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국 프리랜서 PD가 지난 7월, 2년 7개월 동안의 전라감영 복원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전라감영’을 제작 방송했다. 바로 그가 이 달에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라감영 그 역사와 생생한 복원의 기록 ‘전라감영 이야기(신아출판사)’를 펴냈다.지금으로부터 136년 전 1884년(고종 21) 전라감영을 방문했던 미국공사관의 해군무관 포크의 일기도 소개하고 당시 전라감영의 모습과 그가 겪었던 일이 소상하게 기록된 전라감영 이야기가 펼쳐진다. 새전북신문이 새로 모습을 드러낸 전라감영에서 그를 만났다.
△책을 펴낸 소감이 어떤가
소감을 말하기 전에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복원된 전라감영을 방문하신 분들이, 특히 학생들이 “볼 것 없네” 하고 가버리면 어쩌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복원된 전라감영은 40여 채의 건물 중 감사의 업무 영역에 있는 7동의 건물입니다. 이 7채의 건물만 보고 전라감영의 규모를 알기란 어렵지요. 또 언뜻 보면 전라감영 선화당은 큰 한옥에 불과합니다. 전라감영의 역사라든지 전라감영이 전라도의 문화에 대해 끼친 영향에 대해 알지 못 한다면 이 건물을 보고 감흥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겉모습만 보지 말고 전라감영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라감영이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전라도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야 감영복원의 참 뜻을 이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두 번째로는 감영복원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전라감영은 초창에서부터 세 번의 중건을 거쳤지만 기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복원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기록이나 사진이 많아야 고증하기 쉬운데 기록마저도 그리 많지 않으니 고증에 어려움을 겪었던 거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전통건축물 중 관아에 관한 데이터는 축적된 게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남아 있는 관아건축물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건축물마저 원형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망하고 나서 일제강점기가 되면 대부분의 관아건물이 학교나 행정기관으로 사용되지요. 그러면서 내부 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방 이후 관아 건물은 대부분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현대식 학교와 면사무소나 시군청사가 들어섰습니다. 남아있는 관아 건물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아건축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었지만 전라감영 건물은 원형을 살리기 위해 고증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고증이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라감영 선화당을 복원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옛 선화당 건물을 촬영한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없었다면 전라감영 선화당은 다른 지역의 선화당을 모방해서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면 복원이 아니라 재현에 불과했겠지요. 사진 한 장의 힘이 이처럼 대단합니다. 전라감영 복원 기록사진도 언젠가는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2년 7개월 동안 촬영한 사진 중에서 주요 부분을 모아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글이 좀 서툴지만 그래도 기록으로 남긴 건 잘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라감영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면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56개 군현을 다스렸던 곳입니다. 현재의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 제주도까지 전라도에 속했지요. 전라감영은 조선 500년 동안 전주에 있으면서 전라도의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멋’과 ‘맛’, ‘풍류’로 상징되는 전라도의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곳이 전라감영입니다.
△어떤 계기로 감영 복원 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는지
사실 복원공사현장을 촬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안전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장 입구에서부터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JTV에서 전라감영 복원 전 과정을 촬영해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달라는 제안이 온 겁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지요. 처음에는 1년이면 공사가 끝난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더 바, 2년 7개월이나 걸렸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동영상 촬영 작업이 주지만 사진을 함께 찍게 된 건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 전라감영을 프로그램으로 소개한 적 있는지
물론입니다. 방송국 PD로 '전북의 발견'을 연출할 때 ‘회화나무만 홀로 남았네, 전라감영’이란 부제로 방송을 했지요. 그때가 2008년 7월 23일입니다. 2005년 전라북도 도청이 전주 서부신시가지로 옮겨가고 회화나무만 홀로 서있는 이곳이 조선 오백년 동안 전라도를 통치했던 전라감영 터라는 사실과 전라감영이 빨리 복원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프로그램에 담았습니다.
△'전라감영 이야기' 책의 구성은
이 책은 다섯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회화나무 홀로 서있던 옛 전라북도 도청 부지가 역사적으로 대단한 땅이라는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이 터를 발굴해 보니 전라감영만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려시대의 관청유구를 비롯해 후백제의 산성인 동고산성에서 발굴된 ‘관(官)’ 자가 새겨진 와편과 흡사한 기와조각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이곳에 중요한 관청이 자리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장은 지금으로부터 136년 전인 1884년(고종 21) 에 전라감영을 방문했던 미국공사관의 해군무관 포크의 일기를 소개했습니다. 포크의 일기에는 당시 전라감영의 모습과 그가 겪었던 일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전라감영에서 촬영한 두 장의 사진도 실었는데 일기와 사진 모두 매우 흥미롭습니다.
3장과 4장은 전라감영의 역사와 감사들이 했던 일, ‘맛’과 ‘멋’, ‘풍류’로 상징되는 전라도의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5장은 전라감영 복원의 기록입니다. 제가 직접 촬영한 7천여 장의 복원공사 사진 중에서 백여 장을 엄선해 실었습니다.
△전라감영 복원 공사를 보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관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복원에 어려움이 상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고증을 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한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공식을 하고 나서 추가 발굴을 결정해 5개월 이상 공사가 지체되었는데, 복원된 건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게 전화위복이 되지 않았나합니다. 이 기간 동안 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고증에 힘썼기 때문에 훌륭한 건물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라감영이 향후 어떻게 운영되었으면 하는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전라감영이 더해져 전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옥마을과 전라감영이라는 것이 잘못하면 과거에 매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만 서있는 죽은 공간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공간이 되어야합니다. 전라감영에서 꽃 피웠던 찬란했던 전라도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전라감영이 자리매김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감영의 회화나무에 문화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상국 프로필
1957년 고창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1983년 EBS PD로 입사해 방송과 인연을 맺었고, 1997년 JTV 개국 원년 멤버로 합류해 2015년 12월 정년퇴임했다.JTV에서 편성팀장 편성제작국장 보도제작국장 홍보심의실장을 역임했다.
전북의 역사문화 프로그램 '전북의 발견'을 기획, 134편을 연출했고, 2008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다, 고창읍성“ 편으로 제10회 방송문화진흥회 지역프로그램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7월 다큐멘터리 '전라감영'2부작)을 연출했다. 2014년 독회를 만들어 최남선이 1925년 호남지방을 여행하면서 시대일보에 연재했던 기행문 '심춘순례'를 쉽게 풀어 출간했다. 2016년 최치원의 영정과 무성서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최치원을 추억하다' 그리고 최근에 전라감영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기록한 전라감영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서 PD로 활동하고 있다./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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