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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착한 사마리아 인의 법

 

 

'이태원 압사 참사' 수사에 나선 당국이 사고의 법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는 데 고심중이다. 대열 뒤편에 있던 일부 시민이나 인근 업소 직원이 대형 인명피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형사처벌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SNS에서는 사고가 난 골목길에서 오르막 쪽에 있던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와 사고가 기록된 현장 동영상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앞 사람을 밀어 대열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뒤엉키는 연쇄작용이 일어났다면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이 뒤엉켜 인명피해까지 나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고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나아가 앞 사람을 민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는 폭행으로 평가되는 만큼 과실 아닌 폭행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밀어'라고 외쳤다는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인명피해와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바로 앞 사람을 민 행위와 대열의 맨 앞에 있던 사람이 바닥에 깔린 결과 사이의 여러 단계 인과관계를 하나씩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뒤엉킨 대열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골목 안 가게로 몸을 피하려 하자 가게를 지키는 이른바 '가드'들이 출입을 막았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이를 두고 압사 직전 상태인 이들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한 상황으로 다시 내몬 가드들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자신은 별다른 위험 없이 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모른 체 지나쳤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어떤 유태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길가에 버려졌는데, 동족인 유태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 본 척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유태인에게 멸시 받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에서 구조해 주었다.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소외받던 사람이,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고 책임을 부과 받은 사람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한 것이다. 이태원참사로 다시 뜨거운 감자 된 착한 사마리아 인의 법’. 성서에 나온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유래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부상을 입고 길가에 버려졌는데, 동족인 유대인은 모른 체 지나쳤지만, 유대인에게 핍박받던 사마리아인이 구조했다. 그냥 지나친 유대인에게 도덕적 비난은 있을지언정 법적 책임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독일·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선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규정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 노출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회적 도리이자 '의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시행되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에서 남을 구조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누구나 곤경에 빠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 논쟁이 다시 일어났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이 법의 도입 논쟁은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