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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승암산과 치명자산

 전주 시내를 벗어나 남원 방향으로 접어들면 왼쪽에 가파르게 솟은 산이 하나 있다. 그 산을 ‘중바위산’, 혹은 ‘승암산(僧岩山)’으로 부른다. 근래 들어 다시 이름이 하나 생겼는데, ‘치명자산(致命者山)’ 이다.

 바로 이곳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 천주교순교자묘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조 원년(1801)의 천주교 탄압(신유박해) 때, 호남의 천주교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아내 신희, 동정부부로 유명한 장남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차남 유문철(요한), 제수 이육희 그리고 조카 유주성(마태오)이 순교했다. 일곱 순교자들이 처형되자, 교우들이 유항검의 고향 초남리와 인접한 제남리에 이들을 임시로 묻어두었다가, 1914년 4월 19일에 전주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이곳은 유항검이 처형된 전동성당, 유항검의 큰 며느리인 동정녀 이순이(루갈다)가 순교한 숲정이 성당과 함께 우리 나라의 대표적 천주교 성지이다.

 해발 300여 미터에 이르는 ‘승암산’은 원래는 ‘중바위산’으로 불리웠으나, 중이 고깔을 쓴 모양이어서 얻은 이름으로 당그래(당그래는 고무래의 전라도 방언)봉 또는 일자봉 이라 하기도 한다. 한벽당(전북 유형문화재 제15호)은 승암산 기슭인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깍아 세운 누각으로, 한벽청연(寒碧晴烟)이라고 해서 완산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남천교 원래 다섯 개의 창을 가진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각 창 머리에 용머리를 새겨 놓았는데 승암산이 화기(火氣)을 머금은 형세여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경기전의 하마비(전북 유형문화재 제222호)는 바로 앞에 승암산이 있기 때문에 배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주는 주산이 성황산(승암산)이고 좌청룡과 우백호의 지맥이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승암산’이 고유 이름임에도 불구, 사라져 온데간데 없고 요즘엔 ‘치명자산’이라는 말만 보인다. ‘치명자산(致命者山)’의 치명자는 순교자의 옛말이다. ‘치(致)’자는 통감 등 옛 문헌에 나오듯, ‘맡기다(委)’, ‘버리다’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 즉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사람을 의미한 까닭에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받던 시기에 교우들이 쓰던 말로, 현재는 순교(殉敎)로 바꿔 쓰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주차난 해소를 위해 치명자산 성지 인근에 대규모 주차장이 조성된다. 전주 한옥마을이 과거와 현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매력과 도심 속에 위치하면서 많은 볼거리와 문화체험이 가능해 최근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로 부각되면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치명자산 성지 인근에 주차장 조성시 주차난 해소와 더불어 관광객들이 전주천을 따라 한옥마을까지 이동하면서 친환경적인 주변 경관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일개를 치명자산 성지와 승암산이라는 명칭을 병기해 사용해야 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