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이종근, 원암 오광석 서예 개인전 인사말
-원암(元庵), 조그만한 암자처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다
이종근 한국문화 스토리 작가(새전북신문 펀집부국장)
서예, 문인화, 그리고 한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적 정진을 거듭해 온 원암 오광석 서예가는 이번 전시에서 ‘서예의 철학적 깊이와 미학적 확장성을 동시에 구현한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통 서체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점 하나 하나에 숨결을 불어넣고, 획의 유려함 속에 현대적 감각을 녹여낸다”는 그의 작업 방식은 서법적 틀을 넘어선 자유로운 예술 언어로 재탄생했다.
때론 섬세하게, 때론 거침없는 붓질로 추상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 여백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특색을 보여주면서 단순하되 심심하지 않고, 담백하되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서와 문인화 등 작품을 주축으로 삼은 작품들은 유려한 필선과 대비의 미학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었다.
작가는 글씨 한 획 한 획에는 일상과 마음의 흔적이 담겨 있으며, 때론 그날의 기쁨이, 때로는 슬픔과 그리움이 함께 스며 있다며, 글씨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자, 세상과의 조용한 대화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선생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 작가는 물고기가 물을 만나 물 안에서 놀 듯이 서예가가 서예를 만나 서예 안에서 노니는 작가이다.(遊藝自如)
그는 예로부터 글자를 익히는 기본 교재였던 천자문을 자체(字體)와 서체(書體)를 망라, 120체의 다른 형태로 720번을 쓰는 과정에서 한자 자체의 글자꼴도 완전히 다 암기하게 됐고, 각 명가의 서체 분위기도 철저하게 파악하게 됐다.
철저한 파악 즉 완전한 자기화는 무한한 자유를 선물해 준다.
한자의 자체와 서체를 두루 자기화한 심은(沁隱)은 더 이상 글자의 모양에 구애되어야 할 이유가 없게 됐다. 꿰뚫어 아는 글자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화시켰다.
그는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작가에게 '조그마한 암자처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라'고 '원암(元庵)'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고창군에서 북서쪽으로 30㎞ 쯤 가면 서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백합과 어패류가 많이 생산되며, 만돌리와 하전리의 갯벌 생태 체험이 유명하다.
작가의 고향 고창 심원면 수다동(水多洞)은 원래 바닷물이 마을 앞 갯벌에 있는 모래까지 차올라 한때 사다동(沙多洞)으로 불렸다.
예로부터 물이 많은 고을이라 하여 ‘수다동(水多洞)’ 또는 ‘수동(水洞)'이라 했다.
검단선사가 검정샘에서 소금을 굽고 손을 씻어서 물이 흐리고, 물맛이 짜다고 하며, 1950년까지 소금을 생산했다.
작가의 작품의 표현 방법은 생명력이 잉태되는 생동한 기운의 운필과, 발묵 비백을 연출, 사물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작업에 몰입하는 정신을 더한다.
서실에서 화폭 앞에 앉아 색을 창출해 배합하며 하나하나 형상화하고, 붓은 손길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담으려고 애를 써 봤다.
붓끝의 강약, 속도,리듬은 한지 위에 선율로, 단순한 묘사를 넘어 필의 예술로 확장, 선은 곧은 호흡과 정신을 시각화하면서 기운과 정신을 함께 담아 표현했다.
작업 기법은 다양성으로써 형상을 묘사하고 안일성으로 자연의 내면세계를 투명하게 재구성 실험적 산고의 체득하듯, 운필에는 자유분방함을, 어떻게 보면 본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를, 다양한 작품과 함께 한 인내의 뚝심일지도 모를, 예술인의 자부심을 전념했는지도 모른다.
성삼문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자 중국에서는 황제를 비롯, 문무백관이 성삼문을 시험하고자 '백로도(白鷺圖)'라는 책을 보여 주며 한시를 짓게 했다.
성삼문이 “설작의상옥작제(雪作衣裳玉作蹄, 눈으로 옷을 만들고 옥으로 발굽까지 만들어), 규어강상기다시(窺魚江上幾多時, 강 위 물고기 엿보기를 얼마나 많이 했나?)”까지 지었을 때 중국 대신이 '백로도'를 펼쳤다.
그러자 책 속에는 까만 흑로가 들어 있어 앞에 지은 시구와 맞지 않았다.
성삼문은 태연히 다음과 같이 뒷 구절을 이어 중국 황제와 대신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우연비과산음현(偶然飛過山陰縣, 우연히 산음 고을을 날아 지나다가), 오락희지세연지(誤落羲之洗硯池, 잘못하여 왕희지가 벼루 씻은 연못에 빠지고 말았네)'
작가는 이를 '흑로도(黑鷺圖)'로 표현했다.
작가의 작품 (사나운) 쏘가리가 눈길을 끈다.
쏘가리는 궁궐의 궐자와 같은 발음의 '궐어'
(鱖魚)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주관하는 대과에서 장원급제를 한 사람에게 쏘가리를 그린 '어해도'를 선물하며 '쏘가리가 낚시 바늘을 물 듯이 벼슬자리를 물고 놓치지 말라'는 뜻을 전하기도 한다.
참으로 궁궐가기까지 들어가지 어렵지 않은가.
작가는 '묵로(墨鷺)'를 작품화했다.
먹으로 그린 백로는 '중국 산음현을 지나가다가 왕희지의 벼루 물에 빠졌나' 라는 의미의 작품이다.
'이놈 물고기 포를 떠서 쐬주(소주) 한잔 하세'라는 작품도 느낌이 좋다.
지금, 고기와 곱창을 넣고 후춧 가루를 쳐서 끓인 후에 두부를 번듯번듯하게 썰어 넣고 선지를 채반에 건져 피 빠진 것을 한 덩이씩 팍팍 처서 넣고 싶다.
우리 조상들의 생선 사랑은 예로부터 엄청났다.
어마어마한 양의 사료와 문헌으로 밝혀진 정설이라고 하는데 ‘회’ 사랑이 대단했다.
물고기를 굽거나 탕으로 끓여 먹어도 맛있기야 하지만 역시 신선한 물고기의 쫄깃쫄깃한 식감은 따라갈 수가 없다.
우리 조상님, 맛 좀 아셨구나. 회를 좋아했던 조상님들은 바다는 물론 민물에서도 두루두루 횟감을 마련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농어, 붕어, 쏘가리, 은어, 밴댕이, 웅어, 고등어, 준치, 민어, 전복이나 해삼, 조개와 굴까지.
갓 잡아올린 싱싱한 재료를 회로 쳐서 먹는 조리법을 워낙 사랑해서, 물고기 뿐 아니라 재료를 가리지 않고 신선하기만 하다면 회로 만들어 먹었다.
여기에 소주 한 잔이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아니던가.
작품 '복숭아'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의 집 복숭아밭을 친구들에게 고스란히 내준 그의 마음이 잘 읽혀진다.
행동대원이 된 친구는 복숭아가 발그스레 탐스러운 모습으로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 뒷편 풀숲으로 조용히 잠입하고 있었다.
친구가 부주의로 마른 나뭇가지를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냈기 때문에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속삭이고 있었다.
간이 콩알만 해진듯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눈 앞에는 주먹보다 더 큰 복숭아가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수다동 뒷뜰에서 본 작가의 복숭아 과수원은 봄철 하얗고 분홍빛이 감도는 꽃밭으로 절경을 이루었지만 그 꽃들이 하루라도 빨리 떨어지고 여름방학이 오기를 학수고대 했다.
비탈진 과수원 풀밭으로 몸을 낮추어 가는 저 만치 앞에 원두막이 있고 가끔씩 복숭아 나무 사이로 아버지가 부채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어른 거렸다.
친구들은 복숭아 나무 잎파리에 몸을 감추고 손을 길게 뻗어 복숭아를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복숭아 나무가 흔들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두 눈은 복숭아와 원두막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고 손끝에 잡힌 복숭아는 까칠했다.
털이 뽀송하게 박힌 복숭아는 걷어부친 '난닝구-런닝셔츠-'에 하나 둘씩 쌓여 배불뚝이가 됐다.
녀석들의 입술 모습을 보니 겁먹은 표정이었다. 검정 고무신에 땀이 배어 과수원 비탈에서 신발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친구의 아랫배 쪽에도 복숭아를 움켜쥔 모습으로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고무신으로 괜히 마당을 긁고 있었다.
아버지는 원두막에 앉아서 우리들 모습을 지켜보며 '저녀석은 누구 누구네 아들'이란 걸 다 알고 있었다. 우리만 몰랐을 뿐...
'애련설(愛蓮說)'은 주돈이의 작품을 수묵으로 표현을 했다.
연꽃이 가진 군자적인 면모를 사랑하고 목단의 화려함보단 연꽃의 청아하고 은은한 자태와 향기를 아끼는 마음에 화제 글씨를 주력해서 작품에 임했다.
작가는 세상이 혼탁해져도 그 자태를 굽히지 않고 맑은 향기를 멀리 보내는 연꽃처럼 내일을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아(香遠益淸) 멀리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고 했다. 또,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온전히 지키며 작지만 강한 나라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는 자신의 이(利)보다 나라를 위한 의(義)를 목숨보다 무겁게 여겼던 선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이 쇠망해 가던 무렵 우리 선비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 꽃다운 목숨을 바쳐 의로써 나라를 지켰다.
이로움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見危致命)는 선비정신의 실천이었다.
오늘, 온통 자신의 이만 생각하는 소인배가 즐비한 난세에 처하여 그 선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흔히 전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한다.
연꽃축제가 다만 축제에 그치지 않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맑은 향기를 몸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향원익청(香遠益淸), 참으로 운치 있는 말이다.
오늘, 전주 덕진공원 연못에 연꽃이 피었단 소식이 들리면 반드시 만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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