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꽃심’을 지닌 전주를 노래하다(상)
전주는 세월이 지날수록 융숭한 맛이 나는 도시로 1,300년 전 지금의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전주를 ‘꽃심 지닌 땅’이라고 했으며, 조선시대 서거정은 ‘공북루기(拱北樓記)’에서 전주를 ‘아조선근본지지(俄朝鮮根本之地, 우리 조선의 근본 되는 땅)’라고 해서 각별히 상서로운 곳으로 높여 불렀습니다.
‘그러하매 아조에서는 전주를 선영의 선원조발지기(璿源肇發之基)로서, 아름다운 옥과도 같은 왕조의 근원이 시작된 곳이라 하여, 이 땅에 웅숭 깊은 경의를 다하였으며, 시방동천(示方洞天) 부성을 두루 성역으로 삼아서 신성하게 가꾸고 애중히 여기었다. 그리고는 한양에 버금가는 고을로 이 고장을 존중하였더니라’(‘혼불’ 8권 77쪽)
지금은 이름조차 사라진 고향집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그녀의 추억 속 전북은 어떤 모습일까요? 작가는 이름조차 희미한 추억 속 고향집 전의 기억은 저마다 한 채의 집을 짓는다고 ‘고향예찬’을 통해 말합니다.
△‘고향예찬’을 통해 기억은 한 채의 집을 노래하다
'기억은 저마다 한 채씩의 집을 짓는다. 기린봉 푸른 밤하늘에 시리도록 흰 달이 걸리면, 두렷하게 드러난 능선을 타고 달빛이 흘러 온 전주가 옥색 물소리에 흥건히 잠기던 충만의 감동. 멀리서 그 달빛을 두드리던 가을 다듬이 소리. 주황의 창호지 불빛. 아아,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은 풍경보다 더욱 그리운 집을 한 채씩 견고하게 내 속에다 짓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한 번도 말을 나누어 본 적은 없었지만 너무나도 낯익고 친숙하여 이미 남이 아닌, 전주사람이라면 으레 당연히 알고 있었던 그 몇 사람은, 날이 갈수록 왜 그런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그 동네 이름이 없어졌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은 화원동(花園洞, 현 풍남동 일대)이랍니다. 아마 동문 사거리 근처 어디쯤이었을 이 집에서 대 여섯 살 때까지 살았는데, 거기서부터 이승의 생(生)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전생의 풍경 몇 점인양 떠오르는 그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문득 마음이 조그마해지고, 고요히 슬픈 것처럼 가라앉았구요. 그리고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도시 계획에 무너진 마당을 파헤쳐 새로 낸 길과 시멘트 빌딩에 무참히 짓눌려 버린 탯자리는, 검은 아스팔트 밑에서 가여운 숨을 죽이며, 마흔여덟 아득히 떠나온 자신을 부른다고 묘사합니다.
‘내 잃어버린 첫 자리 ‘화원동’ 대신. 그래서 아무 쓸모도 없을는지는 모르나, 내 마음의 전주에 그 옛날의 고향 하나를 오밀조밀 정답게 복원해 보고 싶다. 그들도 나처럼 전주사람이었으니. 이렇게 쓸쓸하고 고단한 밤이면 그냥 호젓한 발길로 돌아가 하나, 하나 불빛처럼 찾아 볼 수 있도록. 이 그리운 마을의 한 집에는 당신이 있을 것이고, 당신의 마을 한 집에는 아마도 내가 있겠지. 우리 전주 사람들’
작가의 수필은 나르시시즘뿐만 아니라 카타르시스의 복합성으로 엮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주가 지닌 역사적 그림자와 일제 암흑기를 살아야했던 후손으로 자임하는 작가의식에서 보면 수필쓰기라는 개인적 탈출은 필연적으로 소설이라는 보다 대승적인 해방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혼불’의 심적 분위기에 해당하는 어둠과 그리움이 수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는 산 목숨 같은 어둠을 '장쾌하게 풀어줄 한줄기 햇빛을 앙모'하는 심정으로 ‘꽃심의 땅’ 전주를 자기 동일시로 받아들여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는 욕망을 자각하고, 그 탈출을 위해 철저히 몸부림을 친 작가였습니다. 작가에게 가장 깊은 어둠에 닿는 것은, 결국 가장 높은 빛에 닿는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혼불’은 한국 민속문화의 보고
한국문학의 큰 획을 그은 최명희작가의 대하 예술소설 ‘혼불’은 박제화되어가는 민속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살려 모국어의 감미로움과 미려함을 돋보이게 한 작품입니다.
‘혼불’이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입니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입니다. 우리 몸 속에 있다가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혼불로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입니다. 이러한 존재의 핵, 우리 민족의 핵, 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 ‘혼불’입니다.
17년 동안 집필한 혼신의 대작, '혼불'을 기리는 문학관 2곳이 전주와 남원에 각각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듯 피와 혼으로 한마디 한마디 써 내려갔다”고 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원고지가 무려 1만2,000장에 이릅니다.
‘혼불’은 1930~40년대 남원와 전주를 배경으로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와 그 문중에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들의 굴곡진 삶을 줄거리로 합니다. 일제강점기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양반사회,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 산천 초목, 생활 습관, 사회 제도, 촌락 구조, 역사, 세시풍속, 관혼상제, 통과 의례, 그리고 주거의 형태와 복장, 음식, 가구, 그릇, 소리, 노래, 언어, 빛깔, 몸짓들을 단순한 토막 지식으로서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행하고 치르고 감당했던 선조들의 숨결, 손길, 염원과 애증이 선연히 살아나도록 애절하게 생생한 언어로 복원,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주의 모습이 ‘혼불'에 세심하게 담겨있습니다. 특히 경기전, 한벽당, 풍남문, 전동성당, 이목대, 오목대, 전주향교, 학인당 등 전통문화 유적이 파노라마처럼 드러납니다.
‘경기전에서 몇 걸음만 동쪽으로 가면 오목대(梧木臺)가 있었지. 전주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오목대, 앙징맞고 조그마한 비각 하나 서있는, 언덕같이 나지막한 동산 기슭, 그러면서도 전주 울안이 한눈에 들어와 안기는 이곳, 햇볕 다냥한 양지밭을 정다웁게 좋아하였다'(‘혼불’ 8권 )’
오목대와 청수정 이야기도 나옵니다.
‘ 전주 교동, 오목대 아래, 경찰서 맞은편 골목 안 깊숙이 전주천변 쪽으로 들어앉아, 흐르는 물 소리가 귀에 가까운 심진학의 고옥(古屋)에 초여름 등꽃이 소리 죽여 피어나고, 지용훈 목소리는 더욱 낮게 내려갔다'(『혼불 10권』 34쪽)
청수정은, 동네의 오른쪽으로 넓은 시냇물이 흐르고, 우람한 은행목들이 몇 백 년 수를 자랑하며 밀밀하게 서 있는 향교, 그리고 전주 부성이 아끼는 팔경 중에 하나로 꼽히는 한벽루(寒碧樓)를 반달같이 팔에 품어안고 있었다. '(『혼불 1권』 148쪽)
한옥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청수약국은 최근에 다른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그는 완산8경의 하나인 기린봉의 달을 담담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기린봉에 달 뜨는 밤이 오면, 동고산성 굽이치는 성벽들은 달빛에 푸른 몸 드러내며, 산꼭대기 휘감아 넘실대는 성곽들의 강물을 아득히 이루었다. 여기서 기린봉 능선을 가파르게 타고 내린 산성은 다시 동정리(東正里) 인후동(麟后洞) 동쪽을 엮어서 휘엇하니 반달을 그리며 진안(鎭安) 가는 길목 서낭당이를 감싸고 돌아, 그 안에 물결치는 산과 내보듬어서 뺑 돈다. 그리고는 견훤의 왕궁터였다는 물왕멀 동네에 잠시 머물어 한숨 돌리다가, 이제 남고산 남고진(南固鎭)에 길고 긴 융의 꼬리를 힘껏 쳐올리니. 이것이 남고산성이었다. /(『혼불 8권』124쪽)/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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