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江南)은 중국 양쯔강의 남쪽지역을 일컫는다. 상하이와 저장성을 비롯해 장쑤성과 안휘성 남부, 그리고 장시성 동북부를 가리킨다. 우리 속담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거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에 등장하는 그 ‘강남’이다. 삼월 삼짇날인 26일, 강남간 제비가 돌아올까. 혹시 코로나19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부터 남원에서는 흥부전과 같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형인 박첨지는 부자임에도 인색햇고, 동생 춘보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다 부자가 되어 이웃에 많은 선덕을 베풀었다는 내용이다. ‘흥부가’의 ‘제비노정기’와 ‘박타령’ 등에 나오는 지명들을 근거로 1992년 경희대 민속학연구소의 고증을 통해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와 놀부의 출생지로(박첨지 설화),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곳으로(춘보 설화) 알려졌다. 지금도 두 마을에서는 삼월 삼짇날 박첨지의 제사와 정월대보름날 춘보망제를 지내고 있다.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흥부전의 발상지로 고증되면서 1993년부터 흥부제를 열고 있다. 흥부의 착한 마음씨와 형제애를 본받기 위해 매년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는 날인 음력 9월 9일에 열리며, 주요 소재를 근거로 길놀이, 화초장 메고 다리기, 흥부 박타기 등 다채롭운 축제 한마당이 펼쳐진다.
흥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월 동풍에 남의 논밭 가래질하기, 삼사월에 부침질, 이 집 저 집 이엉 엮기, 날 궂으면 멍석 맺기, 나무장수 따라 나무 배기, 각 읍 주인 삭길 가기, 한술 밥에 말집 싣기, 오 푼 받고 마철 박기, 두 푼 받고 똥재 치기, 한 푼 받고 비 매기, 식전에 마당 쓸기, 진주 감영 돈짐 지기, 대구 감영 짐 지기 등 온갖 가지 삯일에 발 벗고 나선다. 놀고먹는 놀부와 가난한 흥부라는 형제 구도로 봉건 사회의 착취와 피착취를 잘 드러내고 있다. 흥부 아내는 아내대로 생계를 위해 기를 쓰고 맞벌이를 했다. 남의 집 방아 찧기, 술집 가서 술 거르기, 초상난 집 제복 짓기, 잔칫집 그릇 닦기, 굿하는 집 떡 만들기, 시궁발치 오줌 치기, 날 풀리면 나물 뜯기, 보리밭에 보리 놓기 등 온갖 품을 팔았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벌이가 시원찮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 이웃들도 몹시 가여워 하지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9월 9일 강남으로 떠난 제비가 삼월 삼짇날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는지 모른다.
강남으로 간 제비를 기다리는 봄축제들이 잇따라 취소되고 있어 아쉽다. 진안고원 운장고로쇠축제, 남원 지리산산수유꽃축제, 완주 삼례딸기축제, 부안 개암동벚꽃축제, 정읍 벚꽃축제, 김제 지평선광활햇감자축제가 취소됐다. 군산시는 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영화의거리 등에서 열린다. 90회를 맞는 남원 춘향제가 코로나19 여파로 잠정 연기됐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미뤄진 이후 사상 두 번째 축제 연기다. 익산 서동축제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리기로 했으나 하반기로 연기했다.
벚꽃으로 유명한 자치단체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축제를 취소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축제는 취소했지만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면 몰려들 관광객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행사는 행사대로 취소하고 방역, 교통, 노점상 단속 등 행정비용은 행정비용대로 써야 할 상황에 놓였다.
‘제비 몰러 나간다’는 광고 CF가 입소문을 통해 유행처럼 번지던 그 때가 생각난다. 흥부전의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의 사연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을 지어놓고 제비가 오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자 놀부가 직접 제비를 몰러 나간다는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제비노정기(路程記)’라고 하며, 설렁제(덜렁제)의 대가 권삼득명창이 자주 불렀다고 한다.
26일은 제비가 날아들면 들로 나와 꽃놀이를 즐기며 화전을 부쳐 먹었다는 삼월 삼짇날이다. 삼짇날은 양수(陽數) 중복일 풍속의 하나다. 날짜에 양기가 겹치는 날은 왕성한 양(陽)의 기운이 넘치는 날이기에 예로부터 커다란 명절로 일컬어 왔다. 3월 3일,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절 등이 바로 그것이다. 3이라는 숫자는 순양(純陽)의 '1'과 순음(純陰)의 '2'가 결합해 얻어진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길수로 여겨졌기에, 3월 3일은 만물이 소생하는 왕성한 만춘의 봄기운으로 인해 야외에서 얻어지는 풍속이 많은 날이다. 이날은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 여인들이 제비가 날아들면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과 들로 나와 꽃놀이를 즐기며 화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 이때 사람들은 나비를 보고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여러 가지 나비 가운데에서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고, 흰 나비를 먼저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한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제비 몰러 나간다 ~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 ~’라며 호탕하게 부르짖던 박동진명창은 고인이 됐고, 이제 제비는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내가 나이를 먹어 제비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이 제비가 찾지 못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 종적을 감춘 것인가. 사라진 게 이뿐인가. 또, 그 많던 들판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봄의 들녘에서 나는 열매가 싱아였다. 두보는 시 ‘가석(可惜)’에서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은 더디기를 바라는데(花飛有底急/老去願春遲)”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봄은 누구나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가보다.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래 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라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노래주점에서 마이크를 들고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불렀던 노래가 바로 윤승희의 ‘제비처럼’이다. 봉준호감독이 그리워하는 ‘추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노래를 송강호에게 부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 보물 박씨를 물어다 줄 제비를 찾아 우리 희망 몰러 밖으로 나가 볼까. 하지만 코로나19 공포로 인해 외출이 꺼림직하다. 그래도 여전히 대박 씨앗을 가져다주는 ‘제비’가 오길 학수고대한다./이종근
'한국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산 솔씨 서말 (0) | 2020.03.31 |
---|---|
한벽당 편액,이병희가 썼다 (0) | 2020.03.29 |
고창 갯벌, 유네스코 등재와 람사르 습지도시 국제 인증을 위해 잰걸음 (0) | 2020.03.17 |
탄현봉수, 전북기념물 제139호 지정 (0) | 2020.03.17 |
태평동과 전주역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