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득은 조선 영조 때 명창으로서 나이와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동편제 창시자로 사람, 새, 짐승 3가지 소리를 터득해 삼득(三得)이라 했으며, 완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완주문화재단이 권삼득을 비롯, 작고 예술인 14명에 대한 충실한 기록을 담아낸 ‘완주예인 기억과 기록 사이(비매품)’를 펴냈다. ‘완주예술사 발굴 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2년에 걸쳐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시기를 아우르며 국악. 공예. 미술. 문학 등 4개 분야에 걸쳐 활동한 완주 문화예술인이 14명의 집필진의 기억과 기록 데이터를 토대로 써내려간 장장 6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기록된 인물로 완주의 양반 광대 권삼득(1771-1841)과 서예가 이삼만(1770-1847), 정가 명인 임산본(1932-2018), 거문고 명인 강동일(1928-2001), 고수 주봉신(1934-2017)이 소개됐다. 또, 한지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류행영(1932-2013), 소목장 조석진(1953-2013), 권영술(1920-1997) 화백과 황소연(1937-2013)화백, 석전 박한영(1870-1948), 이정환(1930-1984) 소설가, 유진오(1922-1950?) 시인, 이기반(1931-2015) 시인, 조두현(1925-1989)시인 등이 실렸다.
권삼득은 양반 출신의 전설적인 판소리꾼이다. 소리꾼들을 쫓아다니며 창을 배우다 가문에서 쫓겨났지만, 19세기 전반인 순조 때에는 8대 명창에 올랐다. 본명은 권정. 사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의 세 소리를 얻었다고 해서 삼득(三得)이라 불렸다. 1771년 (영조47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태어났다. 12세 때부터 하은담 등으로부터 소리공부를 시작, 전주 근교 산과 계곡 등을 떠돌며 소리를 익혀 득음을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전주 권삼득로는 전주가 ‘판소리의 고장’임을 일깨워 준다. 조선시대 전주의 명창 권삼득을 기념해 새 주소사업을 계기로 명명됐다. 권삼득이 길 이름으로 부각된 것도 역사성과 전통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전주는 민속음악경연대회인 대사습놀이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이윽고 도립국악원 앞에는 권삼득을 기념하는 ‘권삼득 기적비’가 발걸음을 잡는다. 권삼득 기적비는 판소리 때 쓰는 북 모양을 돌로 조각해 만들었다. 글은 석전 황욱이 썼다. 돌 북의 한쪽 면에는 ‘國唱(국창) 權三得 紀績碑(권삼득 기적비)’란 글자가, 다른 면에는 권삼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기적비 앞에는 별도로 대리석 기단에 까만 오석을 세워 비를 세우게 된 연유를 적고 있다.
기록자는 국악에 유영대 고려대 교수,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박정경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이사장, 공예에 김준근 충북대 교수, 김은정 전북일보 선임기자, 미술에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김미선 전북대 교수, 최병길 원광대 교수, 문학에 종걸 스님, 최명표 문학평론가, 이동희 시인, 황송문 시인, 안도아동문학가 등이 참여했다.
김남곤 시인, 문정일 우석대 교수, 소병진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철량 전북대 명예교수, 이상덕 완주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완주예인 기억과 기록 사이’ 자문을 맡았다. 박성일 이사장은 “완주를 연고로 활약한 작고 예술인 14인의 예술세계가 오롯이 담겨 의미를 갖는다”면서 “이 책을 통해 완주 군민의 문화적 자긍심이 높아지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이종근기자
'BOOK새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대 궁궐 현판 소개하는 '조선왕실의 현판Ⅰ'발간 (0) | 2021.03.04 |
---|---|
임실 지사중 전교생, 모두 작가가 되다 (0) | 2021.02.08 |
박래현, 채용신, 진환, 이건용,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 영문본에 소개 (0) | 2021.01.27 |
전주공예품전시관, 소식지 ‘손으로 공예로’계간으로 발간 (0) | 2021.01.26 |
전주전통문화연수원, ‘일제강점기 전주의 아픈 기억을 더듬다’ 발간 (0) | 202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