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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섬세한 바느질 미학




우리만의 고유한 멋과
기품을 느낄 수 있는 한복의 세계

아름다운 한복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바느질하여 완성한 장인의 노고가 숨어 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복 한 벌을 만드는데에는 보통 한두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구혜자 여사에게 한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소중하고도 귀한 작품이다. 이번에 침선장 보유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재주가 남다를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어떤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이해만 있으면 누구나 노력을 통해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갖게 됩니다. 즉, 얼마나 성실하게 꾸준히 훈련하고 작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하루 작업한 사람과 한 달 동안 작업한 사람의 재능이나 결과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어떤 일이든 열정을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한다면, 누구든 그 분야의 기능장이 될 수 있습니다.”


가늘고 섬세한 손끝 하나로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주목받아

침선장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 기법을 통해 옷 등을 짓는 장인을 뜻한다. 그리고 구혜자 여사는 우리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직접 손바느질로 지어내는 국내 최고의 장인이다. 최근 구혜자 여사는 그녀의 가늘고 섬세한 손끝 하나로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단번에 휘어잡았다.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행사 기간 중 펼쳐진 특별전시 ‘2007중요무형문화재보유작 작품전’에서 옷과 장신구 등을 바느질로 만드는 작업 과정을 직접 전시장 내에서 시연하며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후문에 따르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이 자리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그녀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40년의 긴 세월을 거치며 인내와 열정의 장인 정신으로 형성된 것이다. “저는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배웠어요. 예전에는 다 도제식으로 어깨 너머 배웠지요. 시어머니께서 원래 바느질 하시는 것을 좋아하셨고 솜씨도 좋으셨어요. 항상 집에서 한복을 만드는 일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익히게 되었죠. 얼마 안 있어, 시어머니께서 중요무형문화재 침선장이 되시고 난 후 저도 본격적으로 침선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습득 과정이 쉽지 않았죠. 기술을 연마할수록 어렵고 힘이 들었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연습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3년은 배워야 침선의 기본을 알게 돼

서울 삼성동 소재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에 마련된 구혜자 여사의 작은 공방은 작업실로 쓰이고 있다. 또한 때때로 이곳은 젊은 후학들이 바느질을 배우면서 작업하는 공간으로도 쓰여진다. 한복 미완성본이 보이고, 천 조각, 실밥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 공방에는 한번 작업이 시작되면 톡톡 바느질 소리만이 조용하게 들려 온다. 사실, 전통 바느질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섬세함이 요구되는 만큼 손작업이 쉽지 않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구여사는 현재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하고 있다. 수강생은 의상학과 학생들부터 20, 30대 주부에서 중년의 주부들까지 연령과 계층이 매우 다양하다. 처음 1개월은 기초 바느질부터 가르치고, 그 후 우리 고유의 신생아 옷인 아기 배냇저고리로 첫 습작을 지도한다. 한 달 쯤 지나 습작이 완성되면 아기 백일 옷 만들기 단계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 무렵이 고비다. 자신의 적성과 인내심이 이기지 못하면, 작품을 하는 과정 중 기권자가 속출하게 된다.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단계 단계를 잘 넘어 1년차쯤 되면 성인 옷을 시도하고, 2년차가 되면 전통 예복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으며, 3년차에 이르면 혼례복까지 손수 바느질해서 만들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최소 3년은 배워야 침선의 기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고, 재능도 처음부터 발견되지 않습니다. 반복적인 훈련과 노력, 그리고 열정과 인내심이 있어야 어떤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 역시 침선에 들어선 이후 초창기 10년간 여간 맵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인 솜씨의 시어머니 앞에서는 여간해서 눈에 들기 어려웠죠. 꾸중을 듣기도 다반사였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보람으로 인내하면서 일을 익힌 것입니다.” 구혜자 여사의 바느질은 꼼꼼하고 튼튼하며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예전의 침선장 보유자였던 시어머니가 침선이 생활화되었듯, 구여사에게도 침선은 삶의 일부이자 생활이 되었다. 즉 매일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바느질하는 일 역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침선장 보유자로서 재능 있는
전통 공예인들을 꾸준히 발굴해나갈 계획으로

전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구여사의 모습이 무척 단아해 보인다. 한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에게 한복은 그저 입기 불편한 전통 의상으로 치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구혜자 여사는 이런 점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또 사람들은 한복하면 무조건 비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옷도 종류가 많고 가격이 천차만별이듯 한복도 이제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고 전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요즘 세대는 한복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만 한복을 입었지요. 요즘 사람들은 전통이라고 하면 낡고 구습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더욱 전통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앞으로 보다 살기가 좋아지고 경제가 안정될수록 사람들은 전통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즉, 생활이 더 편리해지고 발전할수록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또한 커지리라 확신합니다. 이는 제 희망이자, 바람이기도 하고요.” 스승인 시어머니가 전통 복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계승했다면, 구여사는 이를 체계화하고 계량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녀는 한복 제작뿐 아니라 조선시대 복식사 연구와 재현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좋은 후학들을 길러내는 일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또한 대학에도 출강하고 강좌도 꾸준히 다니면서 개인적인 작품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르친 제자가 내 뜻을 흡족한 결과로 만들어냈을 때 가장 만족스럽고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침선장 보유자로서 제자를 양성하고 전통 공예인들을 발굴하는 것이 제 책임이자, 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구혜자 여사는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힘 닿는 데까지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정기적으로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사람들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싶다는 그녀에게서 은근하지만 서서히 짙어오는 한국 여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글 : 허주희
▶사진 :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