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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문화

성경 속 숫자의 비밀

2세기 말, 탈무드교사 ‘타나임’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수치(數値)에 따라 성서의 낱말의 신비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히브리 문자는 알파벳 글자마다 각각 고유의 수치를 가지고 있고, 그 수치를 산출하면 글이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숫자의 비밀을 ‘게마트리아’라고 한다. 예컨대 창세기 14장 14절의 아브라함의 집에서 연습한 자 318명은,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의 이름의 수와 부합한다. 즉 엘리에셀의 수치가 318을 의미한다. 그리고 엘리에셀의 이름의 뜻 ‘내 하나님은 도우심이라’는 뜻은 그의 신앙을 나타낸다. 좀 더 쉽게 적용하면 요한복음 21장 11절에는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숫자 ‘153’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세 교부들은 이 숫자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복음으로 구원받을 모든 민족의 숫자를 가리킨다고도 해석하기로 했다. 사실 히브리어에 담긴 게마트리아 즉 알파벳에 담긴 숫자를 계산해 보면 쉽게 그 뜻을 알 수가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그 말의 히브리어는 “베니 하엘로힘”이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니 하엘로힘’의 게마트리아 숫자의 합은 바로 ‘153’이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성경의 저자는 그 숫자의 의미에 바로 베드로의 사명을 담아 장차 그가 전도자로서 많은 백성을 구원할 것을 신비하게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유명한 사탄의 숫자 ‘666’도 ‘네로’ 혹은 ‘교황’ 등으로 풀어왔다. 그러나 네로는 이미 죽었고 교황도 그 시대에 악명을 떨린 교황에게는 적용된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666’이 어떤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보다는 그 숫자의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6’이라는 수는 7이라는 완전수에서 하나를 뺀 수로 완전에 거의 다다른것 같이 보이지만 불완전의 수요, 동, 서, 남, 북을 의미하는 4라는 땅의 수에 2라는 ‘배반과 분리의 수를 합한 수이다.
◇이렇게 볼 때 분명 ‘666’의 6은 바로 교만한 인간과 세상 그리고 하나님을 흉내 내는 사탄을 의미하는 ‘6’의 의미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서 ‘6’이 세 번 반복 된 것은 바로 그 악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3’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수이면서 동시에 완성의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는 3층으로 되어있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단계도 애굽-광야-가나안으로 3단계이다. 또한 인간의 구원도 ‘창조-타락-구원’으로 3단계로 완성되어진다. 성경은 단순하게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으며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하면 성경의 중요한 의미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신비가 없다고 떠들어 댄다. 교회가 영성과 신비를 잃어버리고 너무나 세속화되었다. 오늘날 교회와 신학이 이러한 성경의 신비에 대해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