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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무장현 최봉 딸 곱덕을 노비로 팔다



 전라도 무장현에서 어머니를 여윈 뒤에 80노부를 모시고 살던 최곳대는 1784년 아버지가 병들고 연이은 흉년으로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자, 자신의 딸 곱덕(古邑德)을 오생원에게 노비로 팔기로 작정했다. 몇 년 동안을 조금씩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가져다 쓴 곡식을 갚을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13살 된 딸을 팔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전북대 박물관 소장 문서다.


‘건륭 49년 갑진(甲辰) 윤3월 11일 오생원 댁 사내종 노랑금(老郞金)에게 주는 명문(明文)

위의 명문의 일인즉 제가 이 큰 흉년을 당하여 비록 기민 중에 편입되어 있으나 수많은 식구가 오랫동안 부황이 들어 살아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 굶주리다 함께 죽는 것이 어찌 한 여식을 싼 값으로 팔아서 이로써 생을 도모하는 것만 같겠습니까? 이에 국가의 사목 및 관청의 입지에 따라서 저의 열세 살된 임진년에 태어난 셋째 딸 곱덕을 오른쪽 사람의 집에 뒤에 태어날 아이와 함께 영영 방매하니 나중에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법으로 바로잡을 일입니다.


곱덕(古邑德) 아버지 최봉(崔峯) [서명]

증인(證人) 동성(同姓) 육촌 최재득(崔再得) [서명]

증보(證保) 오재삼(吳再三) [서명]

필집(筆執) 허득명(許得明) [서명]’


이 문서는 곱덕의 아버지인 최봉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바, 그는 큰 흉년을 당하여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딸을 팔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딸을 판 최봉은 부모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을 노비로 팔고 싶어 하겠는가? 아마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서가 작성된 것은 1784년 윤달 3월이므로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이전 해를 말하는 것인데 실제로 1783년은 농사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뭄과 장마로 인해 농작물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는데 실제로 다음 달인 9월 30일 기사에 ‘경기(京畿)·호서(湖西)·호남(湖南)·영남(嶺南)·관동(關東)·관북(關北)에 흉년이 들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시 상황이 이러하다면 살기 위해서 딸을 판다는 최봉의 말이 전혀 거짓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3월은 춘궁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를 수 확하기 전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노비가 되더라 도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위의 곱덕의 경우처럼 양민이 자기 자신 혹은 가족을 노비로 파는 문서를 자매문기(自賣文記)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서 곱덕이 스스로 팔리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장인 아버지의 결정을 따라 13세 어린 나이에 부모의 곁을 떠나 노비로 살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왕의 명령서에서부터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부모가 딸을 노비로 판 문서다.

그런데 원래 양인이었던 사람을 노비로 삼을 경우 에는 관청의 허가가 필요했다. 문서에서 ‘국가의 사목 및 관청의 입지에 따라서’ 매매가 이루어졌다고 언 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입지(立旨)’는 청원서의 요청에 대해 관청에서 승낙하거나 허가하는 답변을 적 어준 것을 말한다. 이 매매가 이루어지기 전에 관청에 이러이러한 매매를 허락해달라는 요청서를 올렸고 그 승낙에 의거하여 이 거래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또 소장 문서 가운데는 1913년 2월 13일에 쓴 이혼계약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계약서(契約書)

다음과 같이 약속을 하는 일은 본인(本人)의 처(妻)가 맞지 않는 까닭으로 본리(本里) 최응대(崔應大)에게 혼인을 옮기는바 혼인 비용(費用) 이십 원(円)을 적정(的定)해서 영영 허가하여 주되 나중에 만약 다른 논의가 있으면 이 계약으로 근거하여 검토할 일이다.

대정(大正) 2년 음력 2월 13일 계약인(契約人)'


바쁘고 팍팍한 삶이지만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 동안 어버이의 높은 은혜와 어른과 노인에 대한 공경심을 생각하고 아내, 자식, 형제자매 등 가족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모두의 마음에 따뜻하고 포근한 5월 가정의 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