍보의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든 후보들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활용하면서 선거홍보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선거홍보가 오히려 유권자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예전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 스펨문자부터 이번 지방선거부터 규제가 없어진 대형 현수막으로 인한 피해까지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대신 민원과 항의를 받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규제가 요구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그 선거의 주체는 바로 유권자이다. 선거홍보의 황금률은 튀는 전략과 잦은 유권자와의 접촉이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유권자들의 반응일 것이다. 그 홍보를 유권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반응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생각하는 선거홍보의 ‘질’이 바로 후보자들이 고려해야 할 점이다. 진정으로 유권자들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선거홍보의 황금률에 앞서는 선거홍보의 ‘잠언’일 것이다. 
* 편집자 주
6월 2일은 지방선거날입니다. 전국 각 시도를 비롯, 각 지역의 '지방자치'를 책임질 후보들을 뽑는 날이지요. 굳이 투표의 중요성을 구태의연하게 반복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나와 가족들을 위해, 투표로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글/김현빈(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