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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전주 한옥마을 최부잣집 꽃담

전주 한옥마을 최부잣집 꽃담

전주 한옥마을의 소슬대문을 가벼이 밀치고 들어서면 싸리비 자국 고운 마당과 툇마루 아래 댓돌 위로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보이고, 저 멀리로 날렵한 처마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풍경 소리가 은은히 울립니다. 

이에 질세라, 오목대 위 두둥실 떠있는 구름이 창호에 고요한 달빛을 선사하고, 한 밤을 꼬박 지새운 참새들의 ‘짹짹’ 거림에 이슬은 아침 밥상에 보리된장국과 고봉밥을 내린 채, 내일을 기약합니다.

황손 이석씨가 기거하는 승광재 옆 전주 최부잣집. 토담집으로 통하는 이 집은 황토로 된 담장을 갖고 있으며, 그 담 사이에는 기와를 넣어 만든 꽃 모양의 꽃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고샅이라서 지난 시절, 가로등이 켜지면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다듬이 소리, 통금시간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도 들려왔으며, 동네 아이들은 바로 이 골목길에서 한데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당시엔 컴퓨터 게임도 장난감도 없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들을 손쉽게 놀이 도구로 변신시켰습니다. 

돌이나 깨진 벽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비석치기를 하고, 헌 공책을 뜯어 딱지를 접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돌담길 끝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르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음성이 귓가에 아련하기만 합니다.

지금 최부잣집은 서녘으로 비끼는 샛노란 햇살이 남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분주한 빨래들을 이고 앉습니다. 길 건너편 고층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선 지붕 낮은 집들의 애환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얼싸 손 잡아줄 듯 정겹습니다. 

집주인인 유모니카 할머니가 말합니다.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소쿠리가 오고 갔으며,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돌담에 고사리나 취나물 혹은 깨끗하게 빤 운동화를 널어 말리기도 했다고 말입니다.

최부잣집은 경주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최부잣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일까요.

 최부자란 최한규씨를 지칭하며, 전북여객의 초창기 사장으로 방직, 금광, 석유회사 등을 운영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한옥 열 채를 매입해 1930년대 무렵에 이 집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정원의 경우, 처음에 대문의 입구 양쪽으로 있었고, 옆에는 배추나 무 등을 심어 그것으로 김장을 했었습니다. 

그는 집 입구에 단감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종종 담장을 넘어 와 감을 따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많아 아이들이 다칠까봐 감나무를 잘랐구요, 오래된 석등을 볼 수 있으며, 붉은 모양의 굴뚝은 쓰지 않지만 작두샘 2개 가운데 하나는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최한규씨는 생활이 어려운 미술가와 문인들을 후원해주면서 말 그대로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집을 활용케 했습니다. 

또, 최부자의 큰아들 최태호씨는 서울대 법대 3년을 다니다가 6.25동란이 발생, 19세에 동생(최정호 등)들을 뒷바라지 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엄청나게 큰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유언으로 남긴 것은 일가 친척들에게만 죽음을 알리고, 토장이 아닌, 화장을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묻힐 선산도 넉넉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는 좋은 조건을 모두 포기했다는 가슴 아린 사연이 있는 바, 경주 최부잣집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4대가 살아오고 있는 이곳은 전주시가 토담길(옛날 큰 토담의 한옥집이 많이 있었음을 반영)로 명명한 바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도로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집 앞의 길은 그 옛날엔 제법 큰 편에 속했지만 요즘은 아주 작은 골목길로 변해 버렸습니다. 오래 전에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 등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최부잣집의 볼거리는 집안의 우뚝 솟은 굴뚝과 앞채의 밝은 색조의 붉은 전돌을 작고 예쁘게 따로 만들어 바람 구멍에 솜씨를 부린 ‘십(十)’자형 바람 구멍(꽃담), 그리고 토담(담장)에 기왓장을 쿡쿡 박은 꽃담이 단연 압권입니다.

토담에 핀 꽃은 하나, 둘, 셋 세 송이. 맨 위에 암키와 5-6장을 서로 맞대어 꽃잎을 만들고, 바로 그 아래 암키와 여러 장으로 좌우 대칭의 꽃잎 모양과 줄기 등을 기왓 조각의 질박한 무늬에 잘도 형상화한 까닭에 최씨 가문의 기풍과 순박한 전주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길에 많은 차량들이 주차함으로써 길이 더욱 좁아지게 되고, 간혹 이들이 지나가면서 토담을 부숴 버리는 일들이 자주 발생해 김완주 전 전북도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차량의 통행을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미닫이 문을 살짝 열고 오목대의 밤 풍경을 바라보면 하늘에 떠있는 궁궐같습니다. 예전에는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지요. 여러 세대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초엔 기와 올린 대문이 있었지만 그것이 헐어져서 철제 대문으로 바뀌게 됩니다”

유모니카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있는 그 순간, 담장 밖으로 큰 키를 자랑한 채 우뚝 서있는 향나무와 담장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 넝쿨들이 들꽃으로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정원 너머로 5월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