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차(黃茶) 표류기
최연성(군산대 교수 / 군산발전포럼 상임의장)
동양의 음식문화가 서양의 그것과 구별되는 특징은 여럿 있겠지만 차를 마시는 음차(飮茶) 습관도 그중 하나다. 중국과 일본, 인도,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나라들은 다 차를 즐겨 마신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또는 다반사라고 하는데, 여기서 다반은 곧 차와 밥이다.
동양인들은 차를 밥 먹듯이 즐겨 마신다. 이것이 근대에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과 프랑스의 홍차가 되었다. 한중일은 茶를 다 ‘차’라고 발음하는데, 한국에서는 ‘다’로도 읽고, 영어로는 ‘티’, 불어로는 ‘떼’라고 한다.
차는 생산지에 따라, 그리고 가공기술인 제다(製茶) 방식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매일 다른 차를 마셔도 죽을 때까지 다 마셔볼 수는 없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오죽 많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중국에서는 발효 정도에 따라 차를 여섯 종류로 구분하는데,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녹차부터 차례로 백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로 이름 붙여 구분한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보이차는 흑차의 일종인데, 다른 차들이 찻잎 자체의 효소에 의한 자연스러운 산화발효와 달리 특별한 미생물로 강하게 발효시킨 것이다. 여섯 중 딱 가운데 황차가 있는데, 떫은맛의 녹차와 구수한 맛의 보이차 중간쯤으로 깔끔한 맛이다.
이 황차로 인하여 조선 조정이 소란한 적이 있었다. 영조 38년(1762년) 11월 7일의 일이다. 승정원일기에는 “고군산에 표류한 자들의 짐이 많아 300 태나 되니 운반하기가 매우 어렵나이다(古群山漂人卜物, 多至於三百駄, 難以輸運云矣)”라는 기록이 있다. 태는 말 한 마리에 싣는 짐의 단위로 1태는 36관이며, 135Kg이다. 300태라면 40톤이 넘는다.
표류선에 짐이 잔뜩 실렸는데, 이 짐을 서울로 싣고 와서 처분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겠느냐? 이 사건과 연고가 없는 호남 백성에게 함부로 노역을 시켜서는 안 되고, 표류인들은 배를 정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데 이 자들은 또 어찌해야 하느냐로 어전회의가 열린 것이다. 짐이 하잘것없는 것이면 그냥 버리든지, 아니면 현지의 백성들에게 나눠주라면 그만일 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귀물이었다. 300 태의 짐은 황차였다.
이 사건은 승정원일기와 영조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선원의 처리 문제를 의논한 것으로 미뤄볼 때 표류선은 청과 조선 사이를 오가는 무역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자국 연안을 따라 화물을 운송하는 것이었는데, 어찌하여 풍랑을 만나 고군산까지 밀려온 것이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심하면 침몰하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영조 임금은 황차가 서울로 올라오면 반드시 경매로 처분하라고 명한다. 경매로 처분한 것을 보면 당시 시장에서는 황차가 유통되지 않아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표류선의 황차 덕분에 전국의 양반들이 몇 년을 두고 귀한 차를 마셨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여러 실학자가 우리 강토는 차 재배에 적합하니 차 산업을 육성하여 수출하자고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도 차 산지는 여러 곳이 있었는데, 군산도 그중의 하나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서부터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 많은 지리서에서 군산 옥구의 차 재배를 언급하고 있고, 1893년에 간행된 여재촬요(輿載撮要)를 보면 옥구의 토산품으로 차가 나온다. 이로써 일제 식민지가 되어 일본식 다도가 유행하고, 일본 녹차가 판치기 전에는 군산에서 우리 고유의 음차 풍습이 있었고, 자생차 재배가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군산은침, 곽산황아, 몽정황아 같은 황차는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차로 매우 귀하고, 고가여서 쉽게 맛볼 수 없다. 고군산에 표류한 황차가 어디서 난 무슨 차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지에서 적당히 처리하지 않고 경매로 처분한 것을 보면 꽤 값나가는 것이었다고 짐작해본다.
차는 음식으로써 뿐만 아니라 문화로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군산 차의 명맥은 끊어졌지만 회현면 일대에는 차 나무가 몇 그루 남아 있다. 멸절을 면했으니 참 다행이다. 우리는 청암산에 몇 그루 남지 않은 차나무를 잘 가꾸고 나아가 상품화해야 한다. 최근 ‘군산자생차연구회’가 조직되어 이런 일을 한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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