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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태조어진 국보 승격 가능한가

 


 전주시가 태조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와 학술행사를 추진하는 가운데 기념 사업의 하나로 태조어진(보물 제931호)의 국보 승격 작업을 추진 중이어서 관심을 갖게 만든다.

 

 태조어진의 국보 승격을 위해 전라북도 문화재심의위원회에 심의자료를 작성, 전달한 상태이다. 앞으로 전라북도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조사,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에서 국보 승격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 물론 국보(國寶)는 우리나라에서 건축물이나 유물 등의 유형 문화재 가운데에 중요한 가치를 가져 보물로 지정될 만한 문화재 중 인류 문화적으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물고 희귀한 것 등에 한해 지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물이 한수 아래가 되지는 않는다.

 

  태조어진의 국보 승격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시는 한국의 초상화 가운데 왕의 초상 즉, 어진이 지닌 비중 및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태조어진은 1548년(명종 3)까지만 해도 무려 26점이나 전해왔으나 현재는 경기전 태조 어진만이 유일하게 전해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보 승격의 의미를 더한다. 태조어진은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의 하나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 오래된 화법임을 알려준다. 의자에 새겨진 화려한 용무늬는 공민왕상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왕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선관은 골진 부분에 색을 발하게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영법을 사용하여 얼굴을 표현하고 있다. 고종 9년(1872)에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인데, 전체적으로 원본에 충실하게 그려 초상화 중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소화해 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다.

 

때문에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되면 우선 어진의 가치 상승이 예상됨은 물론 나아가 어진을 봉안할 경기전 건물과 함께 태조 어진과 경기전을 보유한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시의 위상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