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북스토리

<새전북신문 속보>4·19혁명·동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고창선 무장포고문 등 3건

<새전북신문 속보>4·19혁명·동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고창선 무장포고문 등 3건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인 4·19혁명과 조선시대 백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관련 근현대사의 주요한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 됐다.

유네스코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행 이사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다.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2월 28일 일어난 대구 시위를 시작으로 한 4·19혁명의 원인·전개 과정 등을 보여주는 모든 기록유산이다. 당시 국가기관과 국회·정당의 자료, 언론 기사, 개인 기록, 사진과 영상 등으로 구성됐다.1960년,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하는 마산 시위에 참여했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남원출신 김주열열사의 죽음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의 관과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한 민간인, 일본공사관 등의 기록물이다. 4·19혁명 기록물은 모범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정치 사건을 자세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를 해체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등재 후보로 선정됐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인간존중, 자주, 직접민주주의, 평등, 민주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동학농민군의 정신이 올곧게 표현된 인류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기록유산에 오른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모두 185건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 가운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사발통문(233호), 흥선대원군 효유문(234호), 양호전기(235호) 3건이 2015년 12월에 문화재 지정이 되기도 했다.

'사발통문(沙鉢通文)'은 동학농민군이 남긴 유일한 자료로, 상징적 의의가 있으며, 사료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는 1968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어느 집 마루 밑에 70여년 동안 묻혀 있던 족보 속에서 발견됐으며, 사발통문 서명자 중 한사람인 송국섭의 손자 송종수(1925년생)씨가 보관해 오다가 2015년 2월 함께 보관해 오던 ‘송두호 교장 임명장’,‘송대화 대접주 임명장’, ‘이왈수 별교장 임명장’,‘(정유삼월)교장임명장’등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 '양호전기(兩湖電記)'는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에 대한 조선정부 토벌군의 책임자인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이 1894년 4월 3일부터 1894년 5월 28일까지 국왕인 고종을 비롯, 조선 정부의 각 기관과 주고받은 전보를 날짜 순서로 수록해 놓은 기록이다. 

특히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과 완산칠봉에 주둔한 진압군의 공방전과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양호전기(兩湖電記)'는 필사본 형태로 현재 2부가 존재하고 있다. 1부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북 문화재가 된 양호전기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2014년 홍계훈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선대원군효유문(興宣大院君曉諭文)'은 흥선대원군이 동학농민군에게 해산할 것을 종용하는 문서이다. 그러나 실제 흥선대원군은 전봉준 등 농민군지도부에게 밀사를 보내고 밀지를 내려 봉기를 유도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흥선대원군 효유문'은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사료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다.

 고창군과 관련된 자료는 무장포고문과 취의록(흥덕현·고창현의 농민군 토벌을 벌인 수성군 명단), 거의록(흥덕현, 고창현의 유생들의 수성군 조직 활동기록) 등 3건이다.

‘무장포고문(천도교 중앙총부 소장)’은 1894년 무장기포 당시 봉기의 이유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포고문은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로 시작해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죽고 살기를 맹세한다”로 이어진다.

당시 포고문은 고부 농민봉기 이후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지도부가 무장현(현재 고창군 공음면)에서 전국적인 농민봉기를 선언 하면서 발표했다.

동학농민혁명의 대의명분을 함축해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 격문을 보내 농민군들의 합류를 촉발했다.

여기에 동학농민혁명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국적인 대규모 항쟁으로 커지고, 우리나라 역사의 민족·민중항쟁의 근간이 되는 선언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창군은 현재 천도교 중앙총부가 소장중인 무장포고문 필사본 복제 작업에 착수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려대 도서관, 천도교중앙총부, 국사편찬위원회 등 12개 국가 기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8건으로 늘었다. 지난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승정원일기·직지심체요절(이상 2001년), 조선왕조 의궤·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이상 2007년) 등이 기록유산이 됐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있는 서적(책), 고문서, 편지 등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2년마다 선정하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