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수류성당에서 분리된 광주·전남 가톨릭의 첫 선교지인 목포 산정동성당이 이달 중으로 완공된다.
광주·전남 가톨릭의 첫 선교지이자 국내 ‘레지오마리애’ 도입지인 전남 목포시 산정동 성당 일대에 세계적 규모로 추진 중인 ‘가톨릭 성지화사업’이 착공 10년만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로써 목포가 가톨릭(천주교) 성지순례 메카로 떠오를 전망이다.
성당이 완공되면 이 곳에는 데레사 성녀와 부모의 일부 유해, 예수님이 처형 당시 짊어졌던 십자가 보목(토막)도 함께 안치될 예정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목포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3월 목포시 산정동 옛 성 골롬반병원 부지에 착공한 산정동 성지 조성사업이 6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목포시가 함께 추진하는 성지 조성 사업은 2만9972㎡ 부지에 사업비 343억원을 투입, 지하 1층~지상 4층 700석 규모의 산정동기념성당과 사제관, 교육관, 수녀원, 가톨릭역사박물관 등이 들어섰다.
기념성당에는 목포시내와 유달산 등을 조망할 수 있는 두 개의 전망대와 산정동성당 초기부터 사용했던 종들을 수리해 보관하는 종탑이 마련됐다.
또 예수님이 못 박혔던 당시의 ‘십자가 보목’, 데레사 성녀와 부모 등 3명의 일부 유해가 모셔진다.
기념성당이 들어선 이 곳은 김제 수류성당에서 분리된 광주·전남 가톨릭의 첫 선교지이자 1897년 5월 광주교구의 첫 본당이 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목포 가톨릭 성지화사업은 지난 2006년부터 준비에 들어가 2010년 착공했으나 재원 마련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2015년 현재와 같은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고, 2016년 공사에 들어가 2017년 9월에는 레지오마리애 활동 자료 등을 갖춘 역사박물관과 기념관을 개관했다.
천주교 평신도들로 구성된 단체인 레지오마리애 기념관은 개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찾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목포시도 성지화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진입도로 개설과 주차장 조성작업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목포 산정동 기념성당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성당에는 11만 여명이 찾았다"면서 "성지화 사업이 완공되면 가톨릭은 물론 전국 50만명의 레지오마리애 소속 신도들의 순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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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성당과 목포 산정동성당의 인연
목포 산정동 성당은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전남 목포시 산정2동 74 소재하고 있다.
1897년 5월 8일 김제 수류(水流) 성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됐으며, 전북 순창군 쌍치면 아천리(阿川里, 현 五龍村)에서 이듬해 7월 2일 목포로 이전했다. 주보는 대천사 성 미카엘.
전남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들은 1872년의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으로 새로운 순교자를 탄생시키면서도 꾸준히 복음 전파에 노력했으며, 한편으로는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로 인해 전남지역의 교우촌이 점차 증가하게 됐다. 그 결과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 · 순창 · 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됐다.
1896년까지도 전라도 지역은 전주 본당 · 되재[升峙] 본당 · 수류 본당 등 북부 지역에만 본당 소재지가 있었으며, 남부 지역의 공소들은 라크루(Lacrouts, 具馬瑟) 신부가 사목하는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바로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전라도 지역을 순방하면서 나바위[羅岩] 본당과 목포 본당의 신설을 결정했다. 목포 본당 설립을 결정하게 된 것은 남부 지역의 공소들이 수류 본당과 너무 멀어 사목에 어려움이 있었던데다가 1898년에 개항 예정인 목포 지역의 발전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1897년 5월 8일 데예(Deshayes, 曹有道) 신부가 목포 본당 초대 주임으로,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는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으로 각각 임명되었다.
당시 목포 지역에는 100호도 안되는 마을이 있었을 뿐 신자는 한 명도 없었으므로 데예 신부는 우선 아천리 공소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목포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로 하고, 라크루 신부로부터 순창 · 정읍 · 장성 지역의 공소들을 인수받아 공소 순방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봄 판공을 끝낼 때까지 데예 신부가 순방한 공소는 순창 · 정읍 · 장성 · 담양 · 함평 · 태인 · 무안 등지의 26개소였다.
한편 1897년 9월부터 아천리 신자들을 목포로 보내 쌍교(雙橋, 현 남교동과 북교동 사이)의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기 시작한 데예 신부는, 이듬해 목포항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목(현 목포 산정동)에 있는 산을 매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다음 그 안에 있는 가옥을 수리, 1898년 7월 2일 목포로 거처를 옮겼다./이종근기자, 광주대교구 홈페이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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