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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백제 삼중기단 목탑지 구조 최초로 밝혀지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9일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 405호)에 대한 2008년도 발굴조사 결과, 정교한 판축으로 만든 삼중기단 목탑지, 화려한 인동당초문 암막새로 장식된 금당지 등 익산 제석사지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석사지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백제 제30대 무왕(A.D. 600~641)이 익산으로 천도하여 세웠으나, 정관(貞觀) 13년(639년) 뇌우(雷雨)로 인하여 불당과 회랑 등이 불탔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백제 왕실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2007년 6월 22일부터 사역 중심부(9,100㎡)인 목탑지-금당지-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사찰의 규모 및 존재양상, 각 유구들의 축조방법을 밝혀냄은 물론 익산 왕궁성과 관련된 왕실 사찰의 성격을 규명, 정비 복원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제석사지는 시대산(始大山)에서 이어진 낮은 능선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완경사의 구릉에 성토로 대지를 조성한 후 자북에서 동쪽으로 5° 틀어진 남북중심 축선 상에 목탑-금당-강당이 위치하는 1탑1금당의 가람배치를 한 전형적인 백제 왕실사찰로 밝혀졌음은 물론 독특한 삼중기단에 지상식 심초 구조의 목탑지의 최초 발견으로 고대 동아시아 목탑의 구조와 변천양상을 규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첫째, 두께 약 3m의 정교한 판축으로 기초를 다진 3중 기단 목탑의 구조를 최초로 밝혀냈다.  아주 높고 구분된 판축으로 기초를 하고 3중으로 기단을 조성한 방식은 비슷한 규모의 기초부를 지닌 부여 용정리사지(龍井里寺址), 일본의 길비지폐사(吉備池廢寺), 중국의 낙양 영녕사(永寧寺)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둘째, 금당지의 기단 외부에서 백제 연화문 수막새 및 기와편과 함께 화려하고 우아한 인동당초문 암막새가 다량 출토, 공반 유물 및 층위 관계를 통하여 볼 때 백제 암막새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백제지역에서는 군수리사지의 지두문(指頭文) 암막새, 부여 관북리백제유적·부소산성 등의 유단식 암막새 등 원초적 암막새 정도만 알려져 있어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제석사지 출토 암막새를 백제시대 것으로 보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셋째, 사찰의 중심건물을 조영하기 위한 광범위한 대지 조성을 통하여 목탑을 비롯한 중심 건물의 기단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정교한 달구질 흔적이 확인됐다.
 넷째, 제석사지 북동편에서 폐기장이 확인되어 이 절이 화재로 폐기되었고, 안정된 층위에서 ‘제석사(帝釋寺)’ 명 명문와가 출토되어 ‘관세음응험기’의 사료적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로써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 익산 왕궁성과 제석사지와의 관계 설정, 왕궁리 5층석탑 사리장엄구와 제석사지와의 관련성을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다섯째, 사찰의 조성 및 운영 시기를 살필 수 있는 자료도 확보됐다. 목탑지와 금당지에서는 백제 연화문 수막새, 암막새를 비롯한 백제시대 유물이 출토된 반면에 강당지에서는 백제~고려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따라서 목탑지와 금당지를 연결하는 답도를 파괴하고 조성된 가마터가 확인되어 사찰의 폐기 시기를 규명할 수 있게 됐다.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는 11일 오전 11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현장 설명회는 12일에 실시할 예정이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