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전주 진북사 관등(觀燈)놀이
전주의 풍수좌향은 사신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동쪽으론 기린, 남쪽으로는 봉황, 서쪽으로는 용, 북쪽으로는 거북을 두었다. 동쪽의 기린봉은 산세가 곧게 솟아났으며, 남쪽의 봉황암은 고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봉황암 앞에는 봉황지로 현재 효자동 근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은 완산칠봉의 용이 서쪽으로 향하여 용트림하고 있으며, 용의 머리 부분이 현재의 용머리고개(龍頭峴)다.북쪽으로 읍성 내에 현무지(玄武池)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지리적으로 기린봉의 산세가 도솔봉으로 이어오다가 읍성쪽으로 내려와 금암동(현 KBS전주방송총국)에 거북바위(龜岩)가 위치하고 있다. 이름하여 4천왕봉이란 기린봉(동), 남고산(남), 황방산(서), 건지산(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방신(四方神) 사상이 투영된 것이다. 사신도에 나타난 사방신 개념에는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 등의 사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서쪽에 해당하는 산을 완산, 남쪽을 곤지산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4고사를 파악할 경우, 동고사는 중바위(승암산), 남고사(남고산), 서고사(황방산), 북고사(유연대) 등이어서 반드시 수호봉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진북사(鎭北寺)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 '북고사(北固寺)'라 했다. 조선 후기 전라감사 이서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주성의 북쪽을 보강하기 위해 이 절에 나무를 심고 절 이름을 '진북사'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유물로 창건 당시의 것으로 전해지는 석조미륵불상이 남아 있다고 하나 문이 잠겨 있어 친견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 곳이 허(虛)한가, 윤석열 정부는, 내 가정은 어디에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가.
진북사의 연등회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찰에서 관등(觀燈)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형형색색 연등축제는 지혜를 상징하는 물과 불의 어울림을 통해 하심(下心)하는 마음을 배우고 다름을 수용하는 덕성을 배워, 세상을 밝히는 연등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진북사 관등(鎭北寺 觀燈, 88.0×58.0cm, 종이에 채색, 개인 소장)은 석정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이 조선말기-근대의 그림이다. 화제는 청포(靑圃) 이광묵(李光默)이 썼다. 도서 밑 한문을 보면 ’청포필 석정화(靑圃筆 石亭畵)‘로 익힌다. 조선후기 실학의 대가인 이정직은 성리학, 사학, 천력, 산학 등 4학과 실학, 서화에도 통달하였다. 그의 서화는 당대 뿐 아니라 이후 전북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 손에 사각등을 들고 등불을 밝히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 절 마당에서 놀이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 등 '부처님오신날'을 즐기던 당시 아낙과 사내와 아이들의 삶이 토속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화면 왼편에 어마어마한 대불이 자리하고 있다. 관등을 하는 이들은 남녀노소 구별없이 축제처럼 어울리고 있다. 사찰 주변으로는 긴 초롱등으로 보이는 수 많은 등이 달려 있다.
우리 옛 선조의 발자취를 만나러 가는 길엔 비행기도, 큰 배도 필요 없지 않은가. 작품 속 절집은 검박하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리고 묵직하다. 건물을 이고 선, 빛바랜 나무들이 주는 세월의 무게감 때문이지 싶다. 절집으로 드는 문은 달랑 하나다. 쪽문도 보인다. 허리 굽혀 쪽문을 나서도 본전을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봄비가 꽃비처럼 무채색 처마 아래로 흩뿌려진다.
이 작품의 세필로 쓰인 한자를 한글로 바꾸면,
‘진북사 관등
만 길 깍아지른 절벽
한 칸 고요한 절집
향기 어리어 부처님 신령해도다
목탁 소리 그 속에서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연등, 관등놀이, 방생, 탑돌이’ 등을 하는 풍습이 있다. 연등은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형형색색으로 제작해 절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볼 수 있다. 이는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무영의 어리석음을 깨치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연등행사는 불경의 하나인 '현우경(賢愚經)'의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의 등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왕과 부자들의 크고 화려한 등도 기름이 다하자 곧 꺼졌다. 그러나 난타가 올린 초라한 등불은 여전히 밝게 타올랐다. 붓다 제자가 세 번이나 끄려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붓다는 제자에게 ‘이 등불은 비록 약하지만 여인의 큰 보리심이 담겨있다. 바닷물을 쏟아 부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왕과 부자가 바친 화려한 등보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어린 한 개의 등이 훨씬 귀함을 역설하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사람이 켜는 소중한 등불 하나’란 뜻이다. 전세 사기로 며칠 전에 젊은 사람이 죽었다. 또 홀로 어르신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민들의 입장에선 물가가 너무 널뛰어 호주머니가 이전보다 더욱 가벼워졌다. 탄식소리가 하늘로 치솟지만 어느 누구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다.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연말연시의 생색내기도 아니다. 1년 365일 무조건적 사랑의 실천일 뿐이다. 더욱이 돈이 많다고, 박사학위를 가졌다고, 한국대 나왔다고 제발 자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말수 좀 줄이고, 남의 일에 끼워들어 비전문가가 전문가인척 가르쳐 들라 하지 마라. 본인의 기우를 나에게, 지인들에게 전가하지 말라, 우물안 개구리가 어찌 하늘을 제대로 알 것인가.
가진 것 없는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이다. 나눔의 미덕은 순수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눔은 ‘재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 재능기부도 마찬가지다. 나눔이 부자들만의 독점물이 아닌 이유다. 빈부의 차나 남녀노소에 관계없는 사랑의 실천이다. 코로나 이후, 지금처럼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고 찾아보며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빈자일등’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더욱 더 낮아져 살아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체득했다.
행복은 성적순인가, 경제적으로 넉넉함 순인가. 작품 속 단 한 칸의 고요한 절집은 삶은 속도전이 아닌 방향성임을 나타내는 상징일 터이다. 당신은 지금 동서남북 가운데 어느 곳을 지나고 있나.
조선시대에는 부녀자들이 절에 가는 것을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초파일만은 절에 가는 것을 허용하고 야금(夜禁)을 해제해서 관등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북돋워 주었다.
아, 이제 자유인가, 당신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즉 기쁨,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을 인간의 일곱가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인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도 바로 이 칠정(七精)이다.
똑똑해야 성공한다고들 생각을 한다. 똑똑한 사람은 잘 나갈 때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감정이다. 출세할수록 인간은 으스대고 싶어지고 타인을 막 대하고 싶어진다. 그런 감정을 조절 못하다 보면 적을 만들게 된다. 잘 나갈 때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자만에 사로잡히다 보면 어느 순간 실수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은데서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긴다.
어제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찰마다 봉축법요식이 열렸다.
작품의 모습처럼 '징징 박박' , '갠지갱 갠지갱' 휘몰아치는 풍물의 흥이 더 없이 좋은 야외 무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자 질펀한 놀이터에 만들어진 신명의 자리는 더 깊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진북사에서 밝은 빛 맑은 소리, 찬란한 금빛 울림을 전하는 풍경(風磬)소리가 가슴 밑바닥 감수성을 적시는 메마른 내 가슴에 꽃비가 된다.
싸리비 자국 고운 마당과 위로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진리의 항해를 의미하는 심우도, 그리고 저 멀리로 날렵한 처마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풍경소리 은은히 울려퍼진다. 이는 풍탁(風鐸) 또는 풍령(風鈴)이라고도 하며, 소리를 통해 수행자나 사람들의 나태함과 방탕함을 깨우치는 법구의 하나다.
풍탁의 방울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기가 사월의 바람을 따라 청아한 법음을 전해준다.
그런데 왜 이 풍경에 물고기를 매단 것일까? 먼저 풍경 끝의 물고기를 올려다 보라! 그리고 그 물고기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그려 보라!
그 푸른 하늘은 곧 푸른 바다를 뜻한다. 이내 그 바다에 한 마리의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한 마리 물고기를 매달음으로써 그곳은 물이 한없이 풍부한 바다가 된다. 그 풍부한 물은 세상의 어떠한 큰 불도 능히 끌 수 있다. 바로 나무로 지은 목조 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한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물고기가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 눈을 감지 않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듯이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항상 부지런히 도(道)를 닦으라는 뜻을 상징한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어라, 언제나 혼침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 너도 깨닫고 타인도 능히 깨닫게 할지니….”
바람에 흔들리는 풍탁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곤 한다. 깨어있는 세상의 중요성과 큰 바다에서 자유로이 물고기의 헤엄침이 ‘오만가지’ 번뇌를 한방에 다스리곤 한다
향기나는 당신이 꽃이고 곧 부처다.
시나브로, 매말랐던 숲에 여름 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봄비가 내린다. 꽃은 흔들리면서 피지만 질 때는 흔들거림이 없다. 지금 숲에선 무수한 꽃잎이 지고 또 지천으로 꽃이 피어나고 있다.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지다 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 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어디까지가 지는 꽃이고, 어디까지가 피는 꽃인가?
내 마음에 꽃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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