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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봉동의 규방 가사 <홍규권장가> 혹독한 시집살이 이겨낸 여인의 미덕

봉동의 규방 가사
<홍규권장가> 혹독한 시집살이 이겨낸 여인의 미덕



252행 504구 3단 구조 / 작자 미상인 규방가사

이 가사는 전북 완주 봉동에서 살아온 소두영 씨의 부인인 광산김씨가 소장해 오던 규방가사를 전북대의 김준영 교수가 수집한 것으로 자신이 1983년에 편찬한 <고전문학집성>에 소개한 가사작품이다. 그는 김씨 부인의 말에 따라 시집오기 전 익산 왕궁에서 외조부가 홍규권정가를 필사해주었다고 그 내력을 밝히고 있지만 작자는 미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김익주의 손녀라는 구체적 진술과 배행(陪行) 온 오라비조차 돌아가자 할 정도로 어려운 시집살이 등이 ‘괴똥어미전’과 너무도 혹사한 규방가사로 ‘복선화음가(福善禍淫歌)’와도 상통된 부분이 많은 부녀가사이다. 복선화음가는 조선조 말 김한림의 종손 부인이 지은 규방가사로 이 홍규권장가와도 유사한 작품이다.

규방(閨房)가사는 내방(內房)가사, 부녀가사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자기 친정의 문벌이나 혼전생활을 말하고 출가한 시가의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자신의 처신, 치산(治産), 태교, 교육 등을 훈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작 유전되어 온 여류작품이다. 주로 부부생활과 시부모 모시기(事舅姑), 제사보시기(奉祭祀), 손님접대(接賓客), 태교, 육아, 교육, 치산(治山), 행동거지(行身), 항심(恒心) 등을 중요덕목으로 삼고 있어 현대여성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온고지신의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사들은 주로 여성을 가르치기 위한 계녀(誡女)형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과부가 되어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한탄한 상사형(相思型), 화전놀이 같은 야유형(野遊型), 남편을 따라 바깥세상을 유람하는 기행형 등으로 대별된다. 본디 규방가사는 국문학계에선 영남지방 양반가에서 시작되고 분포된 문학장르로 알려져 왔지만, 호남에서도 창작, 유전되고 있는 작품들이 근년에 발굴됨에 따라 그러한 주장만을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김준영 교수의 홍규권장가를 비롯해 필자가 졸저 ‘옛시 옛노래의 이해(2008)’에 소개한 고창 지역의 상사별곡(相思別曲), 동명이작(同名異作)의 치산가(治産歌) 1, 2가 그것이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말씀 들어 보오

불행하다 이 내 몸이 여자가 되어나서

김익주의 손녀 되어 반벌(班閥)도 좋거니와

금옥(金玉)같이 귀히 길러 오륙 세 자란 후에

여공(女工)을 배워내니 재주도 비범하다

월하(月下)에 수(繡)놓기는 항아(姮娥)의 수법(手法)이오

월지예의 깁 짜기는 직녀(織女)의 솜씨로다

(중략)

백화(百花)방초(芳草) 화원상(花園上)에 춘경(春景)도 구경하고

청풍명월 옥규(玉閨)중에 달빛도 구경하고

신신(新新)별미 다담상(茶啖床)도 입맛 없어 못 다 먹고

원앙금침 홍규 중에 책자도 구경하고

세시(歲時)복랍(伏臘) 좋은 때에 쌍륙(雙六)도 던져보고

설앙 옥비 시비(侍婢)들과 투호(投壺)도 던져보고

즐거이 지내더니 십 오세라 연광(年光)차니

고르고 다시 골라 강호(江湖)에 출가하니

가산(家産)이 영체(零替)하여 수간두옥(數間斗屋) 청강상에

사벽(四壁)이 공허하니 우린들 있을 손가

홍규권장가는 모두 252행 504구의 장형 규방가사이다. 서사와 본사 결사의 3단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서사엔 여자로 태어난 한 많은 자신의 삶의 사연을 들어 보고 후세에 경계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방년 15세가 될 때까지 반벌(班閥) 좋은 김익주의 손녀로 태어나서 금옥같이 귀하게 자라나서 오륙 세에 수놓기와 비단 짜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0세에 열녀전과 효경편(孝經編)을 익히니 행동거지와 처신범절을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는 아름다운 규수, 즉 어엿한 아름다운 아가씨인 홍규(紅閨)로 성장함을 발단으로 하였다.

비단 옷과 좋은 음식이 많으니 굶주림을 어찌 알며, 온갖 꽃들이 가득한 화원에서 봄날을 마음껏 즐기고, 청풍명월 아름다운 규방에서 달빛을 맞으며 그림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규방여인의 모습이 더욱 선연하다. 새롭고 맛있는 다담상(茶啖床)도 맛보고 원앙 비단금침 규수 방에서 서책도 읽어가며 섣달 제야엔 쌍륙(雙六)도 던지며 즐긴다. 설앙과 옥비같은 계집종들과 투호(投壺)도 던져가며 즐거이 보내다보니 어언 15세 성년이 되어 출가할 때가 당도했다는 것이다.

친정의 부모들이 고르고 또 골라서 출가하여 반벌좋은 강절강의 손부가 됐지만 시가는 한 두간 밖에 안 되는 가난하고 초라한 집이었다. 배행(陪行) 온 오라비조차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가자고 했으나, 누이동생은 마땅히 남편을 좇아야 한다는 여자의 운명적인 삼종지의(三從之義)를 말하며 그건 오라비의 실언(失言)이라 강변(强辯)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미덕이 이 작품 내면에 흘러내린다.

△전일환 교수 ‘한국문학의 원천, 전북문학의 미학’기획칼럼을 새해부터 매주 금요일 ‘책과 세상’면으로 옮겨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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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기고 승인 2014.01.03 23:0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