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관문인 호남제일문을 지나 기린대로를 쭉 타고 오다 보면 공장 굴뚝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를 마주한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회색 벽과 칠이 벗겨져 녹슨 철제 울타리는 이곳이 오래된 산업단지임을 짐작하게 한다. 팔복동 산업단지의 첫인상은 산뜻한 분위기의 관광지와는 거리가 꽤 멀게 느껴진다. 산단 한복판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은 그런 면에서 흥미로운 공간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폐업한 카세트테이프 공장의 내부를 리모델링한 팔복예술공장은 2018년 3월 23일 개관했다. 이곳은 1979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했으니 ‘예술 공장’인 셈이다. 음악이 지금처럼 음원이 아니라 카세트의 ‘테이프’로 존재한 시절이다.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대 말 CD가 나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1987년 노조와 임금 협상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이 400일 넘게 파업으로 맞섰다. 공장은 결국 1991년 문을 닫고 25년 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돼 기지개를 켜고, 2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쳤다.
지난 2018년 3월, 팔복예술공장이 세 동 가운데 A동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시는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공장의 구조물을 철거하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다리와 계단을 만들었다.내부 마감은 옛 공장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장식만을 더했다. 국비와 시비가 각각 25억원씩, 모두 50억원이 투입된 공장은 문화예술인의 전시·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주시가 팔복동 인근 제1산단에 근로자들의 휴식·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사용될 '복합문화센터' 건립을 시작한다. 전주에서 최초로 조성됐던 제1산단은 전주시 소재 6개 산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입주 기업과 근로자 수도 가장 많은 전주의 대표 산단이다. 그러나 산단 준공 후 55년 째를 맞는 현재에는 기반 시설 노후화와 근로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67년 3월 22일 전주 제1공단 및 기공식이 박정희 대통령, 김용진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팔복동 일대 50만평의 부지에 6억1,2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 1970년에 완공됐다. 전주공단은 1967년 3월 기공됐다. 전주공단 조성 사업과 새한제지(전주제지 전신), 삼양사, 코카콜라 생산 업체 호남식품 등 건설, 화학섬유공장, 건설 사업 등이 순조롭게 추진됐다. 이들 공장은 전북의 공업화를 앞당긴 주역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전북경제를 이끄는 토대로 평가받고 있다.
덕진구 팔복동은 조선시대에 8명의 선비가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터인 팔과정의 '팔'과 가장 큰 마을인 신복리의 '복'을 따서 이름지었다. 팔복동의 명확한 명칭은 1957년 조촌면 일부가 전주시와 합쳐지면서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신복리와 조촌면 일대의 팔과정에서 ‘팔(八)’자를 따와서 팔복동이라고 했다. 팔복동에는 ‘팔과정’이라는 정자가있고 송사심의 제자인 8명의 선비가 과거에 급제한다.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조선중기 4조(광해, 인조, 효종, 현종)에 걸쳐 황방산 기슭 반룡서숙(현 팔복동 반룡리) 문하에서 홍남립, 이흥발, 이흥록, 이기발, 우후선, 이생발, 이순선, 송상주 등 8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 후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하지만 당시에 건립된 팔과정은 없어졌으며 현재 추정되는 위치에 현대식으로 세워져있다. 팔과정 편액은 고 김용진 국회의원이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 팔복동공단에 왔을 때 박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이며, 팔과정중수기(김형관 찬), 팔과정기(홍두현 기)가 전하고 있다.
고 이철수는 팔과정에서 배출된 인물을 ‘부성8현’이라고 했다.
추천대교 주변에 위치한 공단 배후지 취약지구는 지난 1970년대 이후 산업단지 활성화로 인해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1990년대 부터는 노동집약형 공장이 중국 등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폐공장 증가와 인구 감소, 주택노후화 등 쇠퇴하기 시작했다.
김혜원 사진가가 '팔복동 공단 파노라마'를 갖는다. 2016년 팔복예술공장 파일럿프로그램에 참여, 제목 그대로 팔복동의 공단을 기록한 28점의 사진을 선보인다. 생산과 유통과 폐기와 재생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팔복동의 산업 생태를 '굴뚝이 있는 풍경' , '야적장', '폐차장', '폐공장'으로 나누어 22일까지 전주 사진공간 눈에서 선보인다. 전주 팔복동을 지나는 북 전주선은 북전주역에서 전주페이퍼·휴비스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기찻길이 아직도 있다.
철로 양쪽에 1990년대 조경수로 심어진 이팝나무가 매년 4월말 하얀 꽃을 피워 시민과 관광객들을 부르고 모습을 자랑한다. 빨간·파란색으로 치장된 열차가 꽃 터널 속을 지나갈 때는 봄에 보는 ‘설국 열차’를 연상케 한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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