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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칠보의 감운정

 

 

 

 

 

 

 

 

 감운정(感雲亭)은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583-3번지에 있다. 이곳은 칠보버스정류장에서 남쪽 시산교를 건너자마자 노휴재 앞에 있다. 즉 지리적으로 볼 때 칠보 행단에서 흐르는 동진강 물줄기와 남쪽 석탄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만나는 자리에 지었다.
 감운정이 있던 자리는 신라 때 학자이며 사상가인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와서 선정을 베풀 때, 이곳에서 유상대를 만들어 검단선사와 함께 시를 읊으며 소요했던 곳을 알리기 위해 후대에 세웠다.
 유상곡수를 즐겼던 유상대는 동진시대 왕희지가 난정에서 시회를 열었던 것과 비슷한 것으로 문인들이 모여 흉금을 털어 놓은 자리이다. 바위 사이로 맑은 시냇물을 흐르게 하여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자리 앞에 이를 때까지 운에 맞추어 시를 지었던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기면 벌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러한 유서깊은 유상대가 있음을 알고는 1682년 현감 조상우는 이곳에 부임하여 무성서원에 주벽으로 배향된 최치원을 추모하여 유상대유적비를 세웠다. 이때 비문의 글은 홍문관대제학 조지겸이 글을 짓고 조상우가 글을 썼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유상대 앞으로 흐르던 물길이 바뀌고 비석 또한 홍수에 유실되었다. 이에 1774년(정조 18) 조상우의 후손인 현감 조항진이 이를 복구하였으나 다시 유실되자 1919년 유림들이 그 자리에 감운정(感雲亭)을 세웠다. 현재 ‘고운 최선생 유상대 유적지비(孤雲崔先生流觴臺遺蹟之碑)’는 1970년 추당 김인기(金鱗基)와 지역 유림들이 옛 자료를 모아 세운 것이다.
 감운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기와지붕에 덤벙주초를 사용했다. 기둥 모서리에는 돌기둥을 높게 한 다음 보주를 올려 처마 끝의 무게중심을 잡았고,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을 취하고 있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단청을 하지 않았고 정자 정면에는 칠보면장을 역임했던 김동주의 행서작품이 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 현판은 비록 해서에 가깝지만 필획은 학자가 반듯한 자세로 걸어가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감자의 첫 획과 정자의 마지막 획에서 비백이 나타나고 있어 전체적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쉬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김동주씨가 일제시대 면장을 했으며 이 지역에서는 글씨를 아주 잘 쓴 명필로 이름이 났다고 이구동성 얘기한다.
 감운정 안에는 많은 현판이 붙어있다. 후송정기를 썼던 김사겸, 전교관 강진 김직술, 전참봉 김재국, 전교관 김성기, 전군수 서택환, 김규술, 이용학, 배기정 등이 경신년과 정묘년에 찬하여 걸었다.
 석지 채용신이 1910년에 그린 칠광도에는 무성서원과 송정 그리고 후송정이 나타나며, 특히 유상대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유상대는 높은 석축을 쌓았고 주변에는 동진강과 작은 하천이 흘러 지세가 물위에 부엽초처럼 떠있는 형상 같았다. 주변에 강들이 있어 주변 나무는 느티나무와 버느나무 등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이곳 유상대의 풍경을 고창에 사는 실학자 이재 황윤석은 다음과 같이 읊으며 지나간다. “유상대는 태인 고현에 있는데  즉 고운 최치원이 소요하던 곳이다. 팔백년 전 자취로 쌍계 언덕위에 유상대가 있노라, 고운 최선생의 자취는 이제 아득한데 뉘 아홉 마리 용이 왔었다 말하는가?  바야흐로 1735년 큰 물난리가 있어 석탄암 스님이 마침 한밤중에 유상대를 바라보니 광명이 대낮처럼 밝았고, 아홉 마리 용이 몸을 꿈틀거리며 마치 금관옥패(金冠玉佩)를 지닌 듯 하였다. 하니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고운 최치원이 다시 내려왔다”라고 말했다 한다. 다시 아홉 마리 웅비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몇 년 전에 전북문화재연구원과 정읍시에서 유상대 터를 찾기 위하여 발굴조사를 했는데, 유상곡수를 즐겼던 것으로 추정하는 터를 찾았으며 상당한 기와조각과 유물들이 수습됐다. 이러한 고운의 유상곡수 정신은 조선시대 고현동 향약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향음주례를 통하여 연장자를 존경하고 술을 통한 선비문화 정립에 1번지가 되었다.
 감운정에 가면 칠보지역에 사는 노인들과 젋은이들의 휴식공간이 되어 장기와 바둑을 두면서 담소하는 문화의 장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정자 주변의 다시 정비되어 고운 최치원이 활동했던 시절처럼 유상대 주변이 새롭게 부활되기를 꿈꾸어 본다. <제공: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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