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팥쥐’이야기는 계모와 팥쥐의 구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콩쥐가 신이한 존재의 도움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변신을 거듭한 후 결국 살아나 계모와 팥쥐를 처벌한다는 내용의 설화다.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구전 설화 ‘콩쥐팥쥐’의 형성 시기를 추정하기는 힘들다.
지방도 716호는 전주에서 완주를 거쳐 김제를 가는 도로다. 이 도로가 한국판 신데렐라 콩쥐팥쥐 원조열풍을 몰고 왔다. 전주시와 완주군, 김제시가 2012년 새 주소를 부여하면서 일제히 도로명을 ‘콩쥐팥쥐로’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 발단은 1919년 출간된 박건회의 소설 ‘대서두서’ 등에 콩쥐팥쥐의 고향이 ‘전주 서문 밖 30리’로 묘사돼 있는 데서 출발했다. 김제시는 콩쥐팥쥐 배경지로 716호 도로변인 김제 용지면을 꼽았다. 완주군 역시 716호 도로변인 관할지역 이서면이 콩쥐팥쥐 고향이라고 추정했다. 전주시는 716호 도로 출발지점을 콩쥐팥쥐로로 지정했다.
콩쥐팥쥐전은 전주권을 배경으로 한 조선중엽 가정소설이라고 하지만 남원에도 엇비슷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른 바, ‘콩조시(콩쥐) 팥조시(팥쥐)’ 이야기는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계모한테 핍박받던 콩조시가 나랏님과 혼인해 잘 살았다는 응보담(應報譚)이다.
‘옛날에 콩조시와 팥조시가 살았다. 팥조시는 데리고 들어온 딸이었고, 콩조시는 전처의 딸이었다. 콩조시는 예쁘게 생겼고 팥조시는 얼굴이 얽고 못생겼다. 어느 날 마을에 공진이굿이 들어오자 의붓어미는 팥조시만 데리고 구경하러 갔다. 콩조시도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의붓어미는 콩조시에게 삼 한 꽈리를 내놓으며 그 삼을 다 삼고 나서 밑 없는 가마솥에 물을 채워 놓고 조 한 가마를 다 찧어 놓은 뒤에 오라고 했다.(...)콩조시가 울고 있는데 하늘에서 검은소가 내려와 솥 밑에 엎드렸다. 콩조시가 다시 물을 길어다 붓자 가마솥에 물이 가득 찼다. 이제 삼을 삼으려고 하니까 검은소가, “큰아가, 내 똥구멍에 광주리를 갖다 대라.” 하더니 삼을 다 먹어 버렸다. (...)검은 소는 죽은 콩조시 어미의 넋이었다. 콩조시가 빠진 연못에서는 함박꽃이 피었는데, 나랏님이 세수를 하러 가면 함박꽃이 피어서 나랏님을 보고 웃고, 나랏님이 들어가면 싹 오므리고 하였다. 나랏님은 이 꽃을 꺾어 농 위에 얹어 놓았다. 그런데 그 꽃 속에 콩조시가 있었다. 콩조시가 인도환생한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나랏님은 팥조시에게 벌을 내리고 콩조시와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설화는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그 유형이 유사하다. ‘잃어버린 신발’ 모티브도 동서양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어찌됐든 신발을 잃어버린 것은 사또(또는 원님, 왕자, 나랏님 등)를 다시 만나 혼인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콩쥐팥쥐 등 전북의 잊혀져 가는 전설을 되찾아 관광문화상품으로 활용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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