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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52> 마음을 위로하는 김스미화가의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52>  마음을 위로하는 김스미화가의 달항아리
서양화가 김스미가 20일부터 25일까지 전주 청목미술관에서 '달항아리에 스미다-전설(LEGEND)', 레지던시 결과 보고 초대전을 갖는다.
2023년부터 레지던시 작가로 열정을 다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120호 작품 '전설, LEGENDⅠ,Ⅱ'2점을 포함, 모두 25점을 선보인다.
'전설, LEGENDⅠ,Ⅱ'2점은 대규모 작품로 무려 8개 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이 전시는 '달항아리에 스미다-전설(LEGEND)'이란 명제를 달고 있다.
작가는 2019년, 1920년 '김스미전', 2021년 '영원한 꿈', 2022년 'We are Dreaming', '삶에 지친 그대에게', '추억을 소환하다', 2023년 '달달(達達)한 판타지Ⅰ,Ⅱ' 등, 전시마다 달항아리와 각기 다른 주제를 선택, 작업했다.
2024년, 달항아리에 스미다 개인전 '전설, LEGEND)'는 출생 연도와 관련된 띠 동물을 12지신으로 의인화한 디자인을 오마주해  작업했다.
작가의 달항아리에 대한 메타포를 통해 만월을 향한 우리의 소망을 공감하고 편안한 사유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물 등에서도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 주지만 아무래도 달항아리에 역량을 쏟는 듯 보인다.
달항아리 시리즈는 오래 전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직접 물성과 입체의 공간감을 이해하면서 평면 회화를 위한 습작과 소묘도 꾸준히 한 결과물로 보인다.
작가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힘든 시절을 달항아리와 그림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겪었던 작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그림에 담아 꿈의 시간을 소환하는 존재의 심연으로 표현한다.
달항아리가 가진 에너지의 파장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정서를 보듬는 색채 심리의 무의식적 치유의 모티프를 평면으로 형상화했다.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회화로 이행시키는 작업은 형태적 특징보다는 항아리 본연의 감성적 이미지 표현에 주안점을 두었다.
작품의 배경 추상을 회화적 퍼포먼스로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를 연결, 구성의 조화로움과 지적 판타지를 그렸다.
작가의 달항아리는 기쁨과 슬픔, 연민과 희망을 담아 꿈이 투영된 실존이 된다. 달을 품은 항아리에 존재의 염원을 실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김스미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은 조형적 균형과 안정된 통일감으로 현대적 감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일상에 지친 공허한 현대인들의 마음 한편을 따뜻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다며, 자기성찰의 깊은 속내를 꺼내 소통하며 덩달아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한 작품은 작가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작가의 지난한 역사와 삶으로 이루어지고 드러난 결과가 작품의 터무니일 수 있는 것이다. 
평면의 회화에도 수많은 수식이 있고 단순해 보이는 점과 선 하나에도 살아온 내력과 감정이 읽힐 수 있고 의도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작가의 여운과 무늬는 남는다. 
어린이 그림에서는 무구한 동심을 읽을 수 있고 원로 작가의 작품에서는 묵직한 연륜과 이력이 엿보이는 이치일 것이다.
작품 하나를 보고 그 모든 것을 유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작품에서는 유무형의 자연스러운 소통과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고 시공을 초월한 여행과 생각에 지친 습관적 의식을 깨우고 가능한 꿈을 갖게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오롯이 스민 산문적 감상이다.
대학 강의를 하고 새전북신문에 '김스미의 미술산책'이란 칼럼을 연재하면서 지금까지의 작품을 위해 탄탄하고도 견고한 수련을 해 온 작가다. 
자신이 목표한 결과를 위해 집요하고도 면밀하게 준비해 온 태생적 작가임이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전북도립미술관 인사아트센터, 청목미술관, 교동미술관, 전북예술회관, 예술공간 카메라타, 갤러리 아르, 2022 서울아트쇼, 사대문전, 개인전 및 단체전, 2023 리브포레스트전, 2023 아트페어대구, 2023 The GIAF. 신라호텔 아트페어, 기타 국내외 단체전 등에 60회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북미술협회, 전주미술협회 회원 회원, IACO 에이전시 전속작가, 청목미술관 레지던시 등으로 활동중인 가운데 새전북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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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열망 속에서 피어나는 달항아리, 화가들이 그리다
김환기 화가는 “내 그림의 모든 선은 백자에서 나왔고 내가 그리는 것은 모두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달항아리는 신비롭다.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조선 후기 1725-1751년 사이 26년 동안 왕실 도자기 제작처였던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제작에 따른 연혁이나 용도, 목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행사나 장식용이기에는 지나치게 평이하고 소박하며, 장류나 약재 혹은 술을 담는 용도라면 항아리 입구나 바닥이 좁아 불편하다. 
왕실 가마에서 도공이 실험이나 장난삼아 감히 대충 만들었다고도 보기 힘들다. 문헌이나 여타 서화에 따로 등장한 적도 거의 없다가, 200여 년이 지나서 수화 김환기의 그림과 글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며 이 항아리에서 한국의 미에 눈을 떴노라 고백했다.
 그가 본 달항아리는 그 중앙에서부터 균형이 일그러져 있어서 비율이 울퉁불퉁하여 항아리 주위를 돌아서 보면 항아리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가 생긴다.
게다가 표면에 발린 유약이 균등하지 않아 광택이 없는 속살이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세월 속에서 묻은 때와 도자기에 스며든 여러 가지 얼룩 때문에 매우 가깝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때는 아직 달항아리가 아니라 백자원호(白磁圓壺)나 백자대호(白磁大壺)로 불렸다.
경기도 광주 금사리가마에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주로 제작된 게 달항아리다.
1467년 무렵 조선왕실은 궁궐에서 사용할 백자를 만들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관요 곧 왕실 도자기 가마를 두었다. 금사리(金沙里)는 1734년부터 1751년까지 운영된 가마이다. 금사리는 유백색 곧 우윳빛의 백자색과 달항아리를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금사리 수습 파편을 통해 달항아리 등 금사리에서 만들어진 백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관전으로 9점의 국보와 보물급 달항아리 전시가 열렸으며, 2011년 문화재청에서 백자대호를 공식적으로 달항아리라고 명명했다. 
대영박물관 한국관에서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가 1935년대에 가져갔던 달항아리가 전시되고, 구본창이 영국의 사진작가 스노든이 짝은 영국 여자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옆에 있던 달항아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이 달항아리로 백자시리즈를 시작 했다고 한다. 
또, 강익중과 최영욱 역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 전시된 달항아리를 보고 감동, 영감을 얻어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도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달항아리 붐은 지금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상당 수의 도예가들이 200년 전 방식으로 달항아리를 빚고 굽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 항아리를 재현하려고 하는 집념의 표현일터인데, 그중에서 이용순과 김판기는 이렇게 실재로서의 달항아리에 다가가려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200년이 넘는 세월의 뒤로 돌아간 달항아리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매끈하고 세련되어 우아하게 느껴지며, 가로와 세로의 비율도 1:1에 가까워, 불룩한 중간 부분의 표면조차도 매끈하여 더 백자스럽다.
고영훈은 200여 년의 시간을 견뎌온 달항아리, 즉 “시간을 삼킨” 달항아리를 캔버스 위에 재현한다. 그 긴 시간을 빨아들인 항아리가 단순한 물체라고 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영물이 되어 비물질화 되어가는 모습을 페인팅으로 드러낸다. 항아리의 가장자리가 그 배경과 겹쳐지면서 캔버스 공간에 흡수되는 듯 보이고 항아리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달항아리 자체를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의 대상으로 삼아서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일루젼, 즉 달항아리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매우 세련되고 황홀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강익중도 달항아리를 실체가 아니라 “하늘을 담고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여기면서, 개개의 달항아리 자체보다는 달항아리라는 기표(signifiant) 아래에서 수많은 작은 달항아리와 달항아리 그림들을 사용하여 거대한 인스톨레이션으로 표현하였다. “원래는 둘이었지만 불 속을 뚫고 나와 하나로 합쳐졌다“는 달항아리 제작 과정에서 착안,  남북 간의 분단을 달항아리를 통해 이어붙이려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아래에서 달항아리는 아직도 강익중에게는 “꿈의 달”이다.
최영욱은 달항아리 표면에 갈라진 미세한 틈인 ‘빙렬(氷裂)’에 강렬한 의미를 부여한다. 실타래처럼 엮인 사람들의 인연과 관계 속에서 윤회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표면을 통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약의 온도에 따라서 생겨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세월 속에서도 생겨난다. 캔버스를 압도하는 거대한 항아리를 미디움으로, 마치 우리 손의 손금처럼 아티스트 자신의 삶의 감정과 생각을 빙렬을 통해 그려 넣는다.
김덕용은 달항아리가 품은 시간을 나무를 통해 드러낸다. 그는 나뭇결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 위에 달항아리를 새겨 놓았다. 도자기라는 물성 속에 녹아있는 시간과 감정을 나무의 결 속으로 파서 심었다. 달항아리라는 기표가 도자기라는 기의(signifie)에서 벗어나서 흘러 다니며, 개념화되고있다는 것을 김덕용은 화사하게 보여준다.
김덕용이 나무로 달항아리를 구현해낸 데 번해, 김용진은 철사로 구현해 놓았다. 수만개가 넘는 철사를 꼬아서 하나하나 일일이 심어서 달항아리를 평면스러운 입체로 재현한다. 심은 철사의 밀도가 명암을 조성해서 마치 흑백 사진이나 검은 색 안료로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눈의 착시에 따른 일종의 부조다. 도자기 형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도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그 재료적 물성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택이 제거된듯한 달항아리를 찍은 구본창의 사진은 백자를 생물, 특히 사람처럼 느끼게끔 한다. 살색으로 처리된 조명의 배경 속에서 드러난 항아리 표면의 질감 때문에 무생물인 도자기가 숨‘결’과 살‘결’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도자기가 가진 뭔가를 담으려는 충동과, 그 방만하게 벌어져 있는 주둥이가 보여주는 배출과 이완이 모순적으로 내재하고 있어서 도자기가 꿈틀거릴 듯하게 보이고, 더욱이 도자기와 그 배경 사이의 느슨하고 흐릿하게 배치되어있는 경계조차 환경 속에서 생물로서의 긴장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자기를 찍었지만, 도자기가 아니게 찍힌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달항아리에 대해 넘쳐나는 찬사를 듣고 읽어왔다. 브리티쉬 뮤지엄 한국관에 있는 달항아리를 버나드 리치는 “자연스러운 무심함(natural unconsciousness)”이라고 했고, 최순우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름다움”, 무심한 아름다움”, “원의 어진 맛”때문에 “넉넉한 맏며느리같다”고 했다. 
유홍준은 “한국미의 극치”라고도 했다. 이런 대부분 표현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주창한 민예론의 기본 로직과 언어에 포섭되어 포박되어 있다. 노자의 “대교약졸”에서 비롯된 교졸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무기교의 기교”라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조형 세계를 미적인 스탠다드로 삼은 전통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고영훈과 구본창 등의 여기에 전시하는 아티스트들은 이런 무네요시가 정의한 한국적 미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피카소나 마티스가 아프리카의 원시적 탈이나 중세 아라베스크 문양을 통해 새로운 조형적 혁신을 이룬 것처럼 달항아리라는 200여 년전의 기물을 형식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당대적 예술적 비전을 구현하고 있다. 김스미 작가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김스미 작가가 그린 달항아리
김스미 작가가 그린 달항아리
실제 달항아리
실제 달항아리서양화가 김스미가 20일부터 25일까지 전주 청목미술관에서 '달항아리에 스미다-전설(LEGEND)', 레지던시 결과 보고 초대전을 갖는다.
2023년부터 레지던시 작가로 열정을 다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120호 작품 '전설, LEGENDⅠ,Ⅱ'2점을 포함, 모두 25점을 선보인다.
'전설, LEGENDⅠ,Ⅱ'2점은 대규모 작품로 무려 8개 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이 전시는 '달항아리에 스미다-전설(LEGEND)'이란 명제를 달고 있다.
작가는 2019년, 1920년 '김스미전', 2021년 '영원한 꿈', 2022년 'We are Dreaming', '삶에 지친 그대에게', '추억을 소환하다', 2023년 '달달(達達)한 판타지Ⅰ,Ⅱ' 등, 전시마다 달항아리와 각기 다른 주제를 선택, 작업했다.
2024년, 달항아리에 스미다 개인전 '전설, LEGEND)'는 출생 연도와 관련된 띠 동물을 12지신으로 의인화한 디자인을 오마주해  작업했다.
작가의 달항아리에 대한 메타포를 통해 만월을 향한 우리의 소망을 공감하고 편안한 사유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물 등에서도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 주지만 아무래도 달항아리에 역량을 쏟는 듯 보인다.
달항아리 시리즈는 오래 전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직접 물성과 입체의 공간감을 이해하면서 평면 회화를 위한 습작과 소묘도 꾸준히 한 결과물로 보인다.
작가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힘든 시절을 달항아리와 그림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겪었던 작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그림에 담아 꿈의 시간을 소환하는 존재의 심연으로 표현한다.
달항아리가 가진 에너지의 파장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정서를 보듬는 색채 심리의 무의식적 치유의 모티프를 평면으로 형상화했다.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회화로 이행시키는 작업은 형태적 특징보다는 항아리 본연의 감성적 이미지 표현에 주안점을 두었다.
작품의 배경 추상을 회화적 퍼포먼스로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를 연결, 구성의 조화로움과 지적 판타지를 그렸다.
작가의 달항아리는 기쁨과 슬픔, 연민과 희망을 담아 꿈이 투영된 실존이 된다. 달을 품은 항아리에 존재의 염원을 실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김스미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은 조형적 균형과 안정된 통일감으로 현대적 감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일상에 지친 공허한 현대인들의 마음 한편을 따뜻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다며, 자기성찰의 깊은 속내를 꺼내 소통하며 덩달아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한 작품은 작가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작가의 지난한 역사와 삶으로 이루어지고 드러난 결과가 작품의 터무니일 수 있는 것이다. 
평면의 회화에도 수많은 수식이 있고 단순해 보이는 점과 선 하나에도 살아온 내력과 감정이 읽힐 수 있고 의도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작가의 여운과 무늬는 남는다. 
어린이 그림에서는 무구한 동심을 읽을 수 있고 원로 작가의 작품에서는 묵직한 연륜과 이력이 엿보이는 이치일 것이다.
작품 하나를 보고 그 모든 것을 유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작품에서는 유무형의 자연스러운 소통과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고 시공을 초월한 여행과 생각에 지친 습관적 의식을 깨우고 가능한 꿈을 갖게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오롯이 스민 산문적 감상이다.
대학 강의를 하고 새전북신문에 '김스미의 미술산책'이란 칼럼을 연재하면서 지금까지의 작품을 위해 탄탄하고도 견고한 수련을 해 온 작가다. 
자신이 목표한 결과를 위해 집요하고도 면밀하게 준비해 온 태생적 작가임이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전북도립미술관 인사아트센터, 청목미술관, 교동미술관, 전북예술회관, 예술공간 카메라타, 갤러리 아르, 2022 서울아트쇼, 사대문전, 개인전 및 단체전, 2023 리브포레스트전, 2023 아트페어대구, 2023 The GIAF. 신라호텔 아트페어, 기타 국내외 단체전 등에 60회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북미술협회, 전주미술협회 회원 회원, IACO 에이전시 전속작가, 청목미술관 레지던시 등으로 활동중인 가운데 새전북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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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열망 속에서 피어나는 달항아리, 화가들이 그리다
김환기 화가는 “내 그림의 모든 선은 백자에서 나왔고 내가 그리는 것은 모두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달항아리는 신비롭다.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조선 후기 1725-1751년 사이 26년 동안 왕실 도자기 제작처였던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제작에 따른 연혁이나 용도, 목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행사나 장식용이기에는 지나치게 평이하고 소박하며, 장류나 약재 혹은 술을 담는 용도라면 항아리 입구나 바닥이 좁아 불편하다. 
왕실 가마에서 도공이 실험이나 장난삼아 감히 대충 만들었다고도 보기 힘들다. 문헌이나 여타 서화에 따로 등장한 적도 거의 없다가, 200여 년이 지나서 수화 김환기의 그림과 글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며 이 항아리에서 한국의 미에 눈을 떴노라 고백했다.
 그가 본 달항아리는 그 중앙에서부터 균형이 일그러져 있어서 비율이 울퉁불퉁하여 항아리 주위를 돌아서 보면 항아리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가 생긴다.
게다가 표면에 발린 유약이 균등하지 않아 광택이 없는 속살이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세월 속에서 묻은 때와 도자기에 스며든 여러 가지 얼룩 때문에 매우 가깝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때는 아직 달항아리가 아니라 백자원호(白磁圓壺)나 백자대호(白磁大壺)로 불렸다.
경기도 광주 금사리가마에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주로 제작된 게 달항아리다.
1467년 무렵 조선왕실은 궁궐에서 사용할 백자를 만들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관요 곧 왕실 도자기 가마를 두었다. 금사리(金沙里)는 1734년부터 1751년까지 운영된 가마이다. 금사리는 유백색 곧 우윳빛의 백자색과 달항아리를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금사리 수습 파편을 통해 달항아리 등 금사리에서 만들어진 백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관전으로 9점의 국보와 보물급 달항아리 전시가 열렸으며, 2011년 문화재청에서 백자대호를 공식적으로 달항아리라고 명명했다. 
대영박물관 한국관에서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가 1935년대에 가져갔던 달항아리가 전시되고, 구본창이 영국의 사진작가 스노든이 짝은 영국 여자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옆에 있던 달항아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이 달항아리로 백자시리즈를 시작 했다고 한다. 
또, 강익중과 최영욱 역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 전시된 달항아리를 보고 감동, 영감을 얻어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도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달항아리 붐은 지금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상당 수의 도예가들이 200년 전 방식으로 달항아리를 빚고 굽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 항아리를 재현하려고 하는 집념의 표현일터인데, 그중에서 이용순과 김판기는 이렇게 실재로서의 달항아리에 다가가려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200년이 넘는 세월의 뒤로 돌아간 달항아리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매끈하고 세련되어 우아하게 느껴지며, 가로와 세로의 비율도 1:1에 가까워, 불룩한 중간 부분의 표면조차도 매끈하여 더 백자스럽다.
고영훈은 200여 년의 시간을 견뎌온 달항아리, 즉 “시간을 삼킨” 달항아리를 캔버스 위에 재현한다. 그 긴 시간을 빨아들인 항아리가 단순한 물체라고 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영물이 되어 비물질화 되어가는 모습을 페인팅으로 드러낸다. 항아리의 가장자리가 그 배경과 겹쳐지면서 캔버스 공간에 흡수되는 듯 보이고 항아리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달항아리 자체를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의 대상으로 삼아서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일루젼, 즉 달항아리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매우 세련되고 황홀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강익중도 달항아리를 실체가 아니라 “하늘을 담고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여기면서, 개개의 달항아리 자체보다는 달항아리라는 기표(signifiant) 아래에서 수많은 작은 달항아리와 달항아리 그림들을 사용하여 거대한 인스톨레이션으로 표현하였다. “원래는 둘이었지만 불 속을 뚫고 나와 하나로 합쳐졌다“는 달항아리 제작 과정에서 착안,  남북 간의 분단을 달항아리를 통해 이어붙이려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아래에서 달항아리는 아직도 강익중에게는 “꿈의 달”이다.
최영욱은 달항아리 표면에 갈라진 미세한 틈인 ‘빙렬(氷裂)’에 강렬한 의미를 부여한다. 실타래처럼 엮인 사람들의 인연과 관계 속에서 윤회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표면을 통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약의 온도에 따라서 생겨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세월 속에서도 생겨난다. 캔버스를 압도하는 거대한 항아리를 미디움으로, 마치 우리 손의 손금처럼 아티스트 자신의 삶의 감정과 생각을 빙렬을 통해 그려 넣는다.
김덕용은 달항아리가 품은 시간을 나무를 통해 드러낸다. 그는 나뭇결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 위에 달항아리를 새겨 놓았다. 도자기라는 물성 속에 녹아있는 시간과 감정을 나무의 결 속으로 파서 심었다. 달항아리라는 기표가 도자기라는 기의(signifie)에서 벗어나서 흘러 다니며, 개념화되고있다는 것을 김덕용은 화사하게 보여준다.
김덕용이 나무로 달항아리를 구현해낸 데 번해, 김용진은 철사로 구현해 놓았다. 수만개가 넘는 철사를 꼬아서 하나하나 일일이 심어서 달항아리를 평면스러운 입체로 재현한다. 심은 철사의 밀도가 명암을 조성해서 마치 흑백 사진이나 검은 색 안료로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눈의 착시에 따른 일종의 부조다. 도자기 형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도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그 재료적 물성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택이 제거된듯한 달항아리를 찍은 구본창의 사진은 백자를 생물, 특히 사람처럼 느끼게끔 한다. 살색으로 처리된 조명의 배경 속에서 드러난 항아리 표면의 질감 때문에 무생물인 도자기가 숨‘결’과 살‘결’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도자기가 가진 뭔가를 담으려는 충동과, 그 방만하게 벌어져 있는 주둥이가 보여주는 배출과 이완이 모순적으로 내재하고 있어서 도자기가 꿈틀거릴 듯하게 보이고, 더욱이 도자기와 그 배경 사이의 느슨하고 흐릿하게 배치되어있는 경계조차 환경 속에서 생물로서의 긴장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자기를 찍었지만, 도자기가 아니게 찍힌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달항아리에 대해 넘쳐나는 찬사를 듣고 읽어왔다. 브리티쉬 뮤지엄 한국관에 있는 달항아리를 버나드 리치는 “자연스러운 무심함(natural unconsciousness)”이라고 했고, 최순우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름다움”, 무심한 아름다움”, “원의 어진 맛”때문에 “넉넉한 맏며느리같다”고 했다. 
유홍준은 “한국미의 극치”라고도 했다. 이런 대부분 표현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주창한 민예론의 기본 로직과 언어에 포섭되어 포박되어 있다. 노자의 “대교약졸”에서 비롯된 교졸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무기교의 기교”라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조형 세계를 미적인 스탠다드로 삼은 전통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고영훈과 구본창 등의 여기에 전시하는 아티스트들은 이런 무네요시가 정의한 한국적 미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피카소나 마티스가 아프리카의 원시적 탈이나 중세 아라베스크 문양을 통해 새로운 조형적 혁신을 이룬 것처럼 달항아리라는 200여 년전의 기물을 형식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당대적 예술적 비전을 구현하고 있다. 김스미 작가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김스미 작가가 그린 달항아리
김스미 작가가 그린 달항아리
실제 달항아리
실제 달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