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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진화

다시 만나 반갑다, 숭례문 현판 복원

 

              <숭례문 현판의 before & after(왼쪽이 복원된 모습)>


남대문 혹은 예문의로(禮文義路). 숭례문을 한양의 남쪽 성문이라 하여 ‘남대문’으로 불렀음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예문의로’는 또 무언가?

‘예절을 존중하여 높이 기리는 문’이란 뜻으로 이 역시 숭례문을 부르는 이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처럼 숭례문의 이름은 여러 개, 하지만 숭례문 문루 2층 처마 밑에 새겨진 본명은 역시 ‘숭례문(崇禮門)’ 세 글자다. 지난해 화재로 손상된 숭례문 현판이 마침내 복원돼 그 얼굴을 드러냈다.


안녕, 숭례문 

 숭례문 현판에 새겨진 글씨를 과연 누가 썼을까? 본래 1398년 창건된 숭례문의 현판은 두 차례 수리와 임진왜란 등으로 손상돼 여러 차례 수리됐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쓴 인물에 대해 확정된 바는 없다. 다만 조선 시대 문신 중 신장, 정난종, 유진동 등이나 태종의 세자 양녕대군 혹은 조선 전기 명필 안평대군 등이 그 인물로 추측될 뿐이다. 

 숭례문 현판은 문루 2층 전면 중앙에 걸려 있었다. 숭례문이라는 세 글자는 세로로 새겨져 있다. 그 무게만 106 킬로그램이나 나간다니 숭례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현판의 중후함이 느껴진다.

안녕, 숭례문 

 숭례문 현판에 새겨진 글씨를 과연 누가 썼을까? 본래 1398년 창건된 숭례문의 현판은 두 차례 수리와 임진왜란 등으로 손상돼 여러 차례 수리됐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쓴 인물에 대해 확정된 바는 없다. 다만 조선 시대 문신 중 신장, 정난종, 유진동 등이나 태종의 세자 양녕대군 혹은 조선 전기 명필 안평대군 등이 그 인물로 추측될 뿐이다. 

 숭례문 현판은 문루 2층 전면 중앙에 걸려 있었다. 숭례문이라는 세 글자는 세로로 새겨져 있다. 그 무게만 106 킬로그램이나 나간다니 숭례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현판의 중후함이 느껴진다.

다시 만나 반가워, 숭례문 

 안타깝게도 지난해 2월 10일 발생한 숭례문 화재 때 현판이 추락했다. 이때 현판이 손상을 입어 고궁박물관으로 이송됐다. 복원을 위한 숭례문 현판 조사는 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 실시했다. 현판의 글씨와 단청문양에 대한 문헌조사를 거쳐 보존처리를 했다. 

 그 중 서울 동작구 지덕사(至德祠)의 소장 탁본자료를 발견하여 현판 복원이 진행됐다. 여기에는 숭례문 화재 피해 때 수습된 부재와 복구용 기증소나무가 사용됐다. 복원작업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오옥진 선생과 제48호 단청장 홍창원 선생이 참여했다. 

 숭례문이 우리 모두의 門인만큼, 이번 현판 특별 전시는 일반인들에게 활짝 공개됐다. 아름다운 현판의 복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판축소모형 탁본 체험행사와 증정행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황제 어새' 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 스탬프를 직접 찍어 엽서로 간직할 수도 있다.  1년 만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그 모습, 문화재청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 역사를 함께 나누고픈 이들과 함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어떨까?


<나만의 유물 스탬프 엽서 만들어가세요>

전시 일시: 7월 7일~8월 16일(오전 11시~ 오후 5시)
전시 장소: 국립고궁박물관 2층 중앙홀 특별전시관(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