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감각은 아날로그적으로 작동하고, 우리의 생각은 디지털적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은 항상 아날로그를 향해야 합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를 '디지로그'라고 말하지만 저는 '휴먼로그'라고 부릅니다.
오늘처럼 비가오는 날이면 향기 나는 사람의 냄새를 기억합니다. 그 냄새는 웃음이 묻어난다는 소리의 파동, 그것은 흐린 날을 한 방에 지배해버릴 수 있는 은은한 커피의 향, 그것은 비 뿌리는 구름 사이로 뻗치는 햇살의 구김살 없는 빛.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오갔던 소쿠리는 내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종종 향기 나는 하루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요즘엔 사전적 의미보단 디지털의 반대라는 뜻으로 아날로그란 말을 더 많이 쓰지만 사실 구분은 참 모호합니다. 기계는 사람을 변모시킵니다. 인간의 뜨거운 숨결, 땀 냄새가 주는 살아 있는 감동과 생명감을 기계가 대신 짙은 땀냄새의 기억을 느낄 수 있는지, 먼 행복의 믿음을 기억할 수 있는지… 하루 종일 에어컨 밑에 있던, 뙤약볕 아래 막일 하던 고단한 하루가 매일 연속입니다. 이럴 때 땀은 땀대로 흘리더라도 '사람 사는 향기'가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화, 문자, 쇼핑, SNS, 사진촬영 및 편집, 게임, 시계, 독서, 음악감상 등 잠깐 생각 했는데 정말 많은 역할을 스마트폰 하나가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가방 하나 가득 찬 기기로도 모자랐던 일을 스마트폰 하나가 다해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안에 들어오고 아니 인터넷이나 컴퓨터 등의 기술이 발전하고 난 뒤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들도 사실입니다.
우린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매우 편리하며 효율적이지만 디지털이 모든 면에서 꼭 최고라곤 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디지털에 익숙해질수록 반대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효율적이라는 한 마디로 치부하기엔 아날로그만의 매력이 못내 아깝습니다.
아날로그의 미학은 기다림입니다. 그 매력을 꼽을 때 가장 많이 드는 예가 진공관 앰프입니다. 차가운 디지털 앰프에서 이를 느끼긴 쉽지 않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리매김했지만 반대로 새삼 필름 카메라를 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은 바로 지울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이기에 누릴 수 있는 굉장한 장점인 반면 필름 카메라를 쓰면 셔터를 누를 때 좀 더 신중해집니다. 인화하기 전 결과물을 기대하며 설레는 맛도 남다릅니다.
어른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 그때가 좋았다.’라는 말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아날로그의 감성이 좋았다 라고 말입니다. 스마트폰의 주소록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고 몇 권의 명함 첩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은 외롭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립습니다.
요즘의 추세는 생김새와 손맛을 흉내냄으로써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디지털시대, 가끔은 아날로그가 그립습니다. 디지털은 항상 아날로그를 향해야 합니다. 그게 오늘 밤 당신과 제가 잠자기 전, 스스로 나눌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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