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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동락원

 

날렵하게 솟은 지붕, 매끈한 처마선, 투박한 돌담과 흙담. 그리고 온돌방과 한지문, 대청마루, 장독대와 아궁이

걷는 맛과 체험의 즐거움이 있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현재 700여 채의 전통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햇살이 시시각각 기와집 담장을 넘어 대청마루에 부드러운 선을 그린다. 한 입 가득 감을 베어 문 아이들의 웃음은 돌담길 사이에 맴돈다. 가을엔 꽃담 너머로 오색 단풍나무가 황홀한 자태를 뽐낼 때, 마당의 장독대 위로 노란 은행잎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재미 쏠쏠하고, 조용함과 단아함속에 젖어보는 동락원에서의 명상 시간은 오매불망 잊을 수 없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보면서 지난 시절을 반추하는데 동락원은 더 없이 좋다.

은행나무 길의 동락원(同樂園)’은 주인이 아들의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가정집이었으나 규모가 커 관리가 힘들어지자 한국은행, 전주기전대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으며, 당시 한국은행 전주지점장이 가지를 쳐준 한그루의 단풍나무는 학모양을 하며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사로 그러다가 현재 전주기전대 생활관으로 쓰이고 있는 동락원은 근사한 장독대와 단풍나무가 멋지다.

김대중대통령 내외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윤옥여사, 그리고 최불암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묵고 갔다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애시당초 이 집은 삼례의 만석꾼 구암 유영창씨가 1935년에 지은 80칸 짜리의 기와집으로, 당시 돈으로 15백엔이 들어갔다.

한국은행 관사로 쓰이기 이전 1945년 전북대학교 학장을 지낸 유성근교수의 아버지가 아들의 북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지금의 대문을 만들어 입학하는 날, 그 문을 열도록 선물했다고 한다.

1949년 쌀 73(80kg 146가마)에 한국은행으로 넘어간 뒤 지점장 사택으로 이용해왔지만 덩치만 고래등 같기 살기에는 불편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조희천 총장이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과 한국은행 총재를 설득해 2002년 매입을 해 고친 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에서 1차 공매에 인수대상자가 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 집을 구매하고자한 사람이 포기하면서 계약금은 국고로 환수되자 드디어 소기의 목적을 이루게 됐다.

축구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2002년엔 사실상 거의 헐값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정집이었으나 규모가 커 관리가 힘들어지자 한국은행, 기전여대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으며, 당시 한국은행 전주지점장이 가지를 쳐준 한 그루의 단풍나무는 학모양을 하며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동락원(同樂園)’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뜨락이다.

일찍이 맹자양혜왕장여민락장을 통해 함께 하는 즐거움, 여민동락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며, 이를 주나라 문왕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즐거움 즉, ‘독락을 추구한 하나라의 폭군 걸왕 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닌 난세에는 독선을 해야 한다.

현재는 전주기전대학교 생활관으로 쓰이고 있는 동락원의 근사한 장독대와 단풍나무가 멋지다.

김대중대통령 내외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윤옥여사, 그리고 최불암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묵고 갔다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은 학생들의 실습교육장으로도, 일반인들을 위한 체험관, 한복체험, 전주 전통 비빔밥체험, 인절미떡메체험, 소리체험(우리민요, 판소리, 시조), 한지공예체험 등 무엇부터 시작할지 고민이 크다.

동락원은 전주기전대학교 부설 전통문화생활관으로 미국 남장로교선교회가 전주에 들어와 학원선교를 구체화시킨 전킨(W.M.C.Junkin) 선교사의 기념관이다.

그가 활동하던 1895년 당시 전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2004년 문을 열었다. 전체 대관은 승독당, 승화당, 청유제, 마당 등 동락원 전체를 대여하는 것으로 모든 체험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30명 이상의 단체에 적합하다.

승독당(안채)은 중국의 유명 시조 가운데 그대와 더불어 나눈 한 시간의 이야기가 10년 동안 책을 읽은 것보다 낫네라는 말이 있듯이 알찬 대화를 나누고 좋은 세미나와 학술회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청유재는 맑게 머무는 집이라는 뜻으로 내 집이 아닌 객사에서 자는 잠자리에서 더욱 옛 선비의 청아한 마음을 느끼고 배우면서 하룻밤을 맑게 잘 수 있는 공간이다.

동락원의 심볼은 뜰 원()자를 형상화하여 동락원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바탕을 이루는 이 5가지 색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문화전반에 걸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락원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오목대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예수병원 건너편의 선교사 묘역(왼편에서 두 번째)에 잠든 전킨선교사를 생각하면서 십자성호를 긋는 오늘에서는.

동락원의 뒤란을 스치는 겨울 바람에 댓잎 서걱거릴 때, 이윽고 손님들 방에 불이 하나둘씩 꺼진다.

깨진 기와를 박아 넣은 꽃담과 낮은 굴뚝, 문고리,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지은 헛담, 문고리, 창에 흙먼지가 뿌옇게 내려앉는다.

하룻밤 한 치 두 치의 꼼꼼한 계산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생의 심연으로 가득하다. 까만 밤 하얗게 사위어가면서 깊고 푸른 꿈 영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