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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남원 과부와 청도원 징검다리

 

예로부터 과부(寡婦)는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는 여자를 말한다. '과(寡)'는 ‘홀로’라는 뜻으로, 과부는 ‘짝없는 지어미’를 뜻했다. '과부'는 과붓집 높임말로 과부댁(寡婦宅) 과수댁(寡守宅) 과댁(寡宅) 등으로도 불렀다. 또 홀어미라고도 부르고 남편을 미처 따라 죽지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망인(未亡人)으로 불렀다. 옛날에는 '상배여성'(喪配女性)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 가부장 제도에서는 여성들이 배우자를 잃었을때 죽은 배우자와  함께 산채로 순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성종 8년(1477년)  ‘과부재가(寡婦再嫁) 금지법’을 시행, 과부 결혼을 금지했으며, 1894년이 되어서야 이를 허용했다. 다음은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선비 정 모(鄭某)가 상처(喪妻) 즉 아내를 잃은 뒤, 남원에 부잣집 과부가 산다는 말을 듣고 배우자로 삼으려고 했다. 날을 가려 정혼하고, 정(鄭)이 먼저 군청에 이르러 예물을 갖추었다. 과부가 계집종을 보내어 그 행동거지를 보게 했다. 계집종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수염이 많은데다가 털모자까지 썼으니 늙은 병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과부가 실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나이 젊은 장부(丈夫)를 얻어 늘그막을 즐기고자 했는데, 이런 늙은이를 어디다 쓰리오" 라고 했다. 군청 관리들은 촛불을 켜들고 둘러싸서 과붓집으로 갔다. 하지만 과부는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정선비는 들어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되돌아갔다'
남원 부잣집 과부는 정선비가 재혼 대상으로 적합한지 살펴보고 나이가 너무 많다면서 반대를 했다. 더욱이 연하의 남편을 얻어 늘그막을 즐기려한다는 소망은 재혼 여부와 대상을 스스로 선택해 행복을 추구했음을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청상과부(靑孀寡婦)'란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자를 말하고 있으며 줄여서 청상(靑孀), 청상과수, 청춘과부라 부르기도 했다. '청상과부와 홀어미다리'는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청도원마을에서 과부인 어머니가 쉽게 홀아비를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드렸다는 효행담이자 다리유래담이다. 이는 어머니에게는 효성,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된다는 효불효설화(孝不孝說話)이기도 하다.
'옛날 청도원마을에 청상과부가 살고 있었다. 일찍 남편과 시부모를 잃고 혼자 몸으로 남매를 키운 후 모두 출가시켰다. 과부댁은 억척스럽기로 소문난 여장부였다. 그러나 나이가 마흔이 넘자 차츰 사는 것이 허무하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과수댁은 마을 앞의 개울을 건너 밭에 씨앗을 뿌리러 가다가 어려서 한 동네에서 자랐던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그 동안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사내는 일찍이 상처해 홀아비가 되었고 여자도 홀어미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남몰래 밤이면 서로 만나 정을 나눴다. 홀어미는 개울 건너 언덕바지에 혼자 살고 있는 홀아비 집에 가려고 밤마다 개울을 건너갔다. 매일 밤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가 새벽녘에야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어느 날 밤에 어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아들은 어머니와 이웃 마을의 홀아비가 서로 정분이 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사실을 일일이 따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착한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이 사실을 덮어 두었다.
그런데 밤마다 개울을 건너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물에 흠씬 젖은 옷을 말리느라 고생하는 어머니가 불쌍했다. 아들은 아예 어머니가 개울을 편안하게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효성이 지극했던 그 아들은 자기 아내와 함께 인근에서 널따란 돌을 캐어다가 어머니가 건너다니는 개울가에 징검다리를 놓아드렸다. 이후 동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위해서 이렇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는 아들을 칭찬하고 다리 이름을 ‘홀어미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어머니가 행복을 찾게 했다는 효행담이다. 도덕적·윤리적 차원에서 어머니가 정숙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일찍이 혼자 몸으로 자신들을 키워낸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현대 사회에서도 자식들이 부모의 노후를 위하여 홀로 된 어머니나 아버지의 재혼을 적극 서두르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귀신사 밑에 자리한 '홀어미다리'를 지나가면서 이 징검다리가 갖는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