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강당재
전주시가 중화산1동과 완산동을 잇는 다가공원 강당재 도로 확장을 통해 인근주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키로 했다. 전주시는 2017년 5월까지 폭 4m로 협소한 다가공원 주변 소로인 강당4길 145m 구간을 차량 교행이 가능한 폭 5m의 도로로 확장할 계획이다.
‘강당재’는 중화산1동과 완산동을 잇는 오래된 고개로, 과거 화산서원(華山書院)의 강당이 있는 고개를 선비들이 오르내리면서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당재'는 구 예수병원 좌측 고개로 주변에 화산서원이 위치하고 있어 이 고개를 강당재라고 불렀다. 고개마루 근처 좌편에는 인민군이 학살했던 움푹파인 터가 있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이곳엔 맹꽁이들이 살았다.
이 도로는 용머리로와 서원로가 생겨난 이후에도 많은 차량과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다가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중화산동에서 다가산 정상으로 넘어오는 주요 산책로로도 이용되고 있다.
기독교 교세가 확장되면서 신흥학교는 1920년에 60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가 1921년에는 200여 명으로 증가한 바, 주일에는 학생과 교직원들이 단체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경기전에 인접해 있던 향교를 서원너머로 옮기고 화산서원을 설립, 요즘말로 학교군을 형성한 현재의 예수병원 주위는 항상 선비들로 들끓었다. 노송이 우거진 오솔길로서 아침 저녁으로 학문을 닦는 교실(강당)을 향해 오르내리는 고개라고 해서 강당재로 부르고 있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된 화산서원비에 따르면 화산서원 1578년에 건립, 조선 전기의 대학자 이언적과 송인수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하지만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 지금은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이 비석만 남아, 이곳이 예전에 선비들이 글을 읽던 학문의 전당임을 전해주고 있다.
이 겨울, 용머리고개를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1번 국도를 버리고 곁길로 돌아가길 권하고 싶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빙고리’로 부르는 바, 조선시대에는 빙고(氷庫), 즉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가산 자락에 예수병원과 기숙사가 들어서면서 마침내 빙고는 자리를 빼앗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빙고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의 흐름을 따라 반원을 그리고 올라가면 엠마오사랑병원으로 오르는 길과 강당재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가파르지도, 길지도 않지만 강당재 정상에 올라서면 벌써 머리는 맑아지고 눈은 시원해진 것을 만끽하게 된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거기 매달려 있을 샛노란 탱자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강당재.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강당재 도로 확장이 이루어지면 그동안 인근 주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위험도 크게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이종근
전주시가 중화산1동과 완산동을 잇는 다가공원 강당재 도로 확장을 통해 인근주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키로 했다. 전주시는 2017년 5월까지 폭 4m로 협소한 다가공원 주변 소로인 강당4길 145m 구간을 차량 교행이 가능한 폭 5m의 도로로 확장할 계획이다.
‘강당재’는 중화산1동과 완산동을 잇는 오래된 고개로, 과거 화산서원(華山書院)의 강당이 있는 고개를 선비들이 오르내리면서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당재'는 구 예수병원 좌측 고개로 주변에 화산서원이 위치하고 있어 이 고개를 강당재라고 불렀다. 고개마루 근처 좌편에는 인민군이 학살했던 움푹파인 터가 있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이곳엔 맹꽁이들이 살았다.
이 도로는 용머리로와 서원로가 생겨난 이후에도 많은 차량과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다가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중화산동에서 다가산 정상으로 넘어오는 주요 산책로로도 이용되고 있다.
기독교 교세가 확장되면서 신흥학교는 1920년에 60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가 1921년에는 200여 명으로 증가한 바, 주일에는 학생과 교직원들이 단체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경기전에 인접해 있던 향교를 서원너머로 옮기고 화산서원을 설립, 요즘말로 학교군을 형성한 현재의 예수병원 주위는 항상 선비들로 들끓었다. 노송이 우거진 오솔길로서 아침 저녁으로 학문을 닦는 교실(강당)을 향해 오르내리는 고개라고 해서 강당재로 부르고 있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된 화산서원비에 따르면 화산서원 1578년에 건립, 조선 전기의 대학자 이언적과 송인수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하지만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 지금은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이 비석만 남아, 이곳이 예전에 선비들이 글을 읽던 학문의 전당임을 전해주고 있다.
이 겨울, 용머리고개를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1번 국도를 버리고 곁길로 돌아가길 권하고 싶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빙고리’로 부르는 바, 조선시대에는 빙고(氷庫), 즉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가산 자락에 예수병원과 기숙사가 들어서면서 마침내 빙고는 자리를 빼앗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빙고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의 흐름을 따라 반원을 그리고 올라가면 엠마오사랑병원으로 오르는 길과 강당재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가파르지도, 길지도 않지만 강당재 정상에 올라서면 벌써 머리는 맑아지고 눈은 시원해진 것을 만끽하게 된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거기 매달려 있을 샛노란 탱자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강당재.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강당재 도로 확장이 이루어지면 그동안 인근 주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위험도 크게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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