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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뱀사골

뱀사골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계곡.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선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래로 뱀과는 관련이 없는 비탈이 심한 사이 골짜기란 뜻의 밴샅골이 변해 뱀사골로 불리어졌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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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 - 옛날 이곳에 배암사라는 절이 있어 배암사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뱀사골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2. 뱀이 많이 나는 계곡 -  이곳이 지리산에서 가장 뱀이 많이 잡히는 곳으로, 전국에 유명한 뱀의 산지로 뱀사골로 불리어졌다고 합니다.

어쨌던 이곳에서는 지리산 약뱀이 많이 잡히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반선리 주민들은 뱀을 잡아 많은 소득을 올렸다고 합니다.

3. 뱀이 죽은 골짜기 - 옛날 골짜기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월칠석날 밤이면 주지스님이 사라져 마을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님으로 승천하였다고 믿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산대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칠석날에 주지스님에게 소매에 비상약을 달아 입혀 예년과 같이 독경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큰소리를 내며 뱀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가서 보니 용이 못된 큰 이무기가 죽어 있어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 합니다.

그후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死)골이라 하였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반선(半仙)이라 불러 동네이름을 반선이라 하다가 언제 부턴가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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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리산 반선에는 큰 절이 있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저녁에 선녀가 내려와 스님 한 분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해에도 그렇게 하자 스님들은 신선이 되는 거라고 믿었다. 자기 차례가 돌아온 해에 스님이 정승이 된 친구를 찾아가 선녀 이야기를 했고, 정승은 그 이야기를 듣고 비상 묻힌 장삼을 선물했다. 선녀가 내려와 스님을 데려간 다음 날, 하루종일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고, 웅덩이에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스님들이 배를 갈라 보니 장삼을 입은 스님이 나왔다. 그동안 선녀인 줄 알았던 것이 이무기였던 것이다. 절은 망하고 불태워졌다. 이무기가 죽은 곳이라 그곳을 뱀사골이라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으로 등극하려고 할 때, 모든 산의 산신령들이 허락했으나 지리산 산신령만은 허락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이성계는 전라도에 있던 지리산 산신령을 경상도로 귀양 보냈다. 지리산 골짜기에는 여러 절이 있었으나 반선에 있는 절이 유난히 번성하였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저녁이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더니 스님 한 명을 데리고 올라갔다. 스님들은 ‘우리 절 스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니 신선이 되었나보다!’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도 선녀가 내려와 스님 한 명을 데리고 올라갔다. 그렇게 여러 해를 계속해서 선녀는 스님을 한 명씩 하늘로 데려갔다. 절에 남아있는 스님들이 생각해보니 나이순으로 하늘로 올라갔다. 스님들은 “올해는 어느 분 차례예요?” “그럼 내년에는?” 하면서 다들 신선이 되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다가 한 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날이 얼마 남지 않으니 동문수학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스님은 정승이 된 친구를 만나러 한양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정승 친구를 만나 반선에서 겪은 일을 설명했다. 이제는 자기 차례가 되어 떠나기 전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스님의 말을 들은 정승은 사람을 시켜 친구를 위해 준비한 두툼한 장삼에 독약인 비상을 바르도록 했다. 정승과 하룻밤을 함께 지낸 스님은 “하룻밤 잘 지냈네. 그리고 자네같이 훌륭한 친구를 둬서 기쁘네. 우리 하늘에서 만나더라도 잘 지내세.” 인사했고, 정승은 선물이라며 장삼을 내밀었다. 하늘로 올라갈 때 이 옷을 입으라고 부탁했다.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 뱀사골

장삼을 받아들고 지리산 빈선의 절로 내려온 스님은 섣달 그믐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믐날 저녁이 되자 스님은 친구가 마련해준 두툼한 장삼을 입고 앉았다. 시간이 되자 하늘에서 상서러운 기운이 내리더니 선녀가 와서 스님을 데리고 올라갔다. 주변의 스님들은 일제히 목탁을 두드리며 떠나는 스님을 축원했다. 이튿날 아침 뱀사골 안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너무나 무서운 소리에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소리가 뱀사골을 뒤흔들더니 저녁이 되어 조용해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모두들 밖으로 나와 보니 골짜기에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핏물을 따라 올라가니 뱀소 웅덩이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웅덩이에는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스님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무기의 배를 갈랐다. 이무기 배에는 장삼을 입은 스님이 있었다. 

그동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이무기였던 것이다. 이무기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선녀로 둔갑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무기가 지리산에서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었던 것은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경상도로 귀양을 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절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무기한테 스님들이 잡아먹혀서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간 줄 알았던 스님들이 이무기 먹이가 되었으니 남아 있던 스님들도 더이상 불도에 매진하기 어려웠다. 몇 달이 지나 스님 한 분이 친구 스님에게 장삼을 선물했던 정승을 찾아가 이무기가 죽은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정승은 절을 모두 태우라고 지시했다. 마을에서는 이무기가 죽은 곳을 뱀사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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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은 지리산 반야봉과 토끼봉 사이에서 반선마을까지 뻗어내린 골짜기로 9.2㎞의 구간이다. 계곡 곳곳에 기암괴석이 널렸고 깊은 소(沼)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곳마다 전설과 전쟁에 얽힌 아픔들이 깃들어 있다.

이 아름다운 계곡의 이름이 뱀사골이 된 것은 뱀이 많아서가 아니다. 1,300년 전 이곳 계곡 입구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서는 매년 칠월 백중날(음력 7월15일) 승려 한 명을 신선바위에서 기도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면 기도를 한 승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승려가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해에 한 승려가 이를 이상히 여겨 기도를 하게 된 동료의 옷에 독을 발라 놓았다. 이튿날 날이 밝아 사람들이 신선바위로 올라가 보자 그곳에 큰 이무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 이후 이 계곡은 이무기(뱀)가 죽은(死) 골짜기라는 뜻에서 ‘뱀사골’로 불리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의 밥이 된 스님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죽은 스님들이 절반쯤 신선이 됐다는 의미로 계곡 앞 마을을 반선(半仙)마을이라고 부르게 됐다.

전설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계곡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캠핑장을 지나 데크길을 걸으면 계곡 쪽에 큰 바위가 나오는 데 바위의 이름은 바로 석실이다. 석실은 큰 바위틈에 생긴 작은 공간으로 이태의 자전소설 ‘남부군’에도 등장한다. 빨치산들이 신문과 선전물을 인쇄해 대민공작에 사용하기 위해 작업하던 공간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와운(臥雲)마을에 당도한다. 구름이 누워 있다는 의미의 와운마을 앞에 있는 요룡대는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와운골과 뱀사골의 물이 합수되는 곳에 있다. 와운마을이 유명한 것은 이 마을에 있는 천년송 때문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424호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흘이면 여기서 제사를 지내며 태평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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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환경] 뱀사골은 크게 보면 만수천 계곡 전체로서 산내면의 전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내 삼거리에서 운봉과 인월로 빠지는 남천과 실상사를 지나 남동진하는 남천의 부근을 빼면 나머지 산내면은 모두 뱀사골 내에 있을 정도로 크다. 산내면 덕동리, 부운리, 내령리, 입석리, 장항리가 뱀사골 내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뱀사골하면 반선에서 반야봉까지의 계곡 약 14㎞를 말한다. 특히 뱀사골은 완만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는 기온이 낮고, 수많은 폭포와 소와 반석, 절벽 등이 전설과 함께 나타나 뛰어난 경관미를 보여준다. 소룡대, 탁룡소, 뱀소, 병풍소, 간장소, 단심폭포 등의 명소가 많다. 수목이 울창하여 녹색댐의 영향이 커서 홍수 및 가뭄에 자연적 대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계곡의 유역 면적이 크고 모든 물줄기가 하나의 계곡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뱀사골 내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계곡의 물은 쉽게 증가하고 급류를 이루기 때문에 자칫 야영객이나 등산객들이 불변을 당할 수도 있다. 뱀사골의 유역 면적은 매우 크고 토산으로 이루어진 주변 고산의 산릉으로 둘러싸여 지표유출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특징도 있으나 하계의 집중호우 시에는 빠른 지표유출로 계곡의 수위가 급상승하여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토양층이 아주 깊지는 않은 표층풍화로 사면이 임계치 이상의 함수를 한 경우 기반암에서 토사가 흘러내리는 산사태의 위험도 상당히 많은 곳이다. 이런 곳은 안정된 식생의 보전과 함께 도로 건설에 따른 사면의 안정도를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북서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뱀사골이 개석되고 있으며 양 사면의 차이도 북서사면은 좀 완만하고 남동사면은 급하고 굴곡이 심한 비대칭사면을 이루는 것은 과거 빙하기 환경에서 일어난 기후차에 따른 사면의 이동물질의 진전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황] 여름철에 토산을 이룬 주변의 산지들이 충분히 토양수분을 함유할 때 비가 오면, 금새 지표유출이 발생하여 계곡의 수위가 급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002년도에 집중호우로 인하여 많은 사상자가 이 계곡에서 발생한 것도 이런 자연적 환경이 원인이다. 다행히 뱀사골 주변에 수위측정기와 홍수예방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 사고를 미리 막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으나 완벽할 수는 없다. 한편 뱀사골은, 이곳 지리산을 비롯하여 특히 식량과 거처가 용이한 곳이어서 여순사건 등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전설과 숱한 사연을 간직한 뱀사골은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섭씨 15도 이상 오르지 않아 피서 인파로 성시를 이룬다. 뱀사골 등반은 산내면 부운리 반선에서 시작된다. 지방도 861호선이 뱀사골을 따라 나있으며, 구산선문의 실상사를 비롯 많은 암자와 명승지가 자리하고 있다. 콘도, 민박, 야영이 가능한 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