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스토리

한벽당 편액,이병희가 썼다



전주 '한벽당' 행서 편액은 작가 미상이 아닌, 이병희가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 한벽당(전북 유형문화재 15호)엔 모두 3개의 '한벽당' 편액이 남아 있다.
전주천 가의 '한벽당' 편액은 강암 송성용의 옳고 곧은 성품이 잘 나타나는 정갈한 예서체다.
누각 안쪽 '한벽당' 편액은 김예산이 썼다. 친필로 9세에 썼다는 ‘의섬김예산구세근서(義城金禮山九歲謹書)’의 낙관이 있기 때문이다.
한벽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마주보는 ‘한벽당’ 편액은 낙관이 보이지 않아 서자(書者) 미상으로 알려졌다. 행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조선시대를 풍미한 조맹부체와 흡사한 걸작이다.
한벽당 행서 편액은 작가 미상이 아닌, 이병희가 쓴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역사문화학회외 전북도가 펴낸 '전라북도금석문대계 6(증보판)'은 이를 쓴 사람이 농천(農泉) 이병희(李丙熙)라고 했다.
서자를 알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거나 눈으로 확인해야 했지만 어려워 탁본을 했다. 그래서 농천(農泉) 이병희(李氏丙熙之印)으로 판독됐다.
그는 근대 명필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예가로,  화순 임대정 원림 수륜대와 강릉 선교장 활래정 주련을 휘호한 바 있다.
전주 삼천동 대명의사 남이창 묘비의  서자는 미상이지만 찬자(撰者, 지은이)는 유학자 이도형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그는 병자호란때 전주로 내려와 건지산 아래에 손수 다섯 나무를 심어 집 이름을 오송재(五松齋)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오송(五松)으로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명칭이 남아있다.
'전라북도금석문대계 6(증보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권의 책을 펴냈지만 모두 안내할 수 없었던 바,  전주시, 완주군 등 14개 시군의 신도비,암각서 등 86개를 소개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