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어린이들이 소 여물통처럼 생긴 빈 그릇에 팔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긁어내고 있다. 앙상한 팔다리와 부풀어 오른 배, 갈비뼈가 드러나 있다. 표정은 넋이 나가 있거나 울기 직전이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재난비상위원회’가 1980년대 초 에티오피아 대기근 구호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이다.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이 단체는 1980~1984년 동안 2,300만달러를 모았다. 다른 구호 단체들도 앞다퉈 비슷한 이미지를 내걸었다. 서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아프리카 기근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는 1985년 마이클 잭슨 등 유명 가수들의 ‘위 아 더 월드’ 뮤직비디오 제작이나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참여로도 이어졌다. 가엾은 아이들을 내세운 이미지는 논쟁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미지가 인종주의적 편견을 부추기고 동정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다.
최근들어 한국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중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와 찍은 사진을 놓고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 표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빈곤 포르노’는 이미 오래전 확립된 개념이다. 김여사가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어린이의 집을 방문해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 일정은 취재진 없이 비공개로 진행해 대통령실이 제공한 사진만 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빈곤 포르노 화보를 찍었다”고 지적했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위선양을 위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에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고 두둔하고 나서는 등 정치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국외 순방 때마다 김 여사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등이 도드라져 보이던 사진이 공개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후원 모금을 유도하는 광고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누구였을까? 대부분 흑인, 아프리카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편견을 안겨준다. “흑인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 나라는 원래 가난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을 유도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고 그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을 비꼬기 위한 광고까지 등장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통해 ‘아동을 동정 및 시혜의 대상이나 약자, 피해자로 묘사하지 말고 삶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자로 표현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강제성은 없다. 사진 한 장은 때로 많은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나라는 연말연시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선단체들의 마케팅도 강화되는데 감정에 호소하며 눈물을 짜내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의 광고 홍보 전략은 올바른 기부문화 형성과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감정적인 후원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다. 기부 방식을 다양화해 기부 열기가 식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란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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