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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2월의 독립운동가 문태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김정복)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06년 전라도 무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한 문태수(1880.3.16-1913.2.4) 의병장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80년 3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신기(장구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7세때 장수군 계북면으로 이사했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침략이 한층 격화되던 무렵, 선생은 지사, 동지들을 모아 구국을 위한 거사를 준비하였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 선생을 찾아가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했다.
 1906년 봄 덕유산 일대에서 동지를 모아 무주군 안성면 소재 원통사(圓通寺)를 거점으로 의병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9월 박춘실 부대와 함께 장수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전멸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경남 함양.거창, 전북 장수.무주.진안.임실, 충남 금산 등지를 오가며 덕유산과 적상산, 성수산 등의 산악지대를 무대로 60여 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말 양주에서 13도창의군이 결성되자 ‘호남의병대장’으로 연합의진에 가담하여 서울 진공작전에 참여했다. 이어 1908년 무주 헌병주재소, 장수 헌병주재소 및 관공서 등을 습격하였으며, 1909년에는 이원역(伊院驛) 폭파 의거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주, 장수, 거창, 함양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전을 벌였으나, 1911년 8월 밀고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34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