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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문화!

전주 한옥마을 추억의 박물관

 

“버려졌다고 해서 쓸모가 없지는 않아요. 창조적인 상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죠. 버려진 물건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골동품이라는 의미로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는 추억이 있다. 몇 백 년 지난 오래된 물건은 아니지만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는 물건들이 그곳에는 존재한다. 친구들과 배고픔을 달랬던 문구점의 불량식품이라든지 오래된 영화 포스터라든지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딱지라든지 우리 손을 거치면서 항상 주변에 존재했던 아주 소소한 물건들이 그곳에서는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 값진 골동품이 되어 다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지금은 중견배우가 돼 있는 한 여배우의 앳된 얼굴이 낡은 잡지 속에 담겨있다. 이제는 찾기도 힘든 하이틴 로맨스를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이는 바로 그곳의 주인.


 

 추억박물관의 곽승호 관장(41·사진)은 최근 고물상에서 우연찮게 하이틴 로맨스 150권을 발견했다면서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기뻐했다. 누구에게는 이미 버려질 정도로 쓸모없어진 하찮은 물건이 그의 손에 들어오면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져진다.

 그러한 물건들이 ‘추억박물관’에는 가득하다. 옛 시절 ‘점방’이라 불리던 가게에 있었던 생활용품부터 문방구 용품, 오래된 포스터, 흑백 사진, 딱지 등 1만 점이 훨씬 넘는 물건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다. 

 


 내부 구성도 특이하다. 박물관 자체가 옛 과거의 풍경을 담고 있다. 자취방의 모습과 학교 교실이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정경까지 테마별로 구성한 추억박물관의 내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향수로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특히, 곽 관장이 가장 아낀다는 교육용 자료들은 대부분 물건들처럼 80년대 작품도 있지만, 이제는 정말 찾아볼래야 찾을 수도 없는 5~60년대 교육 자료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일제 강점기의 교과서부터 1950년대 초 칼라본 교과서까지 지인들을 통해서 구입한 교과서들은 따로 전시를 개최할 정도.

 


 이처럼 사람들의 추억을 먹고 사는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는 곽 관장의 ‘수집병’은 정말 우연찮게 아파트 단지에 누군가가 버려놓은 일기장을 읽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곽 관장은 “아파트에 살면서 쓰레기장에 버려진 일기장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게 너무 재미가 있어서 주어왔었다”면서 “그것을 계기로 오래된 물건 속에는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있다는 생각에 주변의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업을 하던 당시 조금씩 모아놓았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사무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꽉 차버렸고, 그것을 계기로 아예 박물관을 건립하자 시도해 2006년 조그마한 추억박물관을 시작하게 됐다는 곽 관장.
 지난해 지금의 2호점을 내놓으면서 좀더 크고 넓은 환경에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확장했다는 곽 관장은 너무 수집에만 빠져있으면 욕먹을 텐데 자신은 추억박물관을 하고 있으니 욕먹을 일은 없을 거라며 특유의 유쾌함으로 웃어 넘겼다.

 곽 관장은 “지금 전시된 물건들은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의 물건이고 우리와 관련된 것들이기에 더욱 친숙하고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가끔 이 공간에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이곳이 세대를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가 어릴 적에 자기고 놀던 물건들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 된다”면서 “아주 오래된 물건은 역사 학사처럼 거창하게 가르쳐줄 수 없지만 여기 물건들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을 이끈다”고 덧붙였다.
 추억박물관은 거창한 것을 가르쳐주거나 교육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그냥 와서 즐겼으면 한다는 곽 관장.

 

 어른들은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고 아이들은 부모시대의 추억을 엿보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또한 추억박물관은 자신도 잊고 지낸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한다면서 곽 관장은 최근 만났던 관광객 중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 번은 구경 온 관광객이 추억박물관 안을 살피다가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사진이 걸려있었다는 것. 1970년대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다니던 여고생 시절 찍은 졸업사진이 떡 하니 추억박물관을 장식하고 있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고.
 또 한 번은 분유의 우량아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친구라고 말하던 관광객은 “저 친구가 지금은 외교관이 됐지”라면서 신기해했다고 한다. 

 이러한 풍경은 오직 추억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 추억박물관은 이처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했던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들이 한 곳에 모이는 모두의 추억 장소인 셈이다.

 


 곽 관장은 “자주 자료들을 바꿔 전시하기 때문에 한 번 오면 볼게 없는 곳이 아닌 두세 번 와도 계속 볼거리가 많은 공간임으로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줬으면 한다”면서 “버려진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사라진 것들이 살아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엔도르핀이 끊이지 않은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승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