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장군이 찾은 '고창 아산면 할매바위 오은굴'
-'아산면 할매바위 암각서에 가보니' 오은(五隱)'이 누군지 궁금증 자아내
전북 도내에는 전주 완산사와 부안 보령원이 김유신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매년 봄(4월 10일)·가을(10월 10일)에 제향이 열리고 있다. 현재 고창 남산사를 비롯, 전북 도내에 김유신유적이 6곳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할매바위엔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다 '할매바위 오은굴'에서 3개월 동안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정작 할매바위에 새겨진 '오은(五隱)'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다. 기자와 사진가 황재남선생이 24일 이곳을 찾았다.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마을에서 신라 김유신 장군과 관련,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계산리 사신원마을 인근 백학산에서 사근재를 지나면 천안 전씨 묘가 있다. 이 묘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연화봉(134.8m)을 중심으로 오른쪽 봉우리(123.6m)와 왼쪽 봉우리(125.3m)가 말의 눈과 같은 형국으로. 갈증이 난 말이 인천강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라고 한다
김유신장군이 젊은 시절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배를 이용하여 신라로 돌아가던 길에 바다에서 풍랑을 맞아 피하고자 뱃머리를 돌려 좌치나루에서 주진천을 따라 올라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에서 묵게 됐다.
며칠 동안 사신원에서 묵고는 신라로 돌아가던 길에 묘를 쓰고 있는 지관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장군이 지관에게 “이곳은 갈증 난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요”라고 하자 백발의 지관이 “젊은이 경솔하구만.여기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시오”
장군이 귀를 땅에 대자 물소리가 들렸고 지관이 말하길 “
이곳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은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 아니라 물을 찾는 형국이라오" 했다.
장군은 창피하여 신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할매바위 '오은굴'에서 3개월 동안 수행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계산리 '사신원(四信院)'마을은 옛날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사신들이 묵었던 숙박 시설이다.
'사신원(使臣院)'이라고도 하며, 무장현 북쪽으로 18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엔 현에서 남쪽으로 25리에 청계원(淸溪院), 현에서 서쪽으로 18리에 요광원(要光院), 현에서 동쪽으로 5리에 동원(東院) 등 4곳에 원(院)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사신원은 무장현에 있던 원(院)으로 사신들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인천강(주진천)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할매바위 오은굴과 김유신 장군'은 신라 김유신장군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사신원에 머물게 됐다.
마침 지관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수양이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인근 할매바위 오은굴에서 수행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5은'은 누구 누구인가.
'암각서' 해독을 해보면 아래와 같다.
오은대(五隱臺)
농은 이공우(儂隱 李孔雨)
일은 김길중(壹隱 金佶中)
월은 유재연(月隱 劉載淵)
사은 유준석(沙隱 柳浚錫)
동은 박희순(東隱 朴憘淳)
'공자탄강 2413년 임신(壬申) 0월 일'
로 읽혀지니 1862년에 새겼다는 의미다. 누가 '오은대'라는 글씨를 새겼는지, '오은'의 이름이 맞는지, 그 출처는 어디인지 자못 궁금해진다./글 이종근, 사진 황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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