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문은 부처님의 세계, 불국정토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작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일주문(一柱門)’이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지을 사방에 4개의 기둥을 세우기 마련이나 일주문의 경우 기둥이 일직 선상의 한 줄 늘어서 있다. 그래서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일주문의 이러한 독특한 양식은 ‘일심(一心)’을 의미한다.
즉, 일주문은 신성한 사찰에 들어가기 전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일주문엔 왜 문이 없는 것을까. 도둑을 막기 위한 문이 아니라, 번잡한 세상과 불법의 세계를 나누는 상징적인 문이기 때문이다.
만일 나쁜 것이 남아있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겠다는 하나된 마음이 없다면 일주문을 통과할 자격이 없다.
건축 구조는 하나된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한 일(一)’자로 늘어선 기둥이 그것이다.
보통 건축물은 사각형이 기본이고 기타 다각형의 형태로 기둥과 벽을 세우고 위에 지붕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주문의 기둥은 옆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어 우리 조상들의 탁월한 건축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일주문을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의 표현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회삼귀일이란 뜻은 세 가지가 모여서(會三) 하나로 돌아간다(歸一)는 뜻을 담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는 성문승(聲聞乘), 12인연법을 혼자서 깨우친 연각승(緣覺乘), 중생의 제도라는 대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보살승(菩薩乘), 이렇게 셋이 모여 ‘반야정각(般若正覺)’이라는 하나로 돌아간다(歸一)는 뜻이다.
‘반야정각’이란 참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에 의한 바른 깨우침이란 뜻으로, 앞의 세 가지는 모두 지혜에 의한 깨우침이란 하나로 통합된다는 뜻이다.
일주문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건축에서 삼중문(三重門)제도가 도입된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삼중문 제도는 일주문과 중문인 사천왕문, 해탈문을 길게 늘어 놓음으로써 대웅전에 다다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고 공간의 리듬감과 종교적 신비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 이같은 일주문에는 일반적인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라는 귀절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문 안으로 들어 와서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세간의 알음알이로 해석하려 하지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주(一柱)’문이지만 기둥 수는 대개 2개다. 일주문은 보통 두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단 칸 일주문이 보편적이며 지붕은 맞배와 팔작 등으로 다양하고 대개는 다포를 올려 화려하게 꾸민다.
이 문에 많은 현판들을 내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래 범어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의 일주문 등이 있다.
그러나 범어사 일주문은 기둥이 4개다.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서도 아주 뛰어난 문이다. 주추라고 보기엔 기둥같은 돌기둥 위에 둥지를 튼 문이다.
범어사는 일주문-천왕문-불이문-보제루-대웅전 등이 만드는 일직선이 가람들의 축을 이루고 있다.
통도사의 경우, 문의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라는 현판을 걸어 사찰의 이름을 밝히고 좌우의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와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柱聯)을 붙여서 이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감로사라는 절 이름이 천은사로 바뀐 내력이기도 하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선의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천은사에 들렀다가 이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법주사 일주문의 현판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弟一伽藍) 이라 씌어 있으며,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溪寺)’라는 글귀가 걸린 쌍계사 일주문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함양의 용추사 일주문(경남도 유형문화재 54호)은 굵은 기둥과 화려한 치목(治木)수법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찰 일주문의 압권으로 꼽히고 있다. 창원의 불곡사는 용, 호랑이, 거북을 새긴 일주문이 특이하다. 이곳의 일주문은 원래 창원부 객사의 삼문 가운데 하나였던 것을 1943년 우담화상이 옮겨 왔다고 한다.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좌우에 여섯마리 용, 호랑이, 거북 등이 조각된 특이한 조선 중기 건축물이다.
통도사 일주문 주련에는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각기 다른 성들끼리 모여사니 반드시 화목해야 하고),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 가사입고 삭발하였으니 항상 규율을 따라야 하네), 불지종가(佛之宗家,절의 종가집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 나라의 큰절이네)’ 이라고 쓰여 있다.
통도사 일주문은 기록에 의하면 1305년(고려 충렬왕 31년)에 창건됐다고 전하며, 중앙 현판은 ‘영취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고 쓰여져 있으며 대원군의 필적이란다.
백양사 일주문에는 ‘백암산 고불총림 백양사(白巖山 古佛叢林 白羊寺)’라는 우람한 현판이 걸려 있다.
참선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과 계율 교육기관인 강원(講院)과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 한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임(林)이하 하듯이 승(僧)과 속(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一處住)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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