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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주의 연못

호남 제일의 미곡산지지만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곳곳에 제언(연못)을 만들어 용수를 가둬두었는데, 과거 전주부에는 크고 작은 제언이 56개소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전주에는 인봉지, 덕진지를 비롯 4~5개의 제언이 남아 있다.

 

ㅇ 인봉지(麟峯池) :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덕진지와 마찬가지로 전주의 허한 북동쪽을 막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고종대에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이 전주의 북쪽에 있는 밭의 한해를 구제하기 위해 이 연못을 수축하고 연못 가운데 1칸6각의 정자를 지어 일육정이라 하고 연못에 배를 띄워 축연하였다고 한다.

 

ㅇ 현무지(玄武池) : 옛 전주부성의 북동 모퉁이 옛 전라북도 2청사 부근으로 추정된다. 호남읍지에 의하면 조선 정조대에 판관 윤광수가 전주의 기맥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진북정의 북쪽 백보되는 곳에 둘래 338척의 연못을 파 북방수호신의 이름인 현무를 따서 현무지라 하였다고 한다.

 

ㅇ 무채제(舞彩提) : 기린봉 북서쪽에서 발원한 물이 옛 성황사 밑을 지나 인후동 옛 진안방면 도로의 남쪽에 위치한 넓이는 2,740평의 무채제에 도달한 뒤, 모래내(沙川)를 흘러 전주천으로 합류한다.

 

이외에 초제(草提 ; 둘레 607척), 영사제(靈사提 ; 둘레 1,000척), 백동제(栢棟提 ; 둘레 1,000척) 등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