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용진읍이 '용진읍지'를 펴냈다. 이름하여 '완주군의 수도 용진(龍進)'이다.
용진읍은 서방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거울처럼 맑은 물의 소양천과 고산천이 휘어 감싸안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동쪽은 소양면, 남쪽은 삼례읍, 봉동읍, 전주시, 북쪽은 봉동읍과 고산면에 닿는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초곡면의 송암리, 고당리 일부를 병합, 신지, 운곡, 용흥, 간중, 상삼, 구역, 금상, 산정, 아중의 9개 리로 개편/관할하다가 1957년 11월 6일 아중리를 전주시에 넘겨주는 동시에 초포면의 상운리를 편입, 도로 9개 리가 됐다가 1989년 1월 1일 금상리와 산정리를 다시 전주시에 넘겨주어 현재 7개 리를 관할한다.
2015년 7월 행정자치부로부터 최종 읍 승격 승인을 받고, 용진읍 설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제정, 10월 1일부터 용진읍 시대를 열게 됐다. 이에 군은 지난 1973년 봉동읍 승격 이후 42년 동안 2개 읍, 11개 면에서 이달 1일을 기준으로 3개 읍, 10개 면으로 행정체제가 전환됐다.
읍 승격은 1973년 봉동읍 승격 후 42년만이고, 전라북도에서도 1995년 김제 만경읍, 남원 운봉읍 승격 이후 20년 만에 이루어진 경사로, 이는 군과 지역주민들이 합심해 이뤄낸 노력의 결과다. 2015년 용진면의 읍 승격은 지난 1995년 김제시 만경읍과 남원시 운봉읍에 이어 전북에선 20년 만에 이뤄진 쾌거인 만큼 도내 면단위 기관의 읍 승격을 가속화시킬 촉매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완주군의 기쁨을 넘어 전북의 경사(慶事)다.
용진은 1935년 ‘완전한 고을’ 완주군과 함께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면적은 38.50㎢로, 군 전체의 4.7%를 차지한다. 7개의 법정리(里)에 3,296세대, 7,628명의 주민이 자긍심을 갖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상추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용진은 전형적인 도농복합형 지역이다. 도시와 인접한 도시생활권 형성으로 도시 성향이 강하면서도, 소득 면에서 도시 근교의 상업·영농 적지로 각광받아왔다. 또한 조선시대 최초의 비가비 명창(양반)이자 정‧순조 때 활약한 판소리 8명창인 권삼득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예로부터 풍류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진묵대사가 출가한 곳인 봉서사 등 문화와 역사 면에서 유서가 깊은 고장이다. 무엇보다도 용진은 그동안 완주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전주시와 완주군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해온데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다함께 열어가는 으뜸도시 완주’ 건설의 중심지로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해 7월 1일 신청사가 개청하면서 명실공한 완주지역 중심도시로 우뚝 섰으며, 전주 시민을 위시한 많은 도민들이 은퇴 후 정주(定住)지역으로 용진을 꼽고 있다. 30~40대 젊은 귀농귀촌인들도 이 지역을 앞 다퉈 찾을 정도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군을 로컬푸드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선봉역할을 했다. 용진 덕분에 군은 ‘전국 로컬푸드 1번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에 로컬푸드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본다. 전북의 청정이미지도 용진이 기여한 바 크다. 읍 승격은 이 같은 역사성과 지역적 특성, 역할과 함께 앞으로 완주발전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가 합쳐져 이뤄낸 쾌거여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완주군은 1973년 봉동읍이 승격된 이후 42년 동안 2개 읍(邑), 11개 면(面) 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3개 읍, 10개 면 체제로 전환됐다. 군청 소재지로서의 위상강화가 기대된다.
이번 읍지는 지명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금석문을 별도로 하나의 장을 만든 게 특징으로 보인다. 호성군 이주 신도비, 추사 김정희와 창암 이삼만의 합작 ‘정부인 광산김씨 묘비’ 등 9개의 비석이 더욱 더 눈길을 끈다.
읍은 14일 오전 10시 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용진읍지’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1.용 관련 지명
용교(龍橋. 미네다리. 미나다리)
부분명-복구석이 용교의 본 이름은 미나다리다. 용의 순수 국어는 ‘미르. 미리’지만 ‘미나. 미네’는 그 변한 말이고, ‘다리’는 고대 지명에 있어 ‘들’이라는 말이다. 용교 뒤에는 용소(龍沼)가 있어 미네다리는 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복구석이는 개가 엎드린 형상의 바위가 있어 생긴 명칭.
용암(龍岩里. 용바우)
부분명-척동(尺洞. 잣터) 용암은 이 마을 옆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인데 지금은 없다. 척동의 본시 이름은 잣터다. 잣은 성(成)의 순수 국어로, 이곳은 성터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뒷산 능선이 잣대와 같이 곧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용흥리(龍興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용진읍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흥리 녹동리 봉암리 시게리 시중리 반룡리 시천리 도계리 일부를 병합, 용흥리라 하여 용진읍에 편입함.
용복(龍伏)
뒷산 모양이 용이 엎드린 것 같다고 함.
2.용진읍지 누가 만들었나
발행처: 용진읍지편찬위원회· 완주군 용진읍행정복지센터
발행인: 박종림, 정회정
주간: 이호연, 이종귀, 정명석
집 필: 김진돈, 이용규, 안충환, 최성우, 강소은, 김가영, 임예빈
표제 글씨: 이승연
사 진:이호연, 윤홍현
화보 사진:황재남
북디자인: 장혜영, 이슬아, 한혜진
인 쇄: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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