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 최영숙 서각 개인전 `이슬이 이슬을 비추다', 18~25일 전북예술회관
나무에 숱한 칼끝이 스치더니 굴곡 인생이 펼쳐진다. 서각은 문자를 조형화해 나무와 돌, 금속 등의 재료에 새김질하는 작업이다. 칼자국이 작품의 질감을 한층 더 높여준다.
시나브로, 다양한 편도 칼과 끌 칼의 무수한 새김질의 예술, 서각 예술세계가 그윽히 펼쳐진다.
문자와 회화, 조각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멋을 창출하는 서각 작품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각(書刻) 작가인 명경 최영숙 선생이 18일부터 25일까지 전북예술회관 2층 차오름실에서 세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슬이 이슬을 비추다'를 주제로 '산수'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는 이 자리는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작가의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감상, 지역민 마음의 평안과 생활의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됐다.
해가 나오면 이슬이 사라지 듯,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사. 너로 인해 내가 빛난다, 내가 있어 네가 웃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빛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시간의 가을 끝자락 그 언저리에서 길을 되돌아보며 깨닫는다. 아직도 이슬받이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이슬은 시련같이 엉겨 붙지만 그 또한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 같이 그 길을 걸었던 친구들은 다들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눈을 감고 이슬받이를 그려본다. 밤 벌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달렸던 길을 잊지 않으려 떠올린다. 그때는 쳐다보려 하지 않던 것을 애써 그리고 있다. 가슴에 시간 위를 달리는 생각이 들어차 있다. 내게 청춘은 공상과 함께였다. 눈을 뜨면 사라져버리는 공상을 왜 품고 살았는지 이제야 알았으니······. 먼 곳 바라보기는 여전해서 창밖 보기를 좋아한다. 미지의 세상 찾기처럼 궁금하다"
숱한 칼 끝에서 '인생의 꽃'이 피어난다 이내, 날카로운 조각칼과 망치로 한땀 한땀 나무를 파낸다. 숨을 죽인 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도 아랑곳이 없다. 이내 경쾌한 망치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칼이 나뭇결을 파고들 때마다 평평했던 나무판에 글자들이 새겨진다.
다양한 형태의 예술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그림을 접한 이후부터는 시대에 역류하는 욕구와 몸부림을 화폭에 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정적인 마음에 동적인 행위가 더해지고, 회화적인 느낌의 채색이 어우러지며 3차원의 종합예술로 거듭난 서각 작품들로, 문자조형 예술미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다.
작가는 서각은 단순히 글을 새긴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글이나 문장에 담겨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는 예술 행위로서 작품 구상이 끝나면 자신의 혼을 칼끝에 모아 거침없이 마음을 새기는 작업이라고 한다.
또한, “나무가 갖고 있는 결을 살리고 그 위에 끌로 문자를 입히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색채를 조화롭게 재배치해 재창조한 작품이 바로 서각”이라며 “작품 안에 글자의 뜻을 살피기보다 전체적인 조형성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했다.
흔히 ‘서각’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평평한 나무판에 글자를 새긴 정형화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전통서각 기법을 살리면서도 보다 자유분방한 서체 배치와 색깔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서각 작품을 완성한다.
이어 “서각이란 설계하여 집을 짓듯 과정마다 설렘과 성취감이 묻어나는 것”이라며 “집중에 의한 순간의 명상 세계이며 각(刻)이라는 행위적 요소가 두드리고 새긴다고 하지만 두드림의 소리에는 나만의 연주가 흐른다. 그 속에 꽃피어 열매 맺듯 나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의 눈에 비친 작가 나름의 개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때론 색채가 아주 화려하기보단 부드러우며 때론 맑은 담채풍의 시원한 느낌을 주기도한다. 또,때론 단조로운 무채색을 벗어나 다채로운 채색으로 밝으면서도 기품있는 작품을 보여준다. 때에 따라 글씨에 색을 올리기도 한다. 단청이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이 되기도 한다. 나무결과 옹이를 그대로 살려 어울리는 글씨체를 디자인한 뒤 완성하기도 한다.
장기간의 수련과 연구 끝에 구사하는 칼의 맛 또한 작품의 서정성을 더해준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소란하고 분주한 도시의 무대를 잠시 떠나 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여유를 즐기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잘 표현돼 있다.
"火木(화목)으로 버려질 뻔한 나무를 얻어와 일 년 동안 바라봤어요. 그러다 보니 머리는 비워지고 마음은 채워지더군요. 내게 반문한 답은 한결같았어요. 기쁘지 아니한가?"
나무와 한지는 물론 물론 광목을 활용, 번짐 등을 확인하면서 작가 특유의 개성미와 역동적인 채색과 여백미, 그리고 먹도 채색처럼 쓰도록 노력했고, 작품 구도에 따라 화제를 적절히 사용했다.
작가는 “무엇을 나타내려는 그림이냐는 작품의 무시에 오기가 발동했고, 분노가 솟구쳐 날카로운 선이 나도 모르게 그려지기도 했다”면서 “나의 그림 속에서 나를 찾고자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간절함을 빌었고, 나에게 꽃바구니를 전달하며 흐르는 눈물로 위로했다”고 했다.
이어 "서각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 재료에 새기는 것으로 문화,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며 "문자나 회화를 기록하여 욕구를 표현한 것이 서각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작가는 대한민국공예대상전에서 대상(문인화)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서각협회 서각 특선 1회, 입선 1회, 한국서각협회 서각 입선 3회, 대한민국여성구상미술대전 서각 입선 2회 등을 받았다. 대한민국공예대상 초대작가(민화),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초대작가, 한국서각협회 회원, 함양서각협회 회원으로, 그동안 3번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월간문학' 3월호(통권 673호)에 민조시 '하늘 물고기'로 제173회 신인 문학상을 수상, 등단했다. 현재 전주 한옥마을 향교길에서 아트샵 '하늘 물고기'를 운영하고 있다./이종근 새전북신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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