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은 2023년 단오를 맞아 18일부터 24일까지단오 세시행사를 갖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131호인 씨름은 가장 오래된 민속놀이 중 하나이다. 소세양(1486~1562)의 '양곡선생문집'을 보면 단옷날 서울 거리에서 씨름과 그네뛰기 하는 풍경이 등장한다. '오늘이 바로 단오이니 소년들이 무리 지어 즐겁게 노네. 거리마다 다투어 씨름을 하고 나무마다 그네를 뛰네. 잔에 창포를 띄워 따뜻하고 문에는 애호를 엮어 달았네. 노인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밤새도록 책 덮고 잠자는 것이네'라고 하여 창포를 띄운 술을 단오에 즐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씨름의 스타는 당연히 상씨름꾼이다. 상씨름꾼은 전통씨름을 하던 당시에 가장 씨름을 잘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봉동씨름의 5봉래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봉동씨름의 시름꾼 장사는 5봉래(奉來)였던 ‘최’, ‘강’, ‘도’, ‘임’, ‘한'들은 전국 씨름판을 누볐다. 해마다 이 다섯 장사들이 전국의 씨름판에서 타온 소가 200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봉동에는 이밖에 김재철, 이성구, 이력철, 강대성 등의 장사와 더불어 임병용(42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임병용이 전문 씨름선수로 진입하면서 지역 후배들을 이끌고 지도하면서 봉동씨름의 전통을 잇고 있다. 소개한 노복기, 정창성, 도복래가 첫 세대이고 그 다음으로 노은기, 김재철, 이병원이며, 1960년대는 노왕근, 이영복, 전민기, 김성수, 장노영, 이영창이 활동했고, 그 밑으로는 이대천(쌍정), 남궁태기(장기리, 쌍정), 이문화(쌍정) 등을 손꼽았다. 그렇다면 봉동씨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봉동읍 장기리는 옛 고산현의 사형터였다 한다. 그래서 죽은 원귀를 달래기 위해 장기리 상장기 당산나무에 당산제를 지내고 씨름판을 벌였다 한다. 또 다른 얘기로는 터를 울리기 위해서였다 한다. 봉동으로 흐르는 고산천은 폭우가 내리면 어김없이 물난리가 났다. 많이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죽은 물귀신을 달래고 제방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당산제와 씨름을 했다. 당산나무가 있는 느티나무 숲도 수구막이숲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정자나무가 있었지만 수해로 많이 떠내려갔다. 그래서 “정자나무 세 그루 남으면 마을이 떠내려간다”는 말도 있다. '봉동에 가서 힘자랑 하지 마라' 단오 무렵, 그 맥이 끊어지고 있음이 너무나도 아쉽다. 봉동씨름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애기 씨름이 잘 되어야 한다. 해마다 음력 7월 스무날 봉동 장기리 방천 가 숲속에서 힘과 기술의 봉동씨름대회가 열렸었는데 언젠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봉동씨름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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