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개편.... 신잠(申潛)의 탐매도(探梅圖)와 조속(趙涑)의 편지 전시
△ 신잠(申潛)의 탐매도(探梅圖)
영천자 신잠(申潛, 1491~1554) 탐매도(探梅圖)와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의 편지가 공개된다.
'매화를 찾아서(探梅)'는 매화를 사랑해 이른 봄마다 매화를 찾아 나섰던 당나라 시인
맹호연(689-740)의 고사를 그린 작품이다. 현재 전하는 탐매도(探梅圖)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
가로로 긴 화면 양쪽에 바위를 배치하고, 바위에서 자라는 흰 매화를 표현했다.
나귀를 탄 맹호연과 뒤따르는 시종은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묘사했으며, 눈 덮인 산과 바위에는 엷은 녹색과 진한 둥근 먹점을 더했다.
화면의 변색이 심하나 바위, 나무, 인물 모두 세필(細筆)로 그렸고, 바위 사이사이와 대나무 등에 칠해진 녹색이 두드러지며, 긴 화면을 따라 그려진 소재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등 화면 전개에서 구성의 묘가 돋보인다.
이제 막 파교에 들어선 선비는 기대와 설렘에 길을 재촉하지만 추운 겨울 억지로 따라 나선 시동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신잠은 자는 원량(元亮), 호는 영천자(靈川子) 또는 아차산인(峨嵯山人)으로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증손자이다.
그는 시, 서, 화에 두루 능해 삼절(三絶)로 지칭된 사대부로 그림에서는 산수뿐 아니라 묵죽(墨竹)과 묵포도(墨葡萄)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의 진작(眞作)으로 단정할 수 있는 그림은 남아 있지 않으며, 이 작품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화조도(花鳥圖)'가 그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다. 이 '화조도' 또한 채색의 사용 및 공필(工筆)에 가까운 필치 등이 두드러져 보인다.
신잠은 전북 태인지역의 현감을 지내는 동안 동·서·남·북 네 곳에 학당을 세워 유학을 가르치고, 백성들에게 어진 다스림을 베풀었다.
그 후 태인을 떠나게 되자 백성들이 그를 기리기 위한 비를 세우고, 선생의 조각상과 부인, 큰아들의 상, 시중드는 여인상, 호랑이상을 만들어 모시었다.
크기는 신잠상이 85.6㎝, 부인상 76.5㎝, 큰아들상 58.5㎝, 시녀상 55.5㎝, 호랑이상 61.5㎝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 0태인신잠선생영상(泰仁申潛先生影像)이 바로 그것이다.

△조속(趙涑)의 편지
1652년 6월, 조선 중기의 문인서화가이자 수장가였던 조속이 쓴 편지도 눈길을 끈다.
청나라에 다녀온 인물이 오래된 서화를 구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반기며, 가져온 서화의 사본을 한 부 만들어도 될지 허락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문인들이 편지를 통해 서화와 책을 구하고 교유하던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다.
'우중(雨中)에 삼가 인편을 통해 보내주신 편지를 받아 위로와 시원함이 이미 많은데, 고축(古軸,옛 서화축)이 무사히 강(압록강)을 건넜다고 하니, 더욱 기쁩니다.
속히 보고 무료함을 깨고 싶으니, 다 보시거든 반드시 저에게도 보여주세요.또 축의 주인과 따로 지축(紙軸)을 만들어 한 본을 등사한 ○를 갖고 싶습니다.
지축은 당연히 여기서 구하여 만들겠습니다. 첫머리의 화격(畫格)은 반드시 화사(畫師)에게 부탁해야
형상을 이룰 수 있으니, 모름지기 꾀하여 빛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뵐 때로 미루고 이만 줄입니다.
1652년(임진) 6월 1일 추희(醜希)'
조속은 17세기의 시서화 삼절이며 그림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우리나라의 금석문을 깊이 연구했던 인물이다.
이 서첩의 글씨는 큰 글씨로, 먹을 풍부하게 쓰면서도 꼿꼿하고 강한 느낌의 필치가 마치 활시위를 당긴듯한 긴장감을 준다.
그는 조선 후기 시서화(詩書畵)의 대가로 임피현령을 지냈고, 김제군수로 일하던 때는 이 지역 송일중의 스승으로, 국내 최초의 금석자료를 수집 정리한 ‘금석청완(金石淸玩)’을 펴냈다.
'조속 초서 창강필적 (趙涑 草書 蒼江筆蹟)'은 보물로 지정됐다. 조속이 벽성군수(김제군수)로 재임하던 1646년 7월에 당시(唐詩) 오언ㆍ칠언율시 등을 대중소로 크기를 달리하여 쓴 것이다.
벽성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金堤)의 옛 이름으로 당시 조속은 김제군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재임 기간은 1645년 4월 22일~1649년 3월 28일 무렵까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6일 새롭게 단장한 서화실의 문을 열었다. 새 서화실은 전시 구성과 운영, 공간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이번 서화실 개편은 글씨와 그림은 하나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고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옛 글씨와 그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회화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전시 구조를 재정비하고 서화 전시를 강화했다.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공간 연출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분위기나 글씨를 보다 더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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